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철학자 중의 한 명인 "존 스튜어트 밀"은 논쟁에 관해서 아래와 같은 아포리즘을 남겼습니다.
" 진리는 적대적인 토론을 통해서만 도출된다.!!."
이 명제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노선투쟁(?)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할 때 절감하게 되는 문구입니다.
적지않은 토론 속에서 제가 절감하게 된 사실은 절대로 이성적, 합리적 태도만을 가지고서는 서로에게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없다는 서글픈 현실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은 그냥 이상일 뿐이었습니다.
적대적 토론까지 해서라도 그 성과물이 좋다면 금상첨화이겠으나, 그 후에 남아있는 서로에 대한 상처의 잔재는 절대로 쉽게 지워지지 않더군요. 이론적으론 상대방이 옳다면 깨끗히 패배하고 그 논거에 승복하고저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숭고한(?) 모습이 구현되는 것을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자주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가끔 훌륭한 인성을 가진 분들이 그 모습을 보일때도 있지만, 그런 모습이 보편적이지는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서울생활을 접고 산 속으로 귀농을 했었더랬습니다.
그곳에서 회자되는 말이 있는데 " 이곳 사람 중의 80%는 좌파출신이고 20%는 예술가출신이다" 라는 것이었지요
역시나 개성이 강한 곳이라서 그런지 산 속이라도 보통의 조용한 산 속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회의로 치자면 웬만한 서울의 시민단체보다 더 치열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회의에선 목소리 크거나 똑똑한 채(?)하는 사람의 주장이 채택이 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설혹 불만이 있더라도 지겨워서, 짜증나서, 쉬고 싶어서, 자기 주장을 포기합니다.
(목소리 큰 놈과 끈질긴 놈이 이긴다는 것은 어딜가나 사실이더군요)
그때 저와 친구들은 그 상황에 너무도 어이가 없고 실망하여 낙담해 하고 있었지요.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누군가 제안하더군요.
" 회의 그만하고 노래나 부르자 " ... 다들 못마땅해 하며 회의를 다음 날로 미루고 부랴부랴 축제를 준비했지요
우리팀이 3명이었는데 출신성분이 다르니 노래도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중가요와 뽕짝과 김광석 ..이렇게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는 서로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과
같은 노래를 불러 제끼니 묘한 동질감이 솓아 오르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쇼펜하우어나 니체가 그토록 음악을 칭송했는지 그때서야 어렴풋이 알게 된 그 날의 별 총총하던 밤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예술이 가진 힘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자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자동차가 윤활유가 없이 기름만 가지곤 전진할 수 없듯이, 인간이 적은 양이지만 비타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우리도 그런 윤활유같은 촉매재를 통한다면 조금 더 평화롭게 싸울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심상정씨의 잘못된 사유방식과 행위에 대해 상당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치적 행위 이전에 당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을 상실한 그녀를 진보의 주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격한 표현도 표출했던 사람이고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평당원들은 다같이 힘겹게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동지들입니다.
심상정씨의 비호세력일 지라도 인격에 침해되는 발언으로 같은 당원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논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힘은 심상정씨도 아니고 노회찬씨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동지들 아닐까요.
서로 논리와 당위만을 가지고 논쟁하는 방식은 동양인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의 주장입니다.
그 치열함에 음악을 비롯한 예술이 크게 한 몫을 할 것입니다.
당위론에 입각한 정리인 듯하지만, 싸우더라도 서로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이 되었으면 함니다.
우리 당 내에 문예운동을 위한 소모임이 없다는 것이 아마도 이렇게까지 삭막한 감정적 대립을 불러왔다는 것이 딴따라를 숭배하는 저의 짧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