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우리의 삶을 위하여
- 1월 14일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맞아
과거의 사건과 현재 사이의 시간은 우리에게 거리감을 주며, 이 거리감은 대개 좀 더 넓은 시야를 주거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하지만 그 시간은 무게이기도 하다. 특히 비극적인 사건일수록 우리는 이를 한사코 거부하기 때문에 그 분투가 시간에 겹겹이 쌓인다. 박종철 열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31년이 지났는데 그렇게 쌓여 무게가 된 시간은 우리의 디딤돌이기도 하지만 머리 위에 매달린 위태로운 검이기도 하다.
촛불 혁명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촛불 혁명까지 이어진 흐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저항과 희생은 말 그대로 수많은 박종철 열사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수많은 박종철은 부당한 체제에 저항하고 이념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고, 이러한 정신은 대지에 스며들어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분출할 때 언제나 마중물이자 자양분이었다. 그가 죽었을 때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고 했던 벗들의 다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었다. 시간에 따라 어떤 때는 크게 또 어떤 때는 작게 변화하긴 했지만, 사람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특별한 걱정 없이 사는 삶이 우리가 원한 삶이었다. 이는 어떤 때는 사회주의나 민주주의라는 이념으로 표현되었고, 또 어떤 때는 평등, 평화, 생태 등의 가치로 드러나기도 했다. 수많은 박종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다짐은 이렇게 표현되는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났고, 이는 다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자 우리를 누르는 무거운 짐이다.
박종철 열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3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가? 촛불 혁명과 <1987>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그만큼 앞으로 나아갔다고 말해야 하는가?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이제 우리의 삶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만큼 나아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지난 31년의 세월은 어느 노래 노랫말처럼 세상이 훨씬 복잡하다는 것, 그것도 끊임없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를 이해하고 따라가기 위해 분투했지만 어떤 때는 오만과 무지 때문에 또 어떤 때는 아집과 무능 때문에 꼭 성공하지는 못했다. 아니 실패한 적이 더 많다고 해야 솔직하겠다. 그러니 이념과 신의가 죽은 자의 것이라면 혁신의 노력은 산 자의 몫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많은 박종철 열사에게 두 번 절을 하지 않는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념 그리고 함께하겠다는 신의가 마치 시간을 넘어서는 정신처럼 그들과 우리를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그들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2018.1.13. 토,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안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