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당원 김민하입니다.
이 글은 매우 긴 글입니다. 그러니 인내심이 없는 분은 애초에…
저는 2002년 말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2006년 전국건설운송노조 덤프연대라는 곳에서 잠시 일을 했습니다. 이후 2007년 강남구위원회에 상근했고 2008년 진보신당 창당 때부터 경기도당에 사무국장, 정책국장으로 상근했으며, 2009년 말 늦은 나이에 웬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잠시 이 바닥을 떠나 있다가, 2011년 말에 복귀해 중앙당에서 일을 했습니다. 잘해보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병환으로 2012년 말에 당직을 그만뒀고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김종철님과는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전진’ 활동을 시작으로 하여 현재 ‘녹색사회주의연대’까지 주류적 행보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차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은, 제가 경험이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뭐 그렇게 조무래기(??)의 처지는 아니라는 점을 혹시라도 이 글을 읽게 될 제 윗세대들에게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모 언론에 ‘김종철이 젊은 벗들에게’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종철님이 젊은 세대들에게 남기는 메시집니다. 읽어보니 진보결집을 주장하고 계신 분들이 하는 말씀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차별화되는 지점은 있는데, 과거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우리 당의 젊은 당원들이 맞이하게 될 미래가 너무나도 힘들 것이기에 진보결집이 필요하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자신에게는 후원해줄 수 있는 지인과 ‘당원들이 모여드는 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이 있었지만 여러분에게는 그런 게 없지 않느냐는, 그런 얘깁니다.
진보결집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현실 진단에 저는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 당의 당력은 거의 소진되었습니다. 지역조직과 광역시도당은 무너졌습니다. 그것을 책임질 책임자들도 지쳐 나가떨어졌습니다. 재정도 부족합니다. 재정의 근간이 될 당원 수는 감소하기만 합니다. 이 상태라면 선거를 치르기 어려울 것이고 2016년 총선이 지나면 존재감이 없는 신세로 전락(심지어 이게 轉落이기는 할까요?)하게 될 거라는 공포감을 저도 똑같이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 자신이 우리 당이 처한 위기의 전형입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다는 이유로 당의 부족한 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생계전선으로 밀려났으며,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 시에는 가정이 공중분해 됐습니다.
그러나 진보결집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당의 입장에서 위기의 극복은 다른 정치세력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으로 뛰어들어 우리의 노선에 관철시킬 때에야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선을 잃고, 이름을 잃고, 존재를 잃어서는 진보결집을 이루더라도 위기를 극복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위기의 극복이 아니라 소멸일 것입니다.
진보결집을 주장하는 분들의 일부는 정의당과의 1대1 통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유력한 진보결집의 실현 경로로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정동영 전 장관이 밀고 있는 소위 ‘국민모임’을 통한 방식입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도 이 국민모임을 진보재편의 주요 파트너로 언급하였습니다. 일부 언론은 ‘호남에서 지분을 보장받는’ 등의 구체적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진보결집 선본에서 축사를 하셨고 진보결집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노동/정치/연대 양경규 공동대표 역시 별도의 글을 통해 국민모임을 통한 진보결집 경로에 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정동영과 국민모임, 정의당,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등이 모인 테이블에서 진보정치세력의 재편을 논의하게 되면, 우리가 이들과의 내부경쟁에서 승리해 우리의 노선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요? 그럴 확률은 희박합니다. 2년간 1400명의 당원이 줄었고 당협 상근자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남지 않은 당력으로 한 때 보수정당의 앞날을 좌우했던 세력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진보결집의 과정에 당력의 100%가 따라갈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과연 김종철님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장담 못합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소위 ‘친노세력’들에게는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꼭 정동영 전 장관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거리를 둬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정동영 후보 측의 동원선거, 휴대폰 명의 도용 의혹 등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후보들은 우리가 흔히 부르는 ‘패권주의’의 문제를 사실상 여당의 입장에서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패권주의 하면 김종철님도 피해자였던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동작구에 뼈를 묻을 것처럼 보이지만 김종철님은 사실 민주노동당 초기 용산구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용산지구당 사태’의 당사자, 바로 그렇습니다. 인천연합으로 불리는 NL활동가들이 온갖 편법적 수단을 동원해 밀고 들어왔고 김종철님은 ‘무장해제’ 됐습니다. 그 당시 NL활동가들은 우리의 주요 재편 논의 대상인 정의당에 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민주노동당 5년은 자주파들과의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는 것이었습니다. 용산지구당 뿐만이 아니라 거의 전국에서 이런 식의 조직 장악이 반복됐습니다. 이 부끄러운 역사는 ‘파벌’이라는 두꺼운 책으로 묶여 출판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2006년 지도부 선거에서 우리는 평등파 조승수 대 자주파 문성현의 1대 1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과학적인(?) 표 계산 결과 우리의 승리를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태도는 너무나도 여유로웠습니다. 선거 종반에 가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부동표로 분류했던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입당한 신입당원들은 모두 자주파들이 조직했었다는 걸. 그래서 졌습니다. 그 이후 모든 쟁점에서 한 번도 못 이겼습니다. 급기야 김종철님은 ‘분당’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종철님은 그들이 이제는 변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으며 학습한 바가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정의당의 지금까지 리더십을 보면 그렇게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 본래 소위 자주파 중 인천연합은 가장 세련된 정치력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내부의 지도체제가 변했다는 말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적 순간까지 이들의 ‘선의’가 작동할지는 그들 스스로만 알고 있는 것이며 누구도 이를 보장해줄 수 없습니다.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이 진보결집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노동당에 전국연합이 결합할 때 저의 윗세대들은 “NL활동가들이 변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중정당의 질서에 적응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2004년에도, 2006년에도, 2007년에도, 2012년에도 그들은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우리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서로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종철님을 신뢰하는 것은 이제 와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김종철님과 우리가 주도한 일들 중 특별히 하고 싶은 대로 안 된 것도 없는데, 당은 위기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어 죽을 각오를 하더라도 자주파와 사상적 결별을 하자고 해서 민주노동당을 나왔고, 통합진보당 창당에 함께하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는 판단에 독자파로 남았으며, 진보좌파의 깃발을 세우기 위해 사회당과의 통합을 추진했고, 홍세화 대표 체제로 총선을, 김종철 대행 체제로 대선을 치렀습니다. 지방선거 2% 전략과 보궐선거에서 통합진보당 유선희 후보와의 공동기자회견까지, 모두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당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김종철님의 선택을 신뢰하고 따라갈 수 있을까요?
물론 최선의 선택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무슨 제안을 할 때에는 어떤 선택에 어떤 리스크를 감수하게 된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김종철님은 당분간 우리가 노동당으로 남을 경우 젊은 세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진보결집에 성공하더라도 그 조건은 별반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당에서는 생계가 보장되지 않아 젊은 활동가들이 당을 떠난다고 말하지만, 민주노동당 시절에 이들은 정파갈등에 질려 진보정당운동을 떠났습니다. 자체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정파는 차근차근 상근자 숫자를 늘려나갔고 그렇지 못한 정파 소속의 상근자들은 아무런 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괴롭힘에 지쳐 떨어져 나갔습니다. 정파들은 당협위원장 직을 차지한 후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래 일하던 상근자가 그만 둘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였습니다. 진보결집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이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쟁의 승자가 우리일 가능성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매우 희박합니다.
아마 김종철님도 이러한 여러 어려움들을 예상하고 있고 또 나름의 각오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겠지요, 김종철님은 저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0점짜리 답안지와 80점짜리 답안지의 경쟁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45점짜리 답안지와 32점짜리 답안지의 경쟁이다.” 완전하지 않은 여러 노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자신의 계획을 갖고 진보결집의 길에 나서는 젊은 당원들을 저는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경기도당에 상근하던 시절 저와 함께 ‘20대 당원 모임’을 조직했던 한 당원은 이제 진보결집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하루 빨리 성소수자 국회의원을 한 명 만들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비판하고 나름대로 반론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존중하고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젊은 당원은 더 이상 노동당에서 활동가로서 개인의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며 진보결집이니 이런 차원을 넘어 아예 제1야당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을 잇기를 주저했지만 존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 꿈과 계획은 미숙한 부분이 있더라도, 또 어떤 실패의 경험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더라도 그 자체로 소중한 것입니다.
다만, 저는 위와 같은 이유로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노동당이 위기에 빠진 책임은 여러분들의 몫이 아닙니다. 노동당의 위기는 우리가 손짚고 있는 곳이 늪이라는 데서 온 게 아니라 윗세대들이 우리를 굳이 그 늪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데서 왔습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문제에 있어서 윗세대들의 생각을 믿지 맙시다. 만에 하나라도 윗세대들이 여러분을 책임져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맙시다. 그들이 뭘 잘 해낼 거라는 기대를 갖지 맙시다. 그들의 입장을 기준으로 노선을 선택하지 맙시다. 우리는 아예 윗세대들을 배신합시다. 윗세대들의 뒤통수를 막 칩시다.
진보정당운동의 울타리 안에 있는 젊은 세대의 당원들은 이미 사분오열돼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감정적인 충돌을 빚고 서로를 백안시 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이 지긋지긋한 구도마저 우리 윗세대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들끼리의 이전투구는 커튼 한 장만 걷고 봐도 가히 가관입니다. 이런 퇴행적인 구도에 휩쓸리지 맙시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존중합시다. 진보정치 지리멸렬의 시대가 지나고 윗세대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소멸하면 언젠가 다시 우리가 하나로 묶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집시다.
저는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 장석준님 등이 제기한 ‘진보의 재구성’과 ‘낡은 이념의 극복’ 등의 노선을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보재편 주장이 제기된 후 몇 차례의 기회를 통해 저의 윗세대들과 이 노선의 문제를 다시 토론하였습니다. 저의 결론은 우리 윗세대들에게 이런 노선의 문제는 그저 장식품에 불과하였다는 것입니다. 저의 결론이 성급한 것이었다는 게 뒤늦게라도 밝혀지길 바라지만 저의 윗세대들이 한 발언들은 아마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등대정당 계속 할 수 있지만, 내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하진 못하겠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그럽디다. ‘형님, 전 형님 나이까지 이런 식으로 운동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차마 밝힐 수 없는, 자기 세대의 생존을 걱정하는 더 기상천외한 발언들을 저는 많이 들었습니다.
당의 현재에는 저도 책임이 있습니다. 서두에 밝혔듯 오랜 기간 당직을 맡았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윗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가교 역할을 했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책임을 지려 합니다. 저는 윗세대를 믿고 따르기 보다는 젊은 세대와 함께하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특히 얼마 전 접한, 아무 기댈 데도 없고 의문으로만 가득 차있는 젊은 당원들의 눈빛이 가슴에 밟힙니다. “해볼 거 다 해봤는데 더 뭘 하려고?” 라는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든든한 쪽 말고, 되도록 아무것도 없는 쪽의 편에 서겠습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표 선거에서는 집도 절도 없는 윤현식 후보에게 한 표를 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