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의 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동지의 글이 저희 선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저희는 진보신당을 다시 꾸리면서 제법 많은 수의 동지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성소수자들의 고통과 아픔보다는 조금 더 강조하고 앞에 두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 마음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표라도 아쉬운때에 성소수자와 같은 아직은 대중들로부터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문제가 보다 '다급하고 중요한' 문제들보다 더 앞에 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아쉬워하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으며 그 마음도 이해합니다. 진보신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기에 논쟁이 아니라 격려와 응원으로 이어지는 이런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진보정당정치가 다른 보수주의 정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공학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해방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해방을 중심에 놓기에 겉으로보기에는 많이 돌아가보이는 길처럼 보이더라도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 하나 쉬이 지나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진보정치를 보수정치와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아닐까합니다. 맞습니다. 동지의 말씀처럼 어찌보면 레즈비언이, 동성애자가,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이제 막 진보정당의 새로운 깃발을 올리는 순간에 맨 앞에서 서게 된 것은 2표 받을 일 1표 받는 것이고, 바로가면 될 길을 돌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면서 '연대'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처럼 돌아가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마음이 조급해질때마다 오히려 돌아가며 맨 뒤에 떨어져 있는 해방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라도 '이물질'처럼 끼여서 동지들이 질러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때마다 '어이 어이'를 외치는 것이 진보정당에 약간 최현숙과 그의 친구들이 존재하는 '진보적 의미'가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저희도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동지의 글을 읽으면서 진보정당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서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 그것을 통해 해방에 대한 나의 지평을 넓히고 대중을 설득하는 내 언어를 만들어나가는 것. 이를 통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아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사랑과 혁명에 대하여라는 노래인데, 아마도 가사가 대충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고 가슴속 심장에 붉은 피로 모든 위장된 진실을 불태우고 내곁에 선 이들과 함께 서로 변화를 부추켜 일으키는 아아 혁명의 길이여'라는 노래일 것입니다. 동지는 저희로 인해 해방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저희는 동지로 인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언어를 더 설득력있게 만들 수 있었던 것. 이것이 진보정당이 해방의 정당이고 변혁의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징조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는 자가 마지막에 이기는 자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하며 저희도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또하 최현숙은 성소수자들의 의제만을, 성정치의 사상과 가치만을 주장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 하나도 제대로 하기가 벅차다는 것을 알지만 최현숙과 친구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삶의 파단에 대한 공격,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사회연대'에 대해 주장할 것입니다. 물론 저희는 잘 압니다. 언론은 우리가 99줄에 걸쳐 신자유주의와 삶의 파탄에 대해 글을 쓰고, 1줄을 성정치에 대해 쓴다고 하더라도 그 한줄만 하이라이트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입을 다물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들이 그 99줄을 1줄과 동등하게 다루는 날이 이 땅에서 성소수자들이 해방되는 날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쉬지않고 줄창 떠들 것입니다. 이봐. 우리 여기 있어. 여기도 봐.라고 말입니다. 그 길에 동지와 함께 하겠습니다. 동지도 저희와 함께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저희는 진보신당을 다시 꾸리면서 제법 많은 수의 동지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성소수자들의 고통과 아픔보다는 조금 더 강조하고 앞에 두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 마음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표라도 아쉬운때에 성소수자와 같은 아직은 대중들로부터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문제가 보다 '다급하고 중요한' 문제들보다 더 앞에 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아쉬워하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으며 그 마음도 이해합니다. 진보신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기에 논쟁이 아니라 격려와 응원으로 이어지는 이런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진보정당정치가 다른 보수주의 정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공학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해방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해방을 중심에 놓기에 겉으로보기에는 많이 돌아가보이는 길처럼 보이더라도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 하나 쉬이 지나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진보정치를 보수정치와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아닐까합니다. 맞습니다. 동지의 말씀처럼 어찌보면 레즈비언이, 동성애자가,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이제 막 진보정당의 새로운 깃발을 올리는 순간에 맨 앞에서 서게 된 것은 2표 받을 일 1표 받는 것이고, 바로가면 될 길을 돌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면서 '연대'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처럼 돌아가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마음이 조급해질때마다 오히려 돌아가며 맨 뒤에 떨어져 있는 해방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라도 '이물질'처럼 끼여서 동지들이 질러가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때마다 '어이 어이'를 외치는 것이 진보정당에 약간 최현숙과 그의 친구들이 존재하는 '진보적 의미'가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저희도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동지의 글을 읽으면서 진보정당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서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 그것을 통해 해방에 대한 나의 지평을 넓히고 대중을 설득하는 내 언어를 만들어나가는 것. 이를 통해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아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사랑과 혁명에 대하여라는 노래인데, 아마도 가사가 대충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고 가슴속 심장에 붉은 피로 모든 위장된 진실을 불태우고 내곁에 선 이들과 함께 서로 변화를 부추켜 일으키는 아아 혁명의 길이여'라는 노래일 것입니다. 동지는 저희로 인해 해방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저희는 동지로 인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언어를 더 설득력있게 만들 수 있었던 것. 이것이 진보정당이 해방의 정당이고 변혁의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징조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는 자가 마지막에 이기는 자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하며 저희도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또하 최현숙은 성소수자들의 의제만을, 성정치의 사상과 가치만을 주장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 하나도 제대로 하기가 벅차다는 것을 알지만 최현숙과 친구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삶의 파단에 대한 공격,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사회연대'에 대해 주장할 것입니다. 물론 저희는 잘 압니다. 언론은 우리가 99줄에 걸쳐 신자유주의와 삶의 파탄에 대해 글을 쓰고, 1줄을 성정치에 대해 쓴다고 하더라도 그 한줄만 하이라이트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입을 다물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들이 그 99줄을 1줄과 동등하게 다루는 날이 이 땅에서 성소수자들이 해방되는 날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쉬지않고 줄창 떠들 것입니다. 이봐. 우리 여기 있어. 여기도 봐.라고 말입니다. 그 길에 동지와 함께 하겠습니다. 동지도 저희와 함께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