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유행한지가 꽤 됐습니다. 1960-70년대 미국사회의 보수성에 반기를 든 뉴욕의 흑인과 히스패닉계 집단에서 처음 생겨서 한국까지 건너왔습니다. 힙합은 총이나 폭력을 대신해 춤과 랩으로 우열을 가리는 프리스타일 배틀과 자신들의 영역을 낙서로 표시한 그라피티를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음악에서 힙합은 랩(rap)과 기계적 효과음인 스크래치(scratch), 음원(音源)을 조작해 재구성하는 브레이크믹스에 의한 음향효과를 사용하는 것 등입니다.
뉴욕의 가난한 흑인과 히스패닉계 남자아이들이 쑥쑥 클 나이에 자신의 몸에 맞는 새 옷을 입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소년들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후줄근한 옷을 벗고 상대적으로 깨끗한 아버지나 형의 옷과 신, 모자 등을 걸치고 자신의 변신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덩치 큰 흑인 아버지가 입던 옷을 소년이 걸쳤을 때 모습은 상상하게 어렵지 않습니다. 접어도 끌리는 바지, 길게 남은 허리띠, 푸대를 씌운 듯한 셔츠, 큰 모자, 큰 신발....... ㅎ ㅎ ㅎ 처음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그러나 이것이 이제 패션의 한 장르가 됐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이미 다양한데도 어떤 아이들은 교복과 실내화, 필통, 가방 등의 기성품에 끊임없이 자기만의 변형을 가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7-80년대 교복을 고쳐 입었던 기억과 경범죄로 단속하던 장발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장발단속을 피하려고 금강을 수영으로 참 많이 건넜다는, 어떤 선배님의 이야기는 엄혹한 현실에 대한 저항도 참 낭만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역보존과 확장을 위한 표시게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빨리 그리는 솜씨와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손에 잡힌 것이 스프레이 페인트였습니다. 욕설과 신세한탄에서 시작된 낙서가 탄압을 받자 기호와 암호로 바뀌고 이웃동네 세력과 서로 경쟁하면서 거리 전체(전동차, 승강장, 쇼윈도 등 가리지 않고)가 서서히 그림으로 도배되게 됐습니다. 사회학자, 미술평론가들이 이 행위에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피라미드를 만들던 노예들과, 노예제가 폐지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할렘가의 사회적 처지가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노예들이 피라미드의 벽에 손톱과 돌멩이로 긁어 자신들의 신세를 표현한 그라피토와 스프레이를 합성해서 그라피티라고 명명했고 바스키아, 키스 헤링 같은 이들이 유명화가반열에 올려졌습니다. 내 생각에 한국판 그라피티는 학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하루에 8시간에서 16시간을 생활하는 학교건물 이곳저곳의 낙서와 긁고, 뚫고, 그린 책상에는 우리사회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단속대상이지요. 그런데 청소년의 문화 공간과 활동을 마련해 준다는 취지로 스프레이 페인팅을 할 수 있도록 어느 공간의 벽을 할애해주는 정책들이 추진되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이 그 거리에 나갈 시간이 있기는 한 걸까요?
랩과 스크래치 등의 음악 역시 조악한 장비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정신은 유효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들 속에서 소통하고 즐기려는 문화생산성을 몸속에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의 대중음악은 자본이 점령해 버린 것 같습니다.
신촌일대의 인디밴드들 조차 생존이 어렵답니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고가의 장비를 갖춘 녹음실에서 나오는 화려한 음반만 유통될 뿐, 싸구려 녹음기를 틀고 벌이는 프리스타일 배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역시 단속대상이지요. 조명과 음향까지 갖춰진 무대를 만들어 주고 거기에서만 하라고 합니다.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는 과정엔 관심이 없고 결실만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흑인 특유의 탄력성으로 인해 뒤꿈치를 튕기며 하늘로 솟듯 걷는 청소년들의 걸음걸이와 랩의 내용을 표현하는 손짓도 경망스러움으로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패션모델들이 무대에 서기 위해 워킹을 연습하듯 그 걸음과 손짓을 배우려고 합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문화는 진정성이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흐른답니다. 이렇게 보면 빈부격차가 가장 심하고 다민족 국가에서 상대적 소외감이 가장 심했던 뉴욕 빈민가의 히스패닉, 흑인소년에게서 생긴 힙합이 북반구 청소년의 문화공통어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요.
일반적으로 모든 문명은 끓어오르는 내용을 다 담기 어려운 어설픈 형식의 ‘태동기’를 거쳐 형식이 내용을 제대로 담아내는 ‘황금기’, 내용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쇠태기’를 거치게 된답니다.
푸대자루 같은 옷 입기의 애환과 계급성을 보편적 패션으로 만드는 순발력이, 깡통 긁히는 소리와 낡은 LP판을 손으로 돌리며 찾아낸 리듬을 있는 그대로 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걸음의 탄력성을 경박함이 아닌 차이의 아름다움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낙서를 예술로 보고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예술가, 사회학자, 교육자들의 노력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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