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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논평]

사회경제적 기본권 강화가 올바른 개헌 방향

기본소득·평등선거제도 등 담아내야

 

2017 9 11일은 상해임시정부가 1919년 임시헌법을 선포한 지 98년째 되는 날이다. 87 6월항쟁의 성취이자 국민적 약속이었던 입헌주의가박근혜 게이트로 유린된 역사적 퇴행에 맞서 시민들은 촛불 항쟁으로 맞섰다. 그 결과 헌법 개정을 내세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지금 국회에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하고 있다.

 

헌정질서를 파괴한 박근혜 게이트를제왕적 대통령제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거대 보수정당들과 보수 언론이 주도하는 공론장에서 주지의 사실처럼 다뤄져 왔다. 개헌 논의가 대통령 권한을 줄이거나 대통령제를 폐지하는 새로운 통치구조와 권력 분점 방식에 무게를 두고 출발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87년 이후 헌정사 초유의 사태의 구조적 원인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박근혜 게이트는 행정, 입법, 사법, 언론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영역이 재벌 자본의 힘에 의해 매수된 사태의 종착점이다. , 박근혜 게이트는 대통령 직선제를 규정한 87년 체제가 아니라 97년 신자유주의 체제의 파산을 의미한다. 이런 성격 규정에 따를 때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성찰로서제왕적 대통령의 극복 방안에 무게를 둔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헌법에 대통령제를 아예 없애버리면 박근혜 같은 대통령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개헌 논의를 낳은 사태의 성격은 이와 같지 않다. 

 

촛불 항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헌의 흐름은 보수 정치세력들 사이의 새로운 권력분점 방식에 대한 합의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고 또 그래야 한다. 9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고 촉진하며 구성하는 최고 규범으로서 헌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당은 국민의 사회경제적 기본권을 대폭 강화하여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의미를 실질화하는 것이 개헌의 최대 과제임을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이자 국가의 의무로서 기본소득제도를 헌법에 담을 필요가 있다. 군사독재 극복에 관심이 집중된 87년 헌법 개정 당시에는 비정규 불안정노동과 실업이 만연하여 소득과 노동의 관계가 해체된 오늘날의 세상을 예견하지 못했다. 사회적 공공재로서 지식이 사회적 생산성의 거대하고 중요한 새로운 원천이 되었지만, 일자리와 세금으로 돌아가는 몫은 미미하고 지식의 생산성을 자본이 전유하는 사태도 예비할 수 없었다. 기본소득은 변화된 환경에서 민주주의가 보통선거라는 형식을 빌린 자본의 지배로 변질된 시대의 전환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현행 헌법 제34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규정에 의해서도 기본소득제를 시행할 수 있다는 해석이 있고 이 해석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 조항은 기본소득이 위헌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한 규정일 뿐 국민의 기본권이자 국가의 의무로서 기본소득제를 규정하는 조항은 아니다. 노동당은 기본소득의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하고 국가의 의무를 분명히 하는 헌법 개정 문항으로모든 사람은 기본소득을 보장받을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새로운 헌법은 또한 생산수단 사회화 조항을 담을 필요가 있다. 소수 족벌 가문에 의해 국민경제가 사유화된 현행 재벌체제로는 97년 체제를 넘어서기 어렵다. 사회적 소유와 운영이 필요한 주요한 생산수단을 국민의 요구로 사회화할 수 있다는 규범이 헌법에 담겨야 한다. 시장경제와 재산권 존중을 규정한 헌법 규정에 비춰 재벌 자본의 사회화는 위헌 문제를 일으키며 이는 헌법 119조 제2항 경제민주화 조항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다. 따라서 헌법에토지, 천연자원, 지식, 빅데이터 등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유자산이며 국가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생산수단을 법률에 따라 공유자산 또는 공동관리경제의 형태로 전환할 수 있다라는 생산수단 사회화 조항이 들어설 필요가 절실하다.

 

97년 체제가 현행 신자유주의 거대정당 독점체제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때 이의 극복을 위한 개헌은 선거제도를 피해갈 수 없다. 현행 헌법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법으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를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 판례는 평등선거의 의미를 11표뿐만 아니라 11가치 의미를 동시에 갖는 것으로 해석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11가치의 평등선거 원칙을 외면하고 있다. 새로운 헌법은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는 현행 참정권 조항에 “11표와 11가치의 평등한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문장을 보충하여, 선거법에 평등선거를 구현할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강행 규범으로 기능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개헌 없이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있으나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개정 헌법에 명문화할 필요도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강화 역시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본래적 목적에 부합하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바로잡는 수단적 가치로서도 중요성이 크다. 국민투표제, 국민발안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 노동당은 시민사회의 직접민주주의 강화 요구를 적극 지지하지만, 대의제 선거제도 개혁과 직접민주주의 강화 중에서 굳이 우선순위를 부여하자면 전자가 더 중요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현 단계에서 한국의 정치 질서를 규정짓는 핵심은 신자유주의 보수독점구조를 제도화한 대의제 선거제도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최고 규범으로서 헌법의 개정은 개정의 내용 못지않게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개헌 전국순회토론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개헌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모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헌법의 개정을 논하는 국민 대토론회 자리는 소수자의 인권을 부정하는 시위로 얼룩지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가 애초 준비했던 원탁회의와 대국민 설문조사는 각 당의 정략적 이해로 무산될 상황이다. 1차 전국순회토론회는 200여 명으로 시민 참여가 제한됐는데 그나마 특정 단체가 집단으로 좌석을 점유했다. 지난 6개월간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수십 차례 토론을 거쳐 작성한 개헌 쟁점 보고서는 국민에게 공개조차 되지 않고 있다.

 

노동당은 개헌 논의가 국민에게 온전히 개방되고 시민의 자유로운 참여가 보장될 수 있도록 기본소득, 공유자산, 11가치의 평등한 참정권 등 개헌특위의 논의에 포함되지 못한 쟁점에 대해 전문가 토론회와 시민공청회를 열 것을 요구한다. 국회 앞 잔디광장을 개방하여 시민 대토론회를 개최할 것도 요구한다.

 

2017 9 10

노동당 정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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