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평당원 동지 여러분. 종로에서 출마를 결심하고 예비후보로 등록한 최현숙과 친구들입니다. 원래 이 글은 네이버의 직접행동동지들에게 드리고자 쓴 글이지만 여기 당게시판에서도 보니 저희 활동과 관련되어서 몇몇 논란이 일어나고 있어 진보정당과 평당원 민주주의, 그리고 진보정당과 성정치에 대한 저의 몇 가지 견해를 같이 밝히고자 합니다. 이 글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분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서로 더 배우고 이해하고 함께 하기를 기대합니다. 평당원 민주주의, 아래로부터 구축되는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만들기 위해서 같이 노력하겠습니다.
먼저, 이번 창당과정은 창준위회의에서도 밝힌 것처럼 저로써도 유감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는 총선 전 창당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현실 정치 세력이 되기 위해 총선에 참여해야한다는 절박함은 알지만 ‘도로 민노당’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 꾸준히 토론하고 의지를 모아가면서 당이 만들어져야 또다시 패권주의나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삶과 정치가 일치하는 제대로 된 진보신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법적인 정당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한번 얼개가 만들어지면 그 얼개를 허물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동지들이 현실 정치를 외면하고서는 탈당을 하고 관망으로 돌아서는 지지자들과 함께 하기가 힘들다고 호소하며 창당을 총선 전과 후로 나누어 2단계로 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새로이 만들어지는 진보신당과 함께 선거를 치르고 정치를 해나간다는 것이 저의 선거를 돕는 이들의 결의였기 때문에 저 개인적인 견해와는 달리 창준위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총선 전 법적 창당과정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총선전의 이 당은 명실상부한 ‘당’이라기보다는 창준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동총선대응기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총선후보로 선출되는 과정도 당원들의 투표와 결의가 아니라 광역시도당에서 인준하는 형태로 진행하기로 된 것입니다. 이 총선대응기구는 당연히 총선 후에 해체되고 아래로부터 삶과 정치가 일치하고 평당원들이 중심이 되는 명실상부한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해 가야할 것입니다. 저 또한 총선 이후에는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한 명의 평당원으로 돌아가서 성정치 과제를 중심으로 해서 진보정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동참할 것입니다.
진보신당의 가치와 해방과 사상의 위계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진보’의 진정한 가치는 가장 소외되고 억압받고 착취 받는 마지막 한 사람의 해방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미 그리스도교의 예수가 한 말이고 불교에서도 지장보살이 지옥문에서 마지막 한 사람이 나올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한 큰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래서 진보의 가치는 세상의 위계와는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마지막을 가장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마음이 진보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을 이유로 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마지막 해방을 유예시키고 유보시켜왔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과 집중’은 언제나 국민이라는 전체 인구집단에서의 ‘다수’라고 하는 수의 정치, 그리고 이미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드러내고 세력화한 권력의 ‘크기’에 기반하여 왔습니다. 한편에서는 진보정치가 근대자본주의의 대의제와 다수결 민주주의를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유감스럽게도 많은 경우 해방의 문제는 인구집단의 크기와 세력화의 힘이라고하는 ‘수와 양’에 근거하는 역설을 보여온 것입니다. 제가 진보신당은 해방을 줄 세워서는 안되며 모든 해방은 전면적인 것이며 급진적인 좌파정당으로서의 진보정당은 ‘모든 해방의 전면화’를 내세워야한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사상의 위계화입니다. 제가 사상의 위계화라고 하는 것은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사회주의와 생태주의, 여성주의가 진보진영안에서도 위계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상은 삶과 사회의 형식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대안입니다. 내가 매순간순간 어떻게 살 것이고, 누구랑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런 것에 대해 어떤 규정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사상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생태주의도 여성주의도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며 대안의 제시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태주의와 여성주의는 사회주의와 다르지 않은 동등한 ‘사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민주노동당이건 다른 진보진영에서의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사상과 가치’로서의 위상은 어떠했습니까? 언제나 생태주의와 여성주의는 ‘주의’가 아니라 어떤 ‘과제’로 취급되어오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제가 사상의 위계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상의 위계화는 늘 우리의 삶과 사회의 형식을 바꾸는 실천의 위계화로 이어지고 해방을 유예하고 유보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처럼 제가 사상과 해방은 절대 위계화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그 어떤 해방도 유보될 수 없다는 것이 진보의 핵심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래에 제기된 몇가지 문제에 대해 답변을 드립니다. 제가 진보신당에 앞서서 너무 튀어버리는 바람에 진보신당의 이미지가 굳어지고 다른 가치들이 묻혀버렸다는 불만들이 있습니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해결해야하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보니 우리들 내부에서도 제로섬 게임을 하려고 하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희는 이런 식의 비판에 대해 매우 익숙합니다. 그리고 이런 비판이 '늘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의 해방을 지지하지만'이라고 단서를 붙이지만 늘 성정치를 뒤로 돌리고 소수자들의 해방을 유예하고 유보시킨 논리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제가 만약 중간에 주목을 받았으면 어떠했을까요? 아마 분위기 한창 뜨는데 왜 갑자기 너가 주목을 받아서 다른 가치들을 가리느냐고 지적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마지막에 주목을 받았다면요. 그 결과는 더 참혹합니다. 만약 총선에서 실패한다면 제가 마지막에 주목받는 바람에 다른 '공감받을 수 있는' 주제들이 다 묻혀버려서 그렇게 되었다고 책임론까지 제기될 것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선거의 전과정 어디에서도 성정치와 저는 잠시 주목받고 사라지든가 곁다리로 존재해야만합니다. 이게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사상의 위계를 통한 해방의 유예입니다. 이것이 늘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왔습니다.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한 사람의 해방을 가장 우선시 한다는 진보의 심장을 도려낸 것이지요. 저는 이런 '진보'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런 진보는 제가 함께 해야하는 '진보'가 아니라 제가 '싸워야하는' 진보입니다.
오늘은 동지들에게 이정도로 제가 생각하고 있는 창당과정에 대한 견해, 진보정당과 사상/해방의 위계화에 대한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는 저와 저의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이 생각하는 그렇다면 사상과 해방의 위계화가 아닌 전면화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평당원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에서 진보를 다시 세우는 일에서 동지들과 많이 소통하고 많이 배우며 서로서로를 성장시키며 가도록 같이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