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더 많이 더 빨리 착취할수록
자본은 더 많이 더 빨리 쌓인다.
그럴수록
더 많은 실업 더 많은 빈곤을 낳고
자본의 위기는 더 빨라지고 더 깊어진다.
이럴때마다
자본과 권력은
고용유지 임금삭감 노동시간연장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해왔다.
그렇게 해서
자본이 만든 위기는
모두 노동으로 전가되었다.
자본이 더 많이 더 빨리 쌓일수록
자연은 더 많이 더 빨리 파괴된다.
기후위기와 전염병 창궐이 그러하다.
이번에는
자본의 위기와 코로나가 함께 왔다.
코로나 록다운으로
노동이 멈추자
자본은 숨 넘어가지만
자연은 살아나고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 였다.
실업과 빈곤
그리고 기후위기와 전염병 창궐은
자본운동의 결과였던 것이다.
모두가 뉴노멀을 말한다.
더 이상 과거는 안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은
또 또 또 또
자본의 위기를 노동에 전가하려 한다.
그들에게
인간과 자연을 위한 뉴노멀은 없다.
있다면
자본주의 뉴뉴뉴뉴노멀이 있을 뿐이다.
선진국이던 개발도상국이던
자본주의사회 어디서나
자본의 위기는 노동으로 전가되었고
그 결과는
더 많은 실업과 더 많은 빈곤
그리고 더 많은 자연파괴였다.
그것은
노사정(사회적 역사적)타협으로 치장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또 나선다.
내버려 두면 죽을 자본을 억지로 살린다 한다.
과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자본엔 어머어마한 현금을 쥐어주면서
노동엔 고용이라는 쥐꼬리같은 수표를 내던진다.
그리고
자본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고 한다.
죽어가던 자본이 입을 연다.
고용을 위해
임금삭감 노동시간연장을 받아들이라 한다.
이걸 또 노사정사회적대타협이라 포장한다.
한국노총은 무념무상으로 나섰고
민주노총은 쭈삣쭈삣 나서려 한다.
결과는 뻔하다.
자본은 대박 노동은 쪽빡이다.
경제위기와 기후위기 그리고 코로나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자본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뉴노멀로 가려면
그 현금은 가계로 쥐어주고
그 수표는 기업으로 던져져야 한다.
그러면
경제구조 자체가 뉴노멀로 바뀐다.
자본은 죽어가지만
노동과 자연은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뉴노멀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