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 5.17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1주기에 부쳐
작년 5월 17일 한 여성이 강남역 번화가의 공중화장실에서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평소에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그럼에도 언론과 검찰,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것은 여성살해(femicide) 또는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 정신병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정신장애 혐오일 뿐이라는 항변에도 이를 ‘묻지마 범죄’로 만들고 싶어 하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여성혐오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마시던 여자들이 왜 오늘 갑자기 피해자 코스프레야?” 추모 현장에 참가했던 한 여성은 당시 같은 현장에서 한 남성이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을 가득 메운 여성들의 피해자에 대한 강한 공명에 극도로 대비되는 그 남성의 발언에서,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여남이 느끼는 세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밥 먹으며, 웃으며, 잠들며, 씻으며, 화장실에 가며, 커피를 마시며, 술을 마시며, 계단을 오르며, 통화를 하며, 춤추며, 운동을 하며, 택시를 타며, 버스를 타며, 지하철을 타며, 걸으며, 엘리베이터를 타며, 문을 열며, 가만히 있으며, 여자라는 이유로 당할 수 있는 수많은 안 좋은 일들을 상상하고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라는 말을 듣는다. 작년 오늘 강남역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명명하건 ‘묻지마 범죄’라고 명명하건,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공포는 실재한다. 그것이 여성들이 강남역 앞에 쏟아져나왔던 이유이고, 나도 죽을 수 있었으며 나는 그저 살아남았다고 고통의 증언을 쏟아낸 이유이다.
어떤 사회 집단이 일상에서 이토록 공포를 느끼는 세상은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작년 강남역 사건을 두고 이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난 1년간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남은 것은 이 사회가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2017.5.17.수,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김윤영, 노동당 여성위원회)
-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피해자를 비롯한 모든 여성 폭력 피해자들을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