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님이 망각하고 있는 중요한 사안 (한미FTA)
히포님의 건보하나로에 대한 놀라운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지엽적으로만 보고 있는 태도입니다. 대개 특정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업종에 대한 지식을 모든 것에 대한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게 되죠.
그런데 그런 것은 조금만 업종 바깥으로 나와서 세상을 총체적으로 보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건보하나로에 대한 히포님의 열정과 관계없이 그것은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는 사안입니다. 건보하나로는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보장성을 높여놓아도 결국엔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법률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을 때 헌재에 의해서 위헌 판결이 내려지듯이 건보하나로가 박살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건보하나로를 만드는 것은 바로 한미FTA 입니다. 때문에 히포님이 건보하나로를 그토록 애지중지하신다면 일단 한미FTA를 분쇄하는 투쟁에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건보하나로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봅시다. 우선 지도 하나를 보고 시작하지요.
우리나라의 경제자유구역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축소하겠다고 하지만 어쨌든 전국 거의 모든 곳에 경제자유구역이 존재합니다. 이 지도가 왜 필요한지 다음의 그림을 보고 이해해보지요. 한미FTA 협정문의 일부분입니다.
(유보한다= 가진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은 보건의료서비스와 관련해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해 보건의료정책을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제주도와 다른 경제자유구역에 설립된 영리병원, 약국에 대해서는 한국의 법률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제약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한미FTA에 의해서 그렇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설립된 영리병원 등은 우리나라의 건보체계에서 강제로 적용하고 있는 당연지정제를 거부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건보환자를 안 받아도 법률위반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이제 과거 노무현 정권 이래 총자본이 어떤 정책을 취하려 하는지를 알아보지요.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성자본과 그것의 대리인인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부는 한국 내에 영리의료법인을 설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때문에 언젠가는 (특히 한미FTA가 비준된 다음에는)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들어서게 되겠지요. 영리병원이 들어선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향후 언젠가 들어선 영리병원에서는 앞으로 이렇게 하겠지요.
" 현금 가진 부자님들! 어서 오세요.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건보 환자? 너희는 꺼져!"
현행법상 우리나라 병원에서 이렇게 하면 불법입니다. 강제지정제에 의해서 불법이 되지요. 그러나 영리병원에서는 강제지정제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입니다.
이게 부작용이 심해지면 폐지하면 된다고요? Oh, No! Never, 불가!!! 한미FTA의 독소 조항인 역진방지조항(한번 개방된 수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게 하는 조항. 이를테면 한번 민영화한 기업은 절대로 다시 국유화할 수 없다는 조항임)에 의해 절대 불가능합니다. 한번 강제지정제가 제주도나 경제자유구역에서 강제지정제가 폐지되면 다시는 그 지역에서 강제지정제가 부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역진방지조항(래칫)의 기능입니다.
때문에 영리병원에 의해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건보가 무력화된다고 해도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자본과 정부가 영리병원을 끈질기게 도입하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그 미래를 조금만 살짝 들여다볼까요.
앞에서 저는 '현금 가진 부자님들!' 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새 어느 부자가 현금 가지고 병원에 찾아갑니까. 그들에게는 현금 대신 보험이 있지요. 그래서 실제로는 비싼 보험을 든 사람들이 영리병원에 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월 10만원짜리 실손보험이 아니라 월 50, 100만원짜리 보험을 든 부자들이 영리병원의 주 고객이 될 것이라는 얘기지요. 때문에 영리병원이 설립된 뒤에는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등등 거의 모든 손보사들이 영리병원과 계약을 맺고 그런 비싼 보험을 판매하려 할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비싼 보험 가입자인 부자님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보험료를 이중으로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버립니다. 건보료에다 민간보험을 내고 있는 것이죠. 자기들은 벌레같이 천박한 민중들과 어울리기 싫어 일부러 비싼 보험료 내고 영리병원 이용하는데 건보체계 때문에 보험료를 중복해서 내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러면 부자들은 자신들의 동맹 세력들과 모의를 한 뒤에 법률 개정을 획책하거나 헌법소원 등을 내서 건보에서 탈퇴하려고 할 것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므로 어떤 그럴듯한 이유를 끄집어내 고매하신 판관 나으리들은 부자들의 소원대로 건보를 임의가입 형식으로 바꾸어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최상위층 부자들은 건보체계에서 탈퇴하여 민간의보만을 부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져오는 1차적 결과는 건보 재정의 부실화입니다. 우리나라 건보료에 대해 제 개인적으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건보체계가 사회복지적 개념을 취하고 있어서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습니다. 즉 부자들에게는 더 많은 건보료를 걷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원해주는 기능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달리 이야기해서 부자들이 내는 건보료가 훨씬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 부자들이 건보를 탈퇴하여 민간의료보험으로 이동하면 건보 재정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는 자료가 없어서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전 국민의 수를 100명이라 가정합니다.)
전국민의 의보료가 100만원이라 할 때 상위 5% 부자가 내는 건보료는 30입니다. 상위 5%가 민간의보로 이동하면 이제 95명의 국민이 70만원으로 의료혜택을 받아야 합니다. 이전보다 열악해졌습니다. 건보재정에 돈이 없어졌으므로 보험 혜택이 30만원 어치가 축소됩니다. 남아있던 중상위층 15%가 이에 불만을 가집니다. 그들은 조금 부담이 되지만 별 기능도 못하는 건보에 남아있느니 민간의보로 옮기겠다고 결심합니다. 중상위층 15%가 이탈하면서 다시 건보 재정이 30만원이 축소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80명의 국민에게 돌아갈 40만원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건보 혜택은 빠른 속도로 축소됩니다. 건보가 커버하는 부분이 엄청나게 줄어듭니다. 이렇게 두어 사이클을 돌아가다 보면 건보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멕시코 같은 나라가 돼버립니다.
현재 멕시코의 의보체계는 국가가 보장하는 의료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나프타(NAFTA) 비준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의료보험은 멕시코의 공적 의보체계를 극적으로 붕괴시켜 전체 인구의 55.7%가 의보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멕시코의 의보 체계는 3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1) 사회보장 의료서비스 :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운영: 근로자의료보험, 공무원의료보험, 멕시코석유공사(PEMEX) 등이 해당, 대기 시간이 길고 의료의 질이 매우 떨어짐.
2) 민간건강보험 : 전액 본인이 부담하면서 민간의료시설을 이용하는 계층을 위한 의보체계.전체 인구의 4% 정도인 중상류층이 이용하는 민간의보. 미국의 거대 병원이 진출하여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음.
3) 도시나 농촌에 거주하는 실직자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장으로 주로 공공의료기관에서 1차 진료만을 제공받는 시스템. 연방정부 및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립병원으로 전 국민의 55.7%를 담당함.
멕시코의 자세한 상황은 히포님이 직접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바로 한미FTA가 가져올 암울한 미래 사회의 모습입니다. 때문에 진정으로 건보하나로를 확립하여 보장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가 한다면 히포님은 건보하나로보다 한미FTA를 소리 높여 반대하고 폐지하는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히포님은 한미 FTA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듯하여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먼저 아직도 살아있는 한미FTA라는 괴물을 페르세우스의 칼이라도 들고 확실히 절단내놓아야 님이 그토록 애지중지하시는 건보하나로를 확립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님은 순서가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리고 대문으로 들어오는 도둑은 놔두고 쥐구멍으로 들어오는 도둑만 잡으려는 형국입니다.
투쟁 없이 제도의 개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의 암적인 존재를 투쟁으로 극복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친구가 술 마시자고 해서 이만. 의견은 내일 받겠습니다.
셈수호르님, 작년 양재동 동희오토 투쟁할 때 전북에서 서울까지 오셔서 집회참석하시는 모습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당 게시판에 올리는 글 통해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 헌신하시는 모습 보면서도 같은 당원으로서 자부심 느끼기도 했고요. 그런데 위 글을 보면서 좀 놀랐습니다. 글에서 지목한 '히포'라는 분은 저랑 같이 건강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분입니다. 보건의료 사회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의료민영화저지투쟁, 한미FTA저지투쟁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셈수호르님께서 '한미 FTA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듯'이라거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지엽적으로만 보고 있는 태도입니다. 대개 특정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업종에 대한 지식을 모든 것에 대한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게 되죠.'라고 단정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부분은 꼭 답변해주셔야 합니다. 같이 운동하고 진보정치하는 사람들끼리 근거없이 자존심을 해쳐서는 안될 것 같아 이렇게 댓글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