기본소득, 부와 시간을 재분배한다
지난 2월 2일 인천의 생명평화포럼 주최로 '기본소득제와 경제민주화' 강연이 있었습니다. 당 고문이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소장인 금민 고문이 강사로 참여했습니다. 기본소득 개념과 역사, 장점과 효과에 대해 설명한 뒤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강연에는 생명평화포럼 4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했는데, 최근 불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 같았습니다.
먼저 기본소득의 개념인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정기성, 그리고 권고사항인 충분성에 대해 설명하고 기본소득의 장점과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본소득의 장점은 탈빈곤 효과가 있습니다. 선별복지처럼 복지함정이 없고 빈곤의 덫에 빠지지 않는다는 장점과 낙인효과와 같은 열등처우 원칙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득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세를 걷게 되는데 아무래도 상위, 고소득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게 되는 것이니 당연히 소득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가계소득이 안정화되기 때문에 소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에 기반하지 않기때문에 임금노동 이외의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만약 충분한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노동시간이 단축될 수 있고 그것을 계기로 일자리와 고용을 늘릴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선별적 복지인 각종 사회수당과 기본소득에 대한 비교도 있었습니다. 사회수당은 필요에 의한 것이고, 나중에 지급되는 방식입니다. 기초생활수급권, 실업급여 등이 그렇습니다. 기초생활수급권은 사회적 안전망으로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기초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영유할 수 있도록 하는 필요에 의해, 자격 조건을 따져 나중에 지급됩니다. 실업급여 역시 일자리를 잃었을 때,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임을 증명한 뒤에 지급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기본소득은 사회적인 부를 공유하는 것이며,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평등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기본소득 논쟁에 대한 정리도 있었습니다. 얼마전 이재명 성남시장의 공약인 '생애주기별 100만원 지급'과 '토지보유세로 모든 국민에게 연간 30만원'에 대해 안희정 충남도지사간의 기본소득 논쟁이 있었습니다. '토지보유세로 15조를 걷어 국민 모두에게 연간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개인에게 매월 2만 5천원을 주자는 것인데, 개인에게 2만 5천원은 큰 돈이 아닌 푼돈이다. 하지만 15조원이 있다면 부족한 사회복지 재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개별적으로 나누지 말고 15조원을 나라 살림에 사용하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론자가 아니더라도 세금을 생각하면 개인에게 나눠주는 것보다 더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큰 돈도 아닌데 개별로 나누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는 논리입니다.
금민 소장의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걷어들이는 조세, 세금은 일반 조세의 원리가 아니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비효율적이다고 말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조세에 대해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세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가를 운영하고 국민에 대한 공공서비스 등을 제공하기 위해 걷어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조세 중 인건비를 포함해 국가운영에 필요한 필요경비를 제외하고 120조를 정책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4대강 사업, 창조경제 융성사업 등의 정책은 효율적인지 아닌지 분명하게 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재원이 되는 조세-다른 명칭이 없어 조세로 사용하고 있지만-는 부의 재분배를 위한 돈으로만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세의 목적이 단 하나로, 재분배를 위한 돈이라는 것입니다. 부자의 돈을 거둬들여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는 거둬서 나누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거둬서 나누는데 효율적이다, 비효율적이다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매달 30만원씩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연간 180조원이 필요합니다. 180조원이 넘는 세금을 걷어야 해? 나는 도데체 얼마를 더 내야해? 궁금하기도 합니다. 당의 지난 총선 정책의 설계라면 조세부담율을 24.5%에서 OECD 평균인 35%로 올리자는 안입니다. 누진율을 적용하면 복잡해 질 수 있으니 단순하게 국민 모두에게 10%의 세금을 더 걷는 것으로 비교했습니다. 3인 가구가 매월 30만원씩 기본소득을 받게된다면 1년에 1,080만원을 받게됩니다. 모든 국민이 10%의 세금을 추가적으로 낸다고 단순하게 가정해 보면, 가구단위 1년 소득이 1억 800만원일 때 세금으로 낸 돈과 기본소득으로 받는 돈이 같게 됩니다. 단순할 수 있겠지만 3인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연봉 1억 800만원에 미치지 못한 경우는 기본소득으로 내게되는 세금보다 기본소득으로 받는 돈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따져 볼 경우 매달 국민 모두에게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한 순 조세는 84조원 정도입니다. 당연하겠지만 기본소득을 위해 돈을 걷을 때 누진제를 적용하면, 부담이 가는 쪽은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는 고소득자뿐 입니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생태적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전기세를 보면, 기업들에게 특별한 혜택이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내는 전기요금에서 혜택을 없애고, 가구에서 쓰는 전기요금으로 환산한다면 7조 6천억원을 더 내야합니다. 핵발전소, 화력발전소에서 대부분의 전기를 만들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전기사용은 무조건 줄여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전기요금에 생태세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전기요금은 올라가겠죠. 걷은 생태세로 일부는 생태전환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처럼 지급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국민들은 그 돈으로 오른 전기요금을 내게 됩니다. 국민들에게 전기요금을 나눠줄 것이라면 그냥 무상전기 정책을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물어 볼 사람도 있겠지만, 무상전기는 생태전환에 악영향만 끼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일부는 전기사용을 줄여나갈 것이고, 전기요금이 아닌 다른 용도로 남은 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전기요금을 할인받으며 과하게 전기를 썼던 기업은 필요경비가 올라가니 전기를 아낄 수 있도록 시설에 투자를 해야 할 것이고 보다 생태적인 전환이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금민 고문은 기본소득이 민주주의를 확대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민주주의의 확대는 시간의 확대가 필요하고 기본소득은 시간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연간 2,100시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하는 조건에서 자신의 삶,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것이 정치의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하고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그렇게 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충분한 기본소득은 시간의 여유를 줄 가능성이 많습니다.
강연을 들을수록 더욱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말하면서 ‘부의 재분배’를 강조한 것처럼 또한 기본소득은 시간의 재분배하는 정책이고, 이를 통해 삶을 변화하게 하고 체제를 바꿔낼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자는 기본소득은 무너저가는 자본주의에 산소호흡기를 대는 정책이라며, 기본소득이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망하거나 무너지면 다가올 세계는 우리가 그리는 세계가 아니라 트럼프의 시대이고, 히틀러의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본소득은 극 심하게 양극화된 부를 재분배하기 위한 것이고, 시간을 재분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미래는 기본소득 너머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