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 대한 나의 착각
게시판이 세상사는 이야기 하나로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 대해, 별로 문제의식이 없었다.
다만 당원게시판의 폭력적 수위가 너무 높아서 문제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자체는 문제이긴하다.
작년부터 내내 주장하듯, 중앙당의 온라인마인드는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이다.
그게 지금 당원게시판이 엉망이 되고 폭력이 되고 당원이 소통하기보단 갈등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사는 이야기라는 하나의 게시판에서 지지고 볶는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은 여전했고, 그 자체가 커다란 문제라는 생각은 크게 갖지 못했다.
한 방에서 지지고 볶기
그러다가 여성당원게시판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당원게시판의 폭력의 수위는 너무 높아서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고, 여성정치를 위한 아무런 보장이 없는 중앙당홈페이지는 심각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판단의 전적인 근거였다.
그리고 최근 여성당원게시판의 필요에 대한 이런 저런 논쟁이 오가기 시작하고, 그걸 하나씩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여기가 흥부네집이구나....
열 둘도 넘는 자식을 한방에 몰아넣고 사니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말이다.
아니 차라리 흥부네집처럼 손바닥만한 집구석에 방을 만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눈물도 나고, 서로 위로도 해가면서 살아갈 수 있다.
당원게시판은 집을 잘 치우면 빈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거실에 몰아놓고 여기서 다같이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게임도 하고 그러라는 식이다.
집 좀 잘 치워서 자식들 방만들어줄 생각도 안하는 성의 없는 부모가 자식들을 아프게 하는 꼴이다.
이러다가 짝을 이룬 자식마저도 다같이 한방에 살라고 하는 거 아닌지 걱정된다.....
장성한 자식들 제방 만들어 주기
부문위원회가 성립되고 각자의 게시판이 있으면 좋겠다.
어느 당원의 설명에 의하면 부문이라는 조금 한정된 틀안에 사람들이 들어가면 훨씬 조심스러운 글쓰기와 주제에 부합하는 글쓰기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자유로운 글쓰기에 찬동하는 바이지만, 인간에게 자유가 자유로서 기능하는 것은 다른 이념들의 충분한 합의와 구현을 전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아주 오래전부터 문제되어온 근본적인 가치이지만, 늘 사안별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유는 여타의 가치들에 있어서 균형을 늘 고민해야하는 가치이며, 자유를 절대의 자리에 넣을 경우 희생될 다른 가치들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하는 가치이다. 그리고 시대정신과 함께 그 자유의 구현이라는 구체성에 대해서는 언제나 구성원들의 합의가 필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부문위원회별 게시판은 그 안에서 각자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생산성을 지닐것이고, 당원게시판의 플러스알파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각 부문별 게시판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성은 저절로 세상사는 이야기에도 자연스레 반영될 것이다.
지금의 세상사는 이야기는 일년전의 그 생산성과 발랄함을 잃고 갈등의 상황에서만 활발하게 작동한다.
일년전의 그 생산성과 발랄함은 일정 수준의 당원간의 신뢰가 기반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신뢰가 사라지고 있고, 그런 신뢰를 부문별게시판에서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각자 집중할 주제가 있는 게시판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방이 있다면 거실에서 일어나는 싸움박질을 좀 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으며 갈등은 휠씬 쉽게 진화되고 치유도 더 빠를 것이다.
봉건에서 벗어나기
당게에서 표현의 자유는 이미 획득되어 있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부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폭력의 자유로 변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 묘한 일이다.
이미 부여된 표현의 자유를 부르짓는 사람들로 인해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말이다.
그들이 이미 누리는 표현의 자유가 폭력의 자유로 변용되는 것이 문제인데, 그들은 끊임없이 표현의 자유가 문제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폭력인데도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그들은 근대 이전에 살면서 봉건투쟁을 혼자 전개하고 있으므로 외롭지 않을리없다.
그 외로움은 안타깝지만, 제발 21세기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참고로 봉건의 대표적 가치는 신분제와 남존여비와 장유유서 등등이다.)
여성당원게시판의 설치
부문위원회가 필요하고 그 각자의 게시판이라는 발전적인 분화를 통해 당원게시판 전체가 활발한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단의 구성원들에게 소통을 해야할 다른 차원의 기능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에게는 언제나 적잖은 조건들이 당활동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여성당원에게 게시판이 필요하다.
여성에게는 일상적으로 수행해야할 많은 일들이 존재하고 그 일들이 현실적으로 여성에게는 활동의 장이기 때문에 그 일상적인 조건들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왜 성별게시판인가의 문제는 이러한 이유들이지만, 성별구분으로 게시판을 세우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의 물음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역으로 성별구분이라는 안이한 구분이 정말 부당한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볼 필요를 위해서라도 여성게시판은 필요하다.
진보진영의 여성정치가 어떤 모습이어야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여성정치라는 틀이 과연 맞는지 그것조차 나누고 고민하지 못했다.
산개된 활동들에 대한 우리끼리 소통하기를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런 소통을 전개하기엔 지금 당원게시판은 너무나 뻘밭이다.
이 뻘밭에선 걸을 수 없다.
여성에게 공간을!
게시판이 세상사는 이야기 하나로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 대해, 별로 문제의식이 없었다.
다만 당원게시판의 폭력적 수위가 너무 높아서 문제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 자체는 문제이긴하다.
작년부터 내내 주장하듯, 중앙당의 온라인마인드는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이다.
그게 지금 당원게시판이 엉망이 되고 폭력이 되고 당원이 소통하기보단 갈등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사는 이야기라는 하나의 게시판에서 지지고 볶는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은 여전했고, 그 자체가 커다란 문제라는 생각은 크게 갖지 못했다.
한 방에서 지지고 볶기
그러다가 여성당원게시판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당원게시판의 폭력의 수위는 너무 높아서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고, 여성정치를 위한 아무런 보장이 없는 중앙당홈페이지는 심각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판단의 전적인 근거였다.
그리고 최근 여성당원게시판의 필요에 대한 이런 저런 논쟁이 오가기 시작하고, 그걸 하나씩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했다.
여기가 흥부네집이구나....
열 둘도 넘는 자식을 한방에 몰아넣고 사니 어찌 갈등이 없겠는가 말이다.
아니 차라리 흥부네집처럼 손바닥만한 집구석에 방을 만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눈물도 나고, 서로 위로도 해가면서 살아갈 수 있다.
당원게시판은 집을 잘 치우면 빈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억지로 거실에 몰아놓고 여기서 다같이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게임도 하고 그러라는 식이다.
집 좀 잘 치워서 자식들 방만들어줄 생각도 안하는 성의 없는 부모가 자식들을 아프게 하는 꼴이다.
이러다가 짝을 이룬 자식마저도 다같이 한방에 살라고 하는 거 아닌지 걱정된다.....
장성한 자식들 제방 만들어 주기
부문위원회가 성립되고 각자의 게시판이 있으면 좋겠다.
어느 당원의 설명에 의하면 부문이라는 조금 한정된 틀안에 사람들이 들어가면 훨씬 조심스러운 글쓰기와 주제에 부합하는 글쓰기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자유로운 글쓰기에 찬동하는 바이지만, 인간에게 자유가 자유로서 기능하는 것은 다른 이념들의 충분한 합의와 구현을 전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아주 오래전부터 문제되어온 근본적인 가치이지만, 늘 사안별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유는 여타의 가치들에 있어서 균형을 늘 고민해야하는 가치이며, 자유를 절대의 자리에 넣을 경우 희생될 다른 가치들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하는 가치이다. 그리고 시대정신과 함께 그 자유의 구현이라는 구체성에 대해서는 언제나 구성원들의 합의가 필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부문위원회별 게시판은 그 안에서 각자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생산성을 지닐것이고, 당원게시판의 플러스알파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각 부문별 게시판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성은 저절로 세상사는 이야기에도 자연스레 반영될 것이다.
지금의 세상사는 이야기는 일년전의 그 생산성과 발랄함을 잃고 갈등의 상황에서만 활발하게 작동한다.
일년전의 그 생산성과 발랄함은 일정 수준의 당원간의 신뢰가 기반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신뢰가 사라지고 있고, 그런 신뢰를 부문별게시판에서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각자 집중할 주제가 있는 게시판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방이 있다면 거실에서 일어나는 싸움박질을 좀 더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으며 갈등은 휠씬 쉽게 진화되고 치유도 더 빠를 것이다.
봉건에서 벗어나기
당게에서 표현의 자유는 이미 획득되어 있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부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폭력의 자유로 변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 묘한 일이다.
이미 부여된 표현의 자유를 부르짓는 사람들로 인해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말이다.
그들이 이미 누리는 표현의 자유가 폭력의 자유로 변용되는 것이 문제인데, 그들은 끊임없이 표현의 자유가 문제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폭력인데도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그들은 근대 이전에 살면서 봉건투쟁을 혼자 전개하고 있으므로 외롭지 않을리없다.
그 외로움은 안타깝지만, 제발 21세기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참고로 봉건의 대표적 가치는 신분제와 남존여비와 장유유서 등등이다.)
여성당원게시판의 설치
부문위원회가 필요하고 그 각자의 게시판이라는 발전적인 분화를 통해 당원게시판 전체가 활발한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단의 구성원들에게 소통을 해야할 다른 차원의 기능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에게는 언제나 적잖은 조건들이 당활동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여성당원에게 게시판이 필요하다.
여성에게는 일상적으로 수행해야할 많은 일들이 존재하고 그 일들이 현실적으로 여성에게는 활동의 장이기 때문에 그 일상적인 조건들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왜 성별게시판인가의 문제는 이러한 이유들이지만, 성별구분으로 게시판을 세우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의 물음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역으로 성별구분이라는 안이한 구분이 정말 부당한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 볼 필요를 위해서라도 여성게시판은 필요하다.
진보진영의 여성정치가 어떤 모습이어야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여성정치라는 틀이 과연 맞는지 그것조차 나누고 고민하지 못했다.
산개된 활동들에 대한 우리끼리 소통하기를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런 소통을 전개하기엔 지금 당원게시판은 너무나 뻘밭이다.
이 뻘밭에선 걸을 수 없다.
여성에게 공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