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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스운 상황에 웃음 한 번 웃을께요

푸하하하하

 

낙태문제는 당강령에도 어긋난다는걸 증명했고 증명해주신 저질체력님도 계셨는데 어디계시다가 이제 나타나셔서 골수페미니스트 손을 들어주고 있나요?

의사이시면 적어도 국가의료 정책에 대한 비합리성내지는 의료보험 적용조차 받지못하는 의료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챙길려고 하는것이 양식있는 의사아닌가요?

 

그런데 겨우 한다는것이 낙태허용의 당위성이나 주장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이를데없네요.

의사맞아요?

혹시 돈벌이 안돼는 환자들 강제퇴원 시키는 그런 의사는 아니시겠죠?

아, 저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강제퇴원에 맞서 종합병원과 싸워서 이겨본 사람입니다. 그 병원에선 그후 제 담당의사를 해고하고 원무과장을 해고합디다.

그때 싸우면서 느낀건데요, 더럽게 썩은 의사들 많구나, 돈도 엄청 밝히는구나 였습니다 의심나시면 제가 싸워던 병원과 소재지도 알려드릴수 있습니다. 담당의사는 물론이구요. . 

  • 계란 2011.03.01 22:19

    님이 병원하고 싸웠다는 건 별로 안 궁금합니다.

    님의 글에서 묻어나는 여성혐오의 원인은 좀 궁금하네요. 의사에 대한 적개심은 또 뭐람?

    우리편 전문가 찾고 싶은 심정은 알겠는데, 님 글은 보면 하나도 안 웃겨서 웃지는 않겠음.

  • 계란 2011.03.01 22:26
    이럴 때 외쳐줘야지. '우리 존재 화이팅*^^*'
  • 계란 2011.03.01 22:36
    낵몰앴냐웅 울졵애 화잍팅이락 웅운눈게남눈고다 뿔이두웃구응맞잇는밥묵어라응 그게진보좌파다
  • 토끼뿔 2011.03.01 22:28

     헉! -_-;;; 나만 왜 웃기징? (어제 오늘 개콘보다 당게가 더 웃기는데;;;)

  • 씨footEE,외계인휘아 2011.03.01 22:25

    아 그럼 병원 연락처랑 다 까든가...

    까지도 않을거면서 왜 저럼?

    이건 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교훈도 없구나...


  • 도봉박홍기 2011.03.01 22:21

    이거ㅡㅡ  히피여성주의자분들 주장이 거짓이라는 증거에요.

    그리고 레닌여성주의자분들이 말하는 갓 또한 거짓말입니다(통상 이들을 급진적 자유 여성주의자들이라

    그러는데요,,이 논거의 히피사상은  닐바니즘,,불교에서 따온 열반주의가 그 맥락입니다.

    즉 마리화나에 취해서 섹스하다가 황홀경이 인간의 자유라는 닐바니즘이 바로 여성 자유주의 시각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만,,외국에서는 20년전에 폐기되어온 사상의 주류입니다,,)

     전세계 페미니즘은 생태생명주의 에코페미님즘 입니다.

    아래 자료를 올립니다.

     

    양심있는 여성분들..낙태권 합법화 주장하는 모든 주장이 거짓입니다,

    페미님즘이 낙태권이라는 주장은 거짓입니다,,그리고 전세꼐 여성주의가 에코페미니즘으로

    진화된지가 벌써 20년이 넘어요,,ㅠㅠ

     

    생태여성주의 평가와 전망  

    한면희 (녹색대학교 교수)

    1. 생태주의의 눈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를 해결 차원에서 대처하려는 시각을 편의상 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보수적 태도를 취하는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적 접근이다. 보수적 입장을 환경주의(environmentalism) 일상적으로 환경주의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하나는 좁은 의미의 것으로서 보수적인 환경관리주의를 지칭하며, 다른 하나는 보수적 접근은 물론 진보적 생태주의까지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것으로 쓰인다.
    또는 환경관리주의라 하고, 진보적 입장을 생태주의(ecologism)라고 한다. 이때 환경주의는 여러 형태의 기존 이데올로기, 예컨대 자유주의, 자본주의 또는 산업주의 등과 혼합적으로 착종되어 있기 때문에 고유한 특징을 갖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반면 생태주의는 나름대로 고유한 이념을 지닌다. 이에 양자를 다르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A. Dobson (3rd ed,), Green Political Thought (London: Routledge, 2000), p. 13.

    필자는 보수적 환경주의와 진보적 생태주의의 특징적 차이를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서 분별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지속적 성장의 용인 여부와 관련된다. 둘째, 우주와 자연에 다가가는 방법론에 차이가 있다. 셋째, 현재의 문명 및 사회제도를 보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
    보수적 환경주의가 생태주의와 가장 특징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물질적인 경제성장 개념과 직결된다. 환경주의는 환경 문제를 적극 고려하는 선상에서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오염과 공해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을 육성함에 따라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환경주의는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성장의 지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한다.
    반면 생태주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이런 견해를 적극 개진한 생태경제학자 댈리(H. E. Daly)는 무에서 물질 에너지를 창조하거나 또는 스스로 영원히 운동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지속 가능한 성장도 실현 불가능한 정리(impossible theorem)라고 주장한다. H. E. Daly, “Sustainable Growth: An Impossibility Theorem,” in H. E. Daly et al. (eds.), Valuing the Earth: Economics, Ecology, Ethics (Cambridge: The MIT Press, 1993), p. 267.
    물리적 차원에서 인간의 경제는 지구 생태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하부체계(sub-system)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태어나서 청소년기까지 신체적 성장을 하다가 성년이 되면 물리적 성장을 멈추는 것처럼, 인간 경제도 100%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성장하다가 그 이후 멈출 수밖에 없다. 특히 지구상에 인간의 문화(사회) 영역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의 성장은 다른 자연적 영역의 감소를 초래하고, 이것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사회의 지속적 성장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물론 공해로 인한 피해는 자연에 피해를 줄 뿐더러 인간에게도 질병과 죽음을 안겨줄 것이다.
    생태주의가 지속적 성장을 불가능하게 본다고 해서 적정 성장 이후 정체 상태를 유지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경우 커가다가 신체적 성장이 멈출 즈음 더욱 정신적인 성숙의 단계로 이행하듯이 자연과 관련된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댈리는 이것을 성장 없는 발전(development without growth)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성장은 “합병이나 자연 증가를 거쳐서 나타나는 물질 추가에 의한 규모의 증가”를 뜻하지만, 발전은 “보다 충만하거나 성숙하거나 더 좋은 상태를 향한 단계적 이행이나 또는 그런 상태를 향한 잠재력의 확장이나 실현”을 의미한다. 지구 생태계는 성장하지 않지만 진화론적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그 하부체계에 해당하는 인간 경제 역시 성장 없는 발전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도달할 것이다. Ibid., pp. 267-68.
    따라서 생태주의는 지속 가능한 성숙이 이룩되는 사회를 도모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생태주의는 산업 자본주의와 선명하게 다르며, 또한 마르크스주의와도 동일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볼 것. 한면희, 「산업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 자연 이념의 특성과 한계」, ꡔ환경철학ꡕ 2집 (한국환경철학회, 2003), 99-135쪽.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 역시 생산력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환경주의와 생태주의의 두 번째 차이로 자연에 접근하는 방법론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전자는 방법론적 개체론(methodological individualism)에 따른 분리주의 체계에 의거한다. 이에 자연 또는 사회에 다가갈 때,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 단위들(elementary units)로 분할하여 각각의 특성을 파악하고, 전체는 요소 단위의 합으로 환원되며, 전체는 요소 단위에 적용되는 기계적 법칙에 의해 운행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환경주의는 분석주의와 환원주의, 기계론적 법칙주의의 기반 위에 놓여 있다. 예컨대 보수적 환경주의가 거부하지 않는 생명공학은 전형적으로 이런 분리주의 시각에서 자연적 존재에 대한 유전자 조작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생태주의는 방법론적 전체론(methodological holism)에 의거하여 자연에 유기적 관계로 다가간다. 따라서 전체로서의 자연이나 사회가 구성 단위들(constitutive units)의 단순 합 이상이므로 그런 것들의 합으로 환원될 수 없다. 물론 필자는 이것도 세분하면, 둘로 분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분별한 필자의 본격적 시도에 대해서는 다음을 볼 것. 한면희, 「가이아 가설과 환경윤리」, ꡔ철학ꡕ 59집 (한국철학회, 1999), 349-71쪽.
    하나는 통합적 유기체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유기적 관계주의이다. 통합적 유기체주의는 구성 단위들의 관계성을 통해 단일한 하나의 상위 실체인 사회나 자연, 우주에 도달한다. 반면 유기적 관계주의는 구성 단위들간의 관계성을 중시할 뿐 상위의 독립적 거대 생명 실체로 이행하는 것을 경계한다.
    통합적 유기체주의에는 스피노자(B. Spinoza)의 범신론이나 러브록(J. Lovelock)의 가이아 생명론이 해당하는데, 심층 생태주의와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가 이것에 상당한 정도로 다가가 있다. 유기적 관계주의에는 사회 생태주의나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 그리고 동아시아의 기(氣)-생태주의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을 볼 것. 한면희, 「한반도 녹색 공동체의 이념: 기(氣)생태주의와 백두대간의 문화」, ꡔ환경철학ꡕ 창간호 (한국환경철학회, 2002), 45-76쪽.
    가 해당된다. 필자는 통합적 유기체주의가 지구와 자연을 구하거나 보전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감성적 및 영성적 통찰을 제공하는 장점을 갖지만, 그 대신 전체를 우선시하는 과정에서 구성 단위(특히 개별적 인간과 사회)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도외시하는 결정적 문제에 봉착한다고 본다. 반면 유기적 관계주의는 개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구성 단위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관계성을 통해 전체로서의 사회와 자연을 보전하는 데도 성공적일 수 있다고 여긴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볼 것. 한면희, 「생명 존중의 동아시아 환경윤리: 서양 환경윤리와의 대비적 고찰」, ꡔ대동문화연구ꡕ 37집 (성대 동아시아학술원, 2000), 359-84쪽.
    여하튼 넓은 의미의 생태주의는 개체론이 아닌 전체론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환경주의와 궤를 달리한다.
    환경주의와 생태주의의 세 번째 차이는 현 문명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취하는 것과 관련된다. 보수적 환경주의는 자연 위에 배치된 인간 사회가 목적 달성을 위해서 자연을 도구화하여 지속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오늘의 산업문명은 자연에 대해 산업주의 이념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 사회와 자연의 이분법적 분리 선상에서 우월한 인간 문화에 의한 자연 지배를 허용한다. 따라서 환경주의는 현재의 문명을 유지하는 가운데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현상적 접근에 불과할 뿐이다. 이에 반해 생태주의는 현 산업문명이 뿌리에 있어서 우열에 따른 분리주의 지배 의식의 산물이고 또한 위기를 증폭시킬 무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으므로 해체를 통해 새롭게 구성해야 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생태주의는 현 문명과 제반 사회제도에 대해 도전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인류가 직면한 환경재난은 위기로 증폭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현 문명의 가치관과 사회제도, 생활양식에서 구조적으로 비롯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보수적 환경주의를 넘어서서 진보적 생태주의로 이행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생태주의의 시각에서, 그것도 성장에 대한 한계를 용인하고, 사회와 자연에 다가가는 방법론으로 호혜적인 유기적 전체론에 의거하면서, 동시에 문명 패러다임 전환을 도모하는 총체적 시각에서 여성주의를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여성주의가 지향해야 할 바를 조망하고자 한다.

    2. 전통적 주류 여성주의와 특성
    여성주의(feminism)는 단순하게 말해서 부당한 여성 차별을 불식시키려는 일체의 시도이다. 여성주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발현했기 때문에 시대 주류의 이념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했다. 따라서 그 내용과 방법이 다양하므로, 일의적으로 세부화하여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변천 속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보여왔고 또 더 나은 지평을 열기 위해서 인식적으로도 분별할 필요가 있다. 이에 탁월한 여성주의 철학자 앨리슨 재거(Alisin M. Jaggar)가 분류한 것처럼, 전통 속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을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급진적 및 사회주의의 여성주의로 구분하여 고찰하는 것이 그다지 무리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필자는 여기서 각각의 사조를 그 정체성과 정합성에 초점을 맞추어 간략하게 특성화할 것이다.
    자유주의 여성주의(liberal feminism)는 자유주의 이념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어서 인간을 합리적이고 독립적인 행위자로 인식한다. 이때 자유주의 합리성이 뜻하는 바는 크게 둘로 분화되어 강조되었다. 하나는 칸트(I. Kant)처럼 이성적 인간이 동물과 달리 도덕적 행위자로 처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벤담(J. Bentham)과 홉스(T. Hobbes)가 드러낸 길로서 선택적 문제 상황에서 인간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나은 수단이나 방도를 찾을 수 있는 도구적 이성의 행위자로 분별있게 처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인간은 문제 상황에서 행위의 규범적 지침인 도덕규칙을 취할지의 여부를 결정하거나 또는 선택적 상황에서 목적 실현을 합리적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부각된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개체론적 방법에 의해 인간을 타인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할 고립적 존재로 묘사한다.
    자유주의 여성주의를 선도한 18세기의 울스턴크래프트(M. Wollstonecraft)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에 도전했다. 그녀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한 기회만 주어지면 합리성을 갖추고 또한 도덕적 행위자로 처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앨리슨 재거, 공미혜․이한옥 공역, ꡔ여성해방론과 인간본성ꡕ (이론과실천, 1992), 43-44쪽.
    이에 화답하듯이 19세기의 해리엇 테일러 밀(Harriet Taylor Mill)은 여성이 하인을 거느려서 가사 부담을 줄여서라도 사회의 공적인 영역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무심코 계급차별 의식을 드러내었지만 결과적으로 저소득층 여성의 사회 진출에 기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20세기 들어서면서 실현되었고, 1960년대에 자유주의 여성주의의 운동을 부활시키는 데 공이 큰 베티 프리던(Betty Friedan)도 초기에는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적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도록 하는데 주력했다. 로즈마리 통, 이소영 역, ꡔ여성주의 사상ꡕ (한신문화사, 2000), 31, 43쪽.
    이렇게 자유주의 여성주의는 첫 번째 여성주의의 물꼬를 트면서 여성이 남성만큼 이성적임을 주장하면서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 남녀간의 차별을 불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Marxist feminism)는 자유주의 여성관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서 나타났다.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을 합리적인 고립적 행위자로 이해하는 자유주의와 달리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인간은 생물학적 욕구를 갖고 있고, 그 욕구 충족을 위해서 자연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에서 생물학적이다. 또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의식적이고 합목적적으로 실천(praxis)을 하는데, 이 실천은 동료 사회 구성원과 협력을 통해 이루기 때문에 사회적이다. 여기서 인간의 실천은 합리적 사고와 연결되고, 합리적 사고는 사회의 생산양식(modes of production)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 역시 사회적인 것으로서 역사의 산물이 된다.
    역사의 관점에서 여성주의의 문제를 보면,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의 시각이다. 물질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남성 노동자는 임금을 지급 받는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반면 여성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가사 노동에만 매이게 될 때, 여성은 남성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전업 노동자가 되는 길뿐이다. 이런 연유로 엥겔스(F. Engels)는 “주부 해방의 첫 번째 조건은 전체 여성을 공적 산업으로 투입하는 것” F. Engels, 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72)  pp. 137-38.
    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여성이 임금 노동자가 되더라도 여전히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한 노동 소외가 기다리고 있다. 전형적으로 자본에 의한 임금 착취이다. 따라서 모든 여성이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혁명의 대열에 동참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해방에 이를 수 있게 된다. 결국 여성주의 문제 해결의 최종적 종착역은 계급 문제의 해소로 귀결되는 셈이다. 그리고 혁명 이후에는 “생산수단이 공동 소유로 이전되면서, 단일 가족에 수반된 사회의 경제적 단위의 역할은 종식된다. 사적인 가사는 사회의 산업으로 전환된다. 아이에 대한 양육과 교육도 공적인 일이 된다.” Ibid., p. 139.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는 여성주의 문제를 계급의 문제와 연결시켰고, 그리고 여성해방의 두 조건으로 여성의 공적산업 참여와 주부에게 개인적으로 부과된 육아 및 가사의 사회화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도를 한 것임이 분명하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현실 속에서 관철된 이후 뚜렷한 쟁점을 찾지 못해 표류하던 선진국 여성운동 진영에 커다란 변화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두 번째 여성운동의 파고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C. Merchant, “Ecofeminism and Feminist Theory,” in P. C. List ed., Radical Environmentalism (Belmont, Calif.: Wadsworth, 1993), p. 49.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급진적 여성주의(radical feminism)인데,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의 뿌리로 가부장제(patriarchy)를 명료하게 들추어내었다. 이것은 단지 법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가부장적 요인을 드러내어 제거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이에서 더 나아가 종교와 가족, 학술 담론을 포함한 사회제도 그리고 정신적 문화의식까지 청산할 때 비로소 여성이 해방의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부장적 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생물학적 해석이다. 이것은 본질주의(essentialism)로도 불리는데, 다음과 같은 형태로 구성된다: J. A. Kourany et al. eds. (2nd ed.), Feminist Philosophies: Problems, Theories and Applications (Upper Saddle River, N.J.: Prentice Hall, 1999), p. 350. 가) 논증은 필자가 다소 변화를 준 것이다.


    가-1) 인간은 남성 또는 여성 고유의 호르몬과 해부학적 구조, 염색체를 갖고 태어난다.
    가-2) 여성은 운명적으로 남성보다 무거운 짐인 재생산 역할(reproductive role)을 안고 태어난다.
    가-3) 남성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남성적인 심리적 특성을 구현하게 되는 반면, 여성은 여성적인 심리적 특성을 발현할 것이다.
    가-4) 사회 속의 남성과 여성은 고유하게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옳다.
    가-5) 따라서 사회는 이런 자연적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필자는 이런 생물학적 해석에 우열에 따른 차별적 가치를 투여하면 다음과 같은 형태의 가부장제 논증으로 드러난다고 본다.

    나-1) 남성은 남성적 특성을 지니고 그리고 여성은 여성적 특성을 지닌다.
    나-2)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의 관점에서 남성적 특성이 여성적 특성보다 우월하다.
    나-3) 따라서 남성이 여성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서 나-1)이 생물학적 해석에서 나온 것이라면, 남녀간에 생물학적 성(sex)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가치 중립적인 사실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2)에서 보듯이 사회가 평가하는 남녀간의 특성은 사회적 성별(gender)에 관한 것으로, 이미 가부장적 가치관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급진적 여성주의의 입장에서는 나) 논증으로 점철되는 가부장제에 도전하여 이를 바꾸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급진주의 안에서도 서로 다른 두 목소리가 존재하는데, 주로 생물학적 해석과 관련된다. 로즈마리 통(Rosemarie P. Tong)의 분류에 따를 경우, 급진 자유지상적 여성주의(radical- libertarian feminism)와 급진 문화적 여성주의(radical-cultural feminism)로 나눌 수 있다. 로즈마리 통, ꡔ여성주의 사상ꡕ, 86쪽.
    급진 자유지상론자는 인간으로서 여성의 본성이 남성에 비해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성별 여건을 가부장제로 조성하면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이 나타나고 그리고 평등하게 조성하면 평등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대표적으로 파이어스톤(S. Firestone)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면서 느끼게 되는 출산의 기쁨이라는 것도 가부장적 신화에 불과한 것이고, 생물학적 모성애도 악의 뿌리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노동자가 자본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자본 소유의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를 찾아와야 하듯이, 여성도 가부장적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출산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에 서게 되면, 사랑도 원하는 방식에 따라 이성애나 동성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자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정자를 제공받아 임신을 하는 인공수정도 가능하며, 더 나아가 생명공학에 의한 체세포 핵이전(somatic cell nuclear transfer) 복제로 후손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도 원하는 성애(sexsuality) 방식에 따라 포르노그라피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급진 문화론자는 생물학적 해석이 가부장적 본질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역전시켜 여성적 본질주의로 드러낸다. 이에 여성의 힘은 여성에게만 고유한 재생산 역할에 있다고 간주하여, 여성적 가치를 고무하고 찬양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자연출산을 권장할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어머니 역할을 예찬했다. 물론 포르노그라피에 대해서는 가부장적 성애 문화로 간주하여 수용을 거부했다. 그리고 남성적 가부장제 청산을 위해 동성애 문화를 적극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 권장했다. 대표적으로 메리 댈리(Mary Daly)는 가부장제에서 지탄을 받던 것들, 예컨대 추한 노파나 마녀의 특성을 찬미했다. 그녀가 노린 것은 전통적 가부장제가 가장 아름답고 좋다고 한 것과 가장 추하고 나쁘다고 한 것을 뒤집어버리는 가치관의 전도였다.
    급진적 여성주의가 여성 억압의 구조적 요인으로서 전통적 사회에 뿌리 깊이 침투되어 있는 가부장제를 들추어내어 이를 바로잡고자 한 시도는 옳았고 또 바람직했다. 다만 그것만 본 탓에 또 다른 중요 요인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그것은 다음 아니라 계급 문제와 연루된 것인데, 이를 적극 주장한 집단을 사회주의 여성주의(socialist feminism)로 부를 수 있다.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1970년대에 탄생한 최근의 입장으로서 계급에 의한 지배와 가부장적 지배를 여성 억압에 근본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와 급진적 여성주의의 통찰을 종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앨리슨 재거, ꡔ여성해방론과 인간본성ꡕ, 141쪽.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의 시각으로, 즉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생물학이나 사회, 자연환경 간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남성 지배, 인종 차별, 제국주의는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 떼어내서 소멸시키는 것으로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함께 청산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사회주의 여성주의자인 앨리슨 재거는 노동자 여성의 경우 노동 소외뿐 아니라 성적 소외도 함께 겪게 되고, 더 나아가 계급이 사라진 경제적 평등사회에서 성적 소외를 겪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성적 소외로 이성애적 소외가 첫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데, 여성 스스로가 성적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남성에 의해 성적 대상으로 간주되고, 빈번하게 성폭행이나 희롱을 당한다. 대체로 여성은 경제적 생존을 위해 남성을 즐겁게 해주거나 아니면 결혼을 해서 경제적 안정을 얻어야 한다. 어머니로서의 소외도 또 다른 한 유형인데, 사회나 국가가 요구할 경우 노동력 확충을 위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더 많이 하거나 그 반대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남성 과학으로부터의 소외도 있는데, 의학적 소견이라는 이름 아래 제왕절개를 권유받으면 전문적 식견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에 응하게 됨으로써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아이를 생산하는 격이 된다. 결국 남성이 쳐놓은 유무형의 성적 통제 체계에서 여성은 임금 노동자가 노동 과정이나 산물로부터 소외되는 것처럼 다양한 유형의 성적 소외를 겪는 셈이다. 위의 책, 356-360쪽 참조.

    따라서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한편으로 노동 소외를 청산하기 위해서 계급사회의 소멸을 목표로 하면서 동시에 성적 소외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 경주한다. 예컨대 재생산 이외의 영역에서 성별 분업을 없애고, 재생산 영역에서 남성을 출산과 육아에 참여시키며, 기술적으로 가능할 경우 남성 없이도 여성 혼자서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도록 한다. 단, 이성애와 동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하는 접근과 양성인(androgyny)을 이상형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는다. 인간 본성이 사회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자유로운 심리학적 양성인의 개념을 초월하고, 한쪽 성에 제한된 것으로 여겨지는 신체적 인간 능력까지도 변화시키고자 한다. 결국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인간을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하고 또한 남성과 여성으로 분류하는 사회적 관계를 철폐하고자 한다.

    3. 주류 여성주의에 대한 생태주의 평가
    전통적인 주류의 여성주의를 남성 생태주의자의 눈으로 평가하도록 하자. 먼저 자유주의 여성주의에서 시작하자. 자유주의 여성주의는 처음으로 여성 차별을 불식시키면서 자유권적 기본권, 즉 생명과 자유,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여성에게도 동등하게 허용하는 남녀 평등의 법적 권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흐름을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문제도 많이 노출했다. 첫째, 분리주의 사유체계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고, 그렇게 파악된 이성적 남성의 위치로 여성을 격상시키는 데 주안점을 둠으로써 여성을 타인과 경쟁해야 하는 고립적 영역으로 내몰았을 뿐더러, 자연에 대해 수탈적인 남성적 문화의 위치로 올림으로써 인간에 의한 자연 억압을 가능하게 조성했다. 둘째, 은연중에 계급 차별주의가 숨쉬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기본권(행복 추구를 위한 기초 교육 및 의료혜택,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권리 등)을 도외시하는 문제에 빠졌다. 셋째, 이성에 주안점에 두게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감성이나 영성에 대한 존중 여지를 사장시켰다.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는 적어도 인간간에 차별 없는 사회를 희구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경제적으로 동등한 지위에 설정하고자 한 점은 인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를 남겼다. 첫째, 여성 억압의 문제를 계급 문제로 환원시키는 과정에서 여성 고유의 문제를 제대로 보는 데 실패했다. 즉 가부장제가 구조적 뿌리임을 직시하지 못함으로써, 계급 없는 사회에서도 여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간과했다. 둘째,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유기적 통합주의로 다가간 것은 옳았지만, 자연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화적 수단이나 도구로만 인식함으로써 인간 문화에 의한 자연 억압을 가능하게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마르크스의 도구적 자연관과 그것이 갖는 생태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볼 것. 한면희, ꡔ초록문명론ꡕ (동녘, 2004), 3장.
    셋째, 앨리슨 재거의 비판에서 드러나듯이 생물학적 재생산 역할을 하는 여성을 사회적 실천에 부응하는 남성에 비해 덜 사회화된, 그럼으로써 인간본성이 덜 구현된 존재로 치부함으로써 여성을 역사 변혁의 자리에서 비켜서게 만들었다. 앨리슨 재거, ꡔ여성해방론과 인간본성ꡕ, 88쪽.

    급진적 여성주의는 여성 억압의 근원을 생물학적 성-사회적 성별 체계에 따라 가부장제로 분석하고, 이를 철폐하여 폄하된 여성성을 복권시키거나 바람직한 것으로 조성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옳았다. 그러나 여전히 몇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고 보인다. 첫째, 급진주의 안에도 여러 흐름이 존재하지만, 계급 문제가 여성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둘째, 가부장적인 여성 억압이 인간에 의한 자연 억압과 이어져 있다는 생태주의 인식에 이르지 못했다. 셋째, 급진 자유지상적 여성주의자의 경우, 재생산 체계에 대한 여성 통제권을 확보(예, 인공출산, 체세포 핵이전 복제인간이나 사이보그 후손 입양 등)하는 과정에서 생태적 자연주의 인식을 결여함으로써 남성 가부장제 과학의 산물인 지배적 의학이나 생명공학을 적극 수용하는 문제를 보였다. 넷째, 급진 문화적 여성주의자의 경우, 반가부장적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동성애를 적극 권장함으로써 동아시아 자연주의의 음양론적 상보성 이해에 반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수자에게 나타나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가 자연스런 성향으로 나타날 경우 그것이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오히려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를 문화적으로 권장하거나 찬양하는 것이 옳을 수는 없다. 동아시아의 생태적 자연주의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존중과 찬양은 다른 것이다. 다섯째, 역시 급진 문화적 여성주의의 경우, 여성적 본질주의에 따라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초래하는 데 따른 문제가 발생한다. 즉, 가부장적 남녀 상하관계를 여남 상하관계로 역전시키는 데 따른 문제를 초래한다. 이것은 분리주의 의식체계의 상하 내용이 반전된 것일 뿐이다. 남성 가운데 바람직한 여성적 가치를 지닌 사람이 적지 않고 또한 여성 가운데 그릇된 남성적 가치를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또는 생태적) 약자를 대변하는 가치 가운데 하나인,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현재의 여성성은 장차 바람직한 남성성으로도 구현될 수 있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여성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전통적 여성주의의 변증법적 종합의 형태로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인간에 의한 자연 억압을 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 문화의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언제든 생태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방치하게 된다. 또한 이것과 연관된 것인데, 제반 문제를 구조적으로 잉태하고 있는 현 산업문명에 대해 아무런 태도도 취하지 않게 되어 변혁 운동이 자칫 근본 뿌리에 이르지 못한 채 현상적 개선에 머무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비판은 앞서의 주류 여성주의 모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주의는 이제 질적으로 전환해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과 생태주의 문제를 이어서 보는 시각의 출현, 즉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의 만남의 장의 개척과 그 유기적 관계의 본성을 해명하는 길의 새로운 모색이다. 생태 여성주의는 이런 시대적 과제 속에서 출현했다.

    4. 생태 여성주의의 등장
    일찍이 류터(R. R. Ruether)는 인간이 서로간에 또는 자연과 맺는 관계가 지배적 모형(model of domination)을 이루는 사회에서는 여성 해방도 존재하지 않고 환경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도 나올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여성운동과 생태적 운동이 통합을 통해 기존의 가치 체계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R. R. Ruethet, New Woman/New Earth (New York: The Seabury Press, 1975), p. 204.

    생태 여성주의(Eco-feminism)는 기본적으로 여성 억압과 자연 억압 사이에 중요한 결속 관계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현했다. 따라서 이 입장은 여성주의 이론과 실천이 생태적 조망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생태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여성주의 조망을 포함해야 한다고 여긴다. 다만 문제는 여성주의자 사이에 그런 결속의 본성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K. J. Warren, “Feminism and Ecology: Making Connections,” Environmental Ethics 9 (1987), pp. 4-5.

    생태 여성주의도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지만, 플럼우드(V. Plumwood)는 그것을 간명하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한 바 있다. 하나는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cultural ecofeminism)로서 급진적 또는 문화적 여성주의 문화적 여성주의(cultural feminism)는 캐롤 질리건(Carol Gilligan)이나 넬 노딩스(Nel Nodings), 사라 루딕(Sara Ruddick) 등에 의해 발전된 입장을 뜻하는데, 급진적 여성주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 입장은 남성과 여성에게는 차별적인 정신적 특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예컨대 남성에게는 분리적 성향과 권리 주장, 가부장적 사유가 나타나는 반면, 여성에게는 연결적 성향과 돌봄(care), 모성적 사유가 나타난다고 본다.
    의 조망을 물려받은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social ecofeminism)로서 사회주의 여성주의나 아나키스트 여성주의(anarchist feminism) 등과 친화성을 띠는 입장이다. Val Plumwood, “Feminism and Ecofeminism: Beyond the Dualistic Assumptions of Women, Men and Nature,” The Ecologist 22, no. 1 (1992), p. 10.

    문화적 및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간의 기본적 차이는 여성 억압과 자연 억압 사이의 관계적 결속과 그 본성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는 환경 문제로 표출된 인간의 자연 억압이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으로서의 가부장제가 확장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자연 억압의 문제는 여성주의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는 강한 입장을 견지한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가부장제 아래에서 폄하되거나 낮게 평가된 여성적 가치를 오히려 전면에 내세워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남성 및 문화에 대비되었던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을 드러내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수잔 그리핀(Susan Griffin)은 ꡔ여성과 자연ꡕ(Woman and Nature, 1978)에서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여성을 가축에 비유하곤 했다. 그 이유는 가정의 여성이 축사에서 사육을 당하는 가축과 같은 신세에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리치(A. Rich)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도 여성의 출산과 자연의 다산성이 동질적이기 때문에 여성이 자연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여성이 갖는 모성애에 비추어 볼 때 자연 억압의 문제를 푸는 데 여성이 앞장서서 대안적인 여성 문화를 구현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는 자연적 생태 여성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한때 가부장제의 덫으로 작동하여 여성을 질곡으로 몰아넣은 본질주의가 생태 여성주의에서 새롭게 부활하면서 오히려 구원의 화신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다. 그래서 영성과 감성이 중시되며, 곡선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예찬을 받고, 여성의 생리와 관련이 있는 달 축제를 벌이고, 그리고 심지어 마녀 전통을 부활시키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바야흐로 영성이 각광을 받으면서 여성이 참여하는 정치문화의 지평도 영성적으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이행했다. 이렇게 보면 영성적 여성주의(spiritual feminism)도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에 포섭된다.
    대표적으로 스프레트낙(C. Spretnak)은 초월적이지만 치마를 입은 야훼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자연에 내재해 있는 여신에 주목했다. 여신의 일단을 드러내는 토템적 동식물과 신령한 숲, 자궁처럼 생긴 동굴, 달의 주기와 같은 여성의 생리, 관능적인 춤 등을 새롭게 평가하는 것은 모두 여신 가이아(Gaia)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파악되었다. 아이린 다이아몬드 외 편저, 정현경․황혜숙 공역, ꡔ다시 꾸며보는 세상: 생태 여성주의의 대두ꡕ (이대출판부, 1996), 31쪽.
    크리스트(C. Christ)도 여신숭배를 주장하면서, 강력하고 창조적인 여성의 힘을 찬양했다. “월경을 하고, 출산을 하고, 전통적으로 아이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펴온 여성의 특별한 위치로 인하여 몸과 자연과 세계에 대한 여성의 연관성은 명백해졌다... 여신이라는 상징은 여성의 몸과 몸의 주기, 및 과정을 형용하고 재강조하는 과정을 돕는다.” 다음에서 재인용함. 로지 브라이도티 외 공저, 한국환경NGO위원회 여성과환경분과 역, ꡔ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 가능한 개발ꡕ (나라사랑, 1995), 128쪽.
    스타호크(Starhawk)도 지구에 기초한 영성이 내재성과 상호 연관성, 공동체 셋을 포괄한다고 하면서, 지구가 신성하다면 우리는 자연 상태를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여신의 내재를 강렬하게 느끼고 우리들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 찾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린 다이아몬드 외 편저, ꡔ다시 꾸며보는 세상: 생태 여성주의의 대두ꡕ, 123, 136쪽.

    반면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는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가 보이고 있는 것처럼 개인적이고 영성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여성 억압과 자연 억압 사이의 관계적 본성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네스트라 킹(Ynestra King)은 사회 생태주의자 북친(M. Bookchin)을 쫓아서 인간의 자연 지배는 사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면서, 서구 문명의 기반인 이분법과 직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위의 책, 170, 186쪽.
    좀 더 분명히 하자면 류터가 언급한 바의 지배 모형과 이분법적 분리주의가 결합된 결과, 계급 착취와 인종 차별, 여성 억압, 그리고 자연 파괴가 초래되었다. 따라서 가부장제에 따른 여성 문제는 분리적 지배 모형이 조성한 네 가지 주된 차별 가운데 중요한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는 생태 문제를 여성주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문제들과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회적 사안과 함께 풀어야 할 주된 과제로 인식한다. Val Plumwood, “Feminism and Ecofeminism,” p. 10.
    이에 여성성만을 전면으로 부각시켜 문제 해결의 최후 가치로 드러내는 데 거부감을 표시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자연을 구하는 데 더 낫다고 하는 것이나 또는 여성적 가치가 남성적인 것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 모두 이분법적 가부장제의 역전에 불과할 뿐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본질주의 자체를 비판하면서, 성(별)적 특성을 사회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이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구현토록 하는 데 주력한다.
    카렌 워렌(Karen J. Warren)도 여성을 자연에 더 가까이 있는 존재로 설정하는 것은 여성의 경험을 신비화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자연적 존재이자 문화적 존재로서 자연과 결속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K. J. Warren, “Feminism and Ecology: Making Connections,” p. 15.
    그녀는 생태 여성주의가 여성주의와 환경윤리의 측면에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다음의 여덟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K. J. Warren, “The Power and the Promise of Ecological Feminism,” Environmental Ethics 12 (1990), pp. 141-43.

    첫째, 생태 여성주의는 자연 차별주의(naturism)에 반대하면서 계급 및 인종, 성 차별주의에 대한 도전과 연결되어야 한다. 둘째, 맥락적 윤리(contextualist ethics)를 취함으로써 고립된 권리나 규칙에 의거하기보다 관계 속에서 해법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구조적으로 다원적(pluralistic)이어서 인간 공동체 안에서는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적 존재간의 차이(difference)에 따른 다름을 승인해야 한다. 넷째, 이론을 과정(process) 속에 있는 것으로서 다시 인식해야 한다. 다섯째, 생태 여성주의는 포괄적이어서 백인 여성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를 듣는 전통적 인디언 문화의 이야기와 인도 칩코 여성의 목소리 등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객관적 관점(objective point of view)을 제공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자연적이면서 역사적인 존재이며 엄격하게 가치 중립적인(value-neutral) 것은 없기 때문에, 취해야 한다면 억압받는 존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낫다. 일곱째, 인간 본성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돌봄(care)과 사랑, 우정, 신뢰, 그리고 적절한 호혜 등과 같은 가치에 중심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여덟째, 생태 여성주의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과 인간 이외의 환경간의 관계는 부분적으로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본성은 자연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므로 고립적인 추상적 개인주의는 거부되어야 한다.

    5. 생태 여성주의에 대한 남성 생태주의자의 평가와 전망
    생태 여성주의는 인류가 직면한 환경위기의 문제가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것도 가부장제와 직결되거나 연계되어 있음을 명료하게 드러낸 것은 큰 성과이다. 따라서 어떤 생태주의 해법도 여성주의의 통찰을 반영하지 않고서는 온전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태 여성주의에도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 있다. 특히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는 남성 생태주의자가 조망할 때 우려할 만한 점도 적지 않다. 그것은 급진적 여성주의를 모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정적 유산이 그대로 전수된다는 데 있다. 핵심은 본질주의를 견지하는 것과 여성의 우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는 여성과 자연의 영성적 결속 관계를 강조하고, 자연에 내재하는 살아있는 어머니 여신에 대한 통찰을 통해 대안 문화를 조성하는 데 주력하면서, 정치도 영성적이고 감성적으로 풀고자 한다. 사실 절망적인 현 문명과 사회제도, 의식구조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접근은 남성 생태주의자라 하더라도 상당한 정도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자칫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드러낼 소지가 있다.
    첫째, 남성 가부장제의 산물인 도구적 이성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이성 일반에 대한 폄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히려 호혜적인 관계적 이성은 적극 들추어내어 감성 및 영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을 볼 것. 한면희, ꡔ초록문명론ꡕ (동녘, 2004), 12장 4, 5절.
    예컨대 사회 관계적 이성에 대한 고려를 하지 못할 때, 사회정의와 연루된 문제를 간과하게 되고 또한 남성과 올바른 관계 설정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
    둘째, 여성이 사회적 약자와 지구를 돌보는 데 앞장을 서야 한다는 이야기의 일부는 옳지만, 또한 부분적으로 그르다. 그것은 반(半)진리에 불과할 뿐이다. 야수적인 남성적 가부장제 구조에서 자연이 파괴되고, 사회적 약자의 삶도 피폐해지며, 지구촌 일반의 생명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때 약자의 범주에 속하여 숱한 인고의 세월을 견디었던 여성이 약자를 대표하여 문제를 풀고자 나설 수 있으며 또 응당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약자의 대변자로서 여성이 갖는 특성, 즉 여성성의 발로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사회의 논리는 냉정할 수 있지만, 윤리의 기본 정신은 행위자가 아닌 피행위자, 즉 약자의 관점에서 사태를 평가하는 데 있다. G. J. Warnock, The Object of Morality (New York: Methuen, 1971), p. 148.
    이에 윤리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여성성(femininity)에 있지 여성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여성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여성성을 구현하지 못하지만, 어떤 남성은 그것을 구현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유기적 관계성의 측면에서 볼 때, 여성성 자체가 본질적으로 고착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화 과정에서 그런 특성은 남성에게도 구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원리적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와 지구를 배려하고 구하는 데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가부장적 이분법의 상하 내용을 역전시킨 것으로 일소되어야 한다.
    반면 남성 생태주의자의 눈으로 조망할 때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는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와 비교해서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사회가 직면한 모든 형태의 억압을 여성 억압으로 환원시키려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다른 운동과 연대를 도모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가 문화적 생태 여성주의와 확연히 구분되는 길을 걷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양자간에는 상당한 정도의 공통 분모도 존재한다. 예컨대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자 워렌이 발전시킨 내용에 따르면, 문화적 여성주의가 개척한 돌봄과 사랑, 우정, 신뢰의 윤리를 적극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적 생태 여성주의도 좀 더 고민해야 할 대목이 있다고 보인다. 감성 및 영성을 복권시키는 것과 병행해서 이성에 호소해도 타당할 수 있도록 새 문명과 사회제도의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게 구체화된 규범과 제도,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 인간이면 누구나 바른 덕(virtue)을 구비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문화적 여성주의의 윤리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덕목은 알고 보면, 동양의 전통적 덕목과 거의 흡사하다. 다만 현실은 냉엄해서 덕으로만 풀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인간은 제한적으로 이타적일 뿐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서 누구나 보다 많은 재화를 원하는 데 반해 자연과 사회가 제공하는 자원과 재화는 충분하지 못하고 부족한 편이다. 이때 작동하는 사회의 첫째 규범이 정의(justice)이다. 결국 생태 여성주의는 현실적 기반에서 정의를 고려하는 제도적 접근을 취하되, 동시에 덕을 강조하고 키움으로써 바람직한 사회가 실제로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대안 문명과 생태적으로 건전한 사회를 구축하고자 할 때 다른 생태주의의 목소리를 듣는 데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영혼이 없는 지구에 영성을 불러냄으로써 초기 대안 문명 운동에 활력을 불러 넣은 심층 생태주의(deep ecology) 그리고 강제적 권력을 철폐함으로써 인간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호혜적인 사회적 협력을 통해 자연-문화의 연속체를 구현하려는 사회 생태주의(social ecology) 그리고 동아시아의 자연관과 가치관, 문화를 반영한 동아시아 생명주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생태주의 이념 및 사상과 동아시아 한민족의 생명사상에 대해서는 각각 다음을 볼 것. 한면희, ꡔ초록문명론ꡕ, 6-9장; 김지하, ꡔ율려란 무엇인가ꡕ (한문화, 1999).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생태 여성주의는 본래 희구했던 세상을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 계란 2011.03.01 22:24
    도봉박님 도배 좀 작작하시져? 이거 수상한데? 패권적 도배주의 규탄한다~! 
  • 계란 2011.03.01 22:30

    뭘 속여요

    님을 위해 열라 간단하게 설명해주자면 여성주의가 획일적인 거 아닙니다

    사회주의가 똑같음? ㅇㅇ? 그런 거임

  • 도봉박홍기 2011.03.01 22:45

    사실관께를 명확하게 해 주세요,,비아냥으로 물타기하는것은

    댁들이 바로 탱스보다 권력을 가지고 파렴치하게 행사하고 있다라느 증거입니다.

    왜 거짓말 하냐구요..

    왜 사람들 속이냐구요..

     

    자신들이 주장한것과 다르거나 물오본다면 당 정책에 직접적 영향을 행사하면

    그에 맞는 책임감은 가지세요,

     

    당신들이 거짓말로 일관하니,,지금 증거를 들이 되는것 아닙니까?

    당신들 여성주의가 유일한 여성주의이며..낙택권 합법화가 전세계 여성주의의 주류이며

    당도 이와같은 주장을 해야하며,ㅡ,당원들도 따라야 한다면요.

     

    거짓말로 일괄한 사할에 대해서,,답변은 있어야 할거 아닙니까??

    아니면..내가 말한 사실이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말하던지요..

    왜 거짓말만 하냐 이거에여.. 사실유무를 답변 하세요..

    왜 당원들 그리고 탈당하라느니 마니 겁박하냐구요.,.

    거짓말하고 협박하고,,멋대로 당 이름 사용하고,ㅡ,당 강령 위반하고,

    패권짓 마음대로 하냐구요,., 최소한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고 시정한다고라도

    말씀 하세요,,왜 당원들과 당을 속이냐구요,,

    그리고 국민들도 뻔뻔하게 속일거 아니에여..

  • 계란 2011.03.01 22:37

    네 계쏙 그러고 사세여~ 우리 존재 화이팅~ 님도 떵누고 밥묵는 사람인 건 마찬가지져 뭐

    대꾸하기도 싫고 계속 그러셈~

    아 참. 그 학생한테 사과는 했어요?

  • 도봉박홍기 2011.03.01 22:34

    링크가 안되요.. 그리고,

    당신들 유일하게 여성주의가 딱 자유혁명 여성주의라고 말한것이

    당신들 아닙니까?? 멋대로 당 강령까지 어겨가면서 낙태권 합법화도 주장하고,,

    전세께 여성주의가 자유혁명 여성주의-닐바리즘 이라면서요,

     

    전 프리섹스도 못할것 같구요.. 대마초도 피구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님들이 말하는 북유럽부터 남유럽까지 모두가

    에코페미님즘 이던데,,왜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거짓말 하는 겁니까??친환경 신재생ㅡㅡ다 에코페미님즘 이 큰 역할 한거 아닙니까??

    그런데,,왜 당원들을 속이는 거에요..

    그리고 앞으로 국가나 산업이나 에코페미님즘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데,

    왜 갈등을 유발하는,,닐바니즘..자유혁명 여성주의를 강제 주입할려고 그러는 건가요,.

    소비적이라서 서구에서는 비웃슴에 대산이지 않습니까??

    자본주의 소비으 산물로 보는것이,,바로 당신들 여성주의의 큰 부분으로 연구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당원들을 속이는 거에요..

  • 계란 2011.03.01 22:31

    아 그리고 도배 좀 하지 마여 짜증남 ㅡㅡ

    이런 건 링크를 따오던가 ㅡㅡ

    링크 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래요 스크롤바 쪼끄매지게.

  • 도봉박홍기 2011.03.01 22:29

    도배가 아니고ㅡ,,님들이 말하는  세계진보 여성주의가 낙태권 합법화 주장이라면서요,.

    그런데,,사실은 생명권 존중으로 넘어온지가,,20년이 넘고 신규 여성주의 단체는 거의 모두가 에코페미니즘

    이던데요..

     

    왜 거짓말로 당원들 속이는 거에요..  그거 거짓말이라서

    올리는 거고요..  제가 이말이 거짓이라면,,증거를 대세요..

    니바니즘-자유여성주의느 서구에서

    자본주의 소비성을 더 추구한다고,,이미 비토되고 있는지가 20년이 넘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세계 여성주의자들도 폐기해 가는것을,,당원들 앞에 거짓말 하는 건가요..

     

     

    궁금합니다.그렇게 당원들을 속여가면서 ,,폐기되는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이유가,,

    니바니즘-혁명적 자유여성주의-프리섹스리즘-신디사이징

    이건 자본주의 쾌락을 추구한다고,,프랑스에서 조차,, 비웃슴에 대상이지 않습니까??

    학교 학생들이나 선택과목으로 배우는것을 왜 당원들 앞에 전세계 여성주의는

    낙태권 합법화라고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척 궁금하다라는 것입니다.

  • 삼출이와 대치 2011.03.01 22:30

    딴건 잘 모르겠고 히포 당원은 무지하게 착하고

    맘씨가 좋은 아자씨 당원입니다요 ㅎㅎㅎ

    내가 봤을때 좋은 말로 애처가

    거시기헌 말루 공처가 스타일

    난 후자인것 같다는....

    낙태문제  무우나 두부 짤,르듯이 쉽게 결론이 나야할텐데ㅠㅠㅠ

     

     

     

     

  • 저질체력 2011.03.02 00:11

    우리 당에 제대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동안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해석을 너무 작의적이고 임의적으로 해석해왔잖아요.

    누군가는 짚고 넘어가야하는 일이죠.

    아무런 토론이나 당원들의 합의도 없이

    자신들의 생각이 당 전체의 의견인양 세상을 향해 '진보신당'의 이름으로 말했던 것을  바로 잡아야죠.

    당강령에 대한 이해도 파악도 없이 임의로 해석해서

    장애인 위원장의 인준에까지 자격운운을 하는 걸 보니 제가 좀 오버하고 있습니다.^^

  • 도봉박홍기 2011.03.01 22:49

    당신들 이러면,, 당신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단체를 조직할수박에 없습니다.

    계속 비아냥과 거짓말로 일괄하십시요,,평당원들부터 뭉처서,, 생태생명주의를 작게나마

    시작할수박에 없습니다,, 비웃던 말던,,당원돠 당 국민들 앞에서 거짓말 하는것은

    더 이상 안됩니다.

  • 도봉박홍기 2011.03.01 22:52

    농담인가,,아닌가,,계속 거짓말로 당원과 당,,그리고 ,,국민들을 속이십시요..

    더이상 댁들의 거짓과 기만을 참을수 없다라는 주장이 많이 들려오고 있으며

    여서주의라는 주의만을 장악하는 권력성에 대해서  우려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계속 이런기만으로 간다면,,반대의 생각을 가진 당원들이,,외부와 연대해서 생태리즘을 시작할수박에 없어요..

    망신을 제대로 당하게 될것입니다. 더이상 당의 대표성도 상실될것이구요..

     

  • 뭉실이 2011.03.02 00:05

    히포님은 건보하나로의 문제부터 신경써야합니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민주노동당시절 구호만도 못함.

    부자는 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낮고, 서민일반의 보험료를 증가시켜 보장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체제타협적인 주장으로서 진보진영의 정책으로 부끄러운 정책입니다

    하긴 체제타협적인 자들에게 도덕적 가치를 고민하라는 것은 무리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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