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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논평]
문재인 정부 정책비판 시리즈3. 재벌 정책

원인 놔두고 증상만 손보겠다는 접근으론 한계 분명
재벌 해체로 경제력 집중 해소해야



대선 정책공약집 ‘경제민주화’ 공약에 집약돼 있는 문재인 정부의 재벌 정책 전체의 특징은 재벌의 독단적 경영에 대한 시장의 감시와 (소액)주주의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벌 중심 경제의 문제의 핵심은 극소수 지분으로 방대한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기형적인 소유지배구조,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재벌 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 정책은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비전이 없다. 재벌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폐해를 시정하겠다는 접근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당은 이제 재벌을 해체하고 주요 재벌 기업들이 이룬 성과를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재벌 사회화 정책이 필요한 시기임을 강조한다.

시장 감시 강화가 문재인 정부 재벌 정책의 특징

문재인 정부의 주요 재벌 정책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 강화,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 소액주주들의 경영권 견제 수단 강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등이다. 재벌의 전횡적인 경영권 행사에 대해 시장의 감시와 주주의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또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도는 모두 소액주주들이 지배주주의 독단적인 경영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들이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나 소비자 집단소송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 등도 큰 틀에서 보면 시장에서 재벌대기업에 대한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견제 수단을 강화해 주는 것들이다.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자체를 개혁하겠다는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주회사제도 개혁, 산업자본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강화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정책의 수위가 구체적 수치로 드러나지 않으면 정책 의지를 평가하기 어렵다. 일례로 지주회사제도에서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지분율 규정을 현행보다 강화한다고만 할뿐 어느 정도로 강화할 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해외 각국의 경우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소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손자회사조차도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기존의 순환출자도 ‘단계적으로’으로 해소하겠다고 할 뿐 언제까지 하겠다는 언급이 없다. 금산분리제도 역시 강화하겠다고 할 뿐이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핵심적인 문제인 중간금융지주회사 허용 문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거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이는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불허하고 있는 현행 공정거래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되는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면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와 지배를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재벌의 기형적인 소유지배구조와 경제력 집중이 문제의 근원

결국 문재인 정부의 재벌 정책은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시장주의 원리’에 부합하게 개혁하는 것조차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재벌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그 폐해를 시정하는 정책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한계가 분명하다. 

총수 있는 10대 재벌의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2016년 8월 기준 2.6%에 불과하다. 재벌 일가가 불과 2.6%의 지분을 가지고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순환출자제도, 지주회사제도,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제도이다. 기형적인 소유지배구조의 문제는 이것이 바로 재벌그룹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낳는 구조적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재벌 가문이 자기 자본이 아니라 계열사 회사의 자본을 통해 쉽게 다른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재벌로 집중된 경제력은 시장에서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압도적 힘의 우위를 보장해준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 중소기업의 적정 이윤율까지 결정하는 수위의 경영권 간섭이 일반화되었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물론 필요한 정책이지만, 중소기업에 대기업에 대한 약간의 법적 대항수단을 마련해 준다고 해서 실제로 불공정거래 행위가 근절되지는 않는다. 중소기업은 법이 있어도 법에 호소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애초에 대기업의 불공정행위가 만연한 것은 대기업집단으로 집중된 경제력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대기업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역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려면 순환출자, 지주회사제도, 금산분리제도를 사실상 ‘재벌 해체’ 효과를 낳는 수준으로 개혁해야 한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지주회사 규제를 해외 수준으로 강화하고, 금산분리제도도 원리에 맞게 엄격하게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재벌 정책에는 이런 개혁이 시늉만 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책 실효성 없어

눈에 띄는 다른 정책으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이 있다. 이것은 재벌대기업의 문어발식 시장 확대에 맞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적절한 시장 영역을 보호해 주겠다는 것으로 정책 자체적으로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강제력을 갖고 시행되기 위해서는 한미FTA의 ‘시장 개방화 조항’이 중소기업을 위한 경제정책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한미FTA 협정을 개정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한미FTA에 관해서는 한 줄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재벌대기업이 장악한 대형마트, SSM 등의 유통시장을 중소 자영업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재벌들이 새롭게 진출하려는 복합쇼핑몰 시장에 대해서는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입지 제한을 하고, 영업시간을 현행 대형마트 수준으로 규제하겠다고 한다. 도시계획 단계에서 입지 제한한다는 말은 신도시 건설에나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미 건설 중인 복합쇼핑몰은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수준의 영업시간 제한으로 복합쇼핑몰이 골목상권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력을 줄일 수는 없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재벌기업 사회화를 위한 재벌 해체 필요

재벌 정책의 목표는 재벌 가문의 사익에 맞서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 즉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재벌대기업의 수출 증대가 중소기업의 매출과 고용 증가,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1990년에는 수출 10억원 증가마다 65.4명이 취업했지만 2014년에는 겨우 7.7명만 고용이 증가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대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나 해외 원자재 구매 증가로 대기업의 매출 증대가 중소기업의 매출과 이익 증대로 이어지지도 않고 있다. 재벌대기업들이 국내 소매시장과 유통시장을 장악해 자영업자들은 협소한 시장에서 경쟁하다가 몰락하고 있다.

이제 과감히 재벌 중심 경제와 단절할 때다. 순환출자 제도, 지주회사제도, 금산분리제도를 재벌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시장 원리’에 맞게 개혁하면 사실상 재벌은 해체된다. 재벌을 해체하고 전자, 반도체, 조선, 해운, 철강, 통신, 금융 등의 영역에서 주요 재벌기업을 사회화하려는 논의가 진지하게 시작되어야 한다. 민영화 이후 노동 탄압, 대량 해고를 일삼으며 주주 배당만 늘려온 KT(구 한국통신)를 공기업화해 통신 영역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고 꼭 필요한 대기업 사회화 정책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 정책 어디에도 이런 과감한 구상이 담겨 있지 않다. 결국 재벌의 힘을 현실로 인정하고 그 폐해만 일부 시정해 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재벌 정책 기조는 시간이 갈수록 재벌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자신이 약속한 공약마저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 전체적으로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도 이후 재벌 정책 제도화 과정에서 재벌의 입김을 강화할 근거가 될 것이다. 지난 시기 수많은 재벌개혁 정책들이 제도화 과정에서 재벌들의 로비로 껍데기만 남은 제도로 전락했다. 1997년 IMF 당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들여 재벌의 구조조정만 도와주고 재벌 해체를 이루지 못한 결과 이후 재벌의 힘에 국가와 사회가 굴복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바로 박근혜 게이트였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 정책은 여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2017.05.25
노동당 정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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