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 이명박의 대한민국
한겨울 용산 철거민들은 살기 위해 망루로 올라갔다 주검으로 가족들에로 돌아왔다. 그것은 진압이 아니라 학살이었다. 이명박은 국민을 도시 테러리스트로 규정함으로서 우리들 주권의 박탈을 선언 했다. 우리는 법을 지킬 의무가 없어졌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언론법을 개악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우리들의 알 권리를 박탈하려고 하고 있다.
박종태 열사 정신계승 5월16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457명이 연행되었다. 집회 뒤 해산하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 하였다. 현장은 전쟁터와도 같았다. 경찰은 노조 방송차량의 유리창을 곤봉으로 부수고 운전자를 무릎 꿇렸다.
황석영은 이 끔찍한 ‘이명박의 대한민국’을 해외 순방을 수행하며 중도 실용주의로 규정하고 광주의 학살을 오도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행한 모든 것을 뒤집었다. 한마디 해명도 없이. 좌우를 그렇게 쉽게 오갈 수 있는 그 상상력이, 그것을 사상의 자유라 옹호 할 수 있는 ‘배운 놈들’의 뻔뻔함이 부럽다. 사람이 면이 있지 그렇게 권력 주변을 기웃거리고 싶었을까? 이것이 변절이 아니면 무엇인가.
2009년 여름, 운송단가 30원 때문에 노동자가 죽어야 하는 나라. 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독재의 끔찍한 기억들은 신문지면의 언어들을 통해 회귀하고 있다. 그 언어는 우리의 실제 삶을 억압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체주의를 향해 역사의 역주행 과정의 끝에서 자신의 죽음을 대면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모든 상황이 벼랑 끝에 놓인 자신의 일 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이 일정에 올라있다. 촛불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물리력을 동반한 거리투쟁만이 침묵하는 이들을 말하게 하고, 사람들을 무기력함으로부터 깨어나게 할 것이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싸울 기회조차 갖지 못 할 것이다.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