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수합당의 비애, 마포갑의 배제, 비례대표의 차별
3월 4일 양당통합 이후 총선이 끝날 때까지 당 게시판의 글들을 열심히 읽기만 하고 친구들의 입당복당운동에 주력하려고 했다. 진보신당을 청년진보당-사회당처럼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다. 허나 최근 당내 형국을 보며 몇 가지 불편함이 쌓여 그것들에 대해 논할 필요가 생겼다. 이렇게 내 생각을 밝히고 당원동지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2월 12일, 나는 사회당 당원게시판 [과거는 흘러갔다]라는 글에서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대해 {먹고 살기 힘든 집안에서 예쁜 막내딸을 좀 산다는 집 노인네에게 시집보내는 심정}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날까지도 잠정합의문의 존재나 양당 지도부의 당명합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13일, 진보신당 전국위원회 안건지를 보다가 ‘잠정합의문’과 ‘부속합의서’를 발견하고 사회당 당게를 통해 당원들에게 그 사실과 내용을 공유했다. 조용하던 당이 발칵 뒤집어졌다. 16일, 탈당하려는 당원들에게 당 대회에서 적극적 반대를 조직하자고 제안했다. 18일, [진보신당을 넘어 좌파당으로!]라는 글로 지도부의 잘못을 비판하되 양당의 통합에 찬성하고 당명도 양보하고 진보신당호에 승선하여 총선도 같이 치르고 좌파단일정당 건설하는 길에 동참하자고 선동했다. 3월 4일 아침 통합당원대회가 있던 날, 진보신당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으로 가입했다. 갑자기 당원동무들이 많아져서 즐거웠다. 통합당원대회 장면들은 감동이었다.
통합파와 독자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지난 몇 년 간 진보신당에서 진행된 노선논쟁을 모른다. ‘경선불복연합당’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지냈다. 조승수가 당선되어 원내정당이 되었고, 심상정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사퇴했고, 조승수가 대표가 되었으나 당의 결정에 불복하고 탈당했다는 것은 들어서 안다. 그런데 통합파와 독자파가 어떻게 논쟁했고 현재 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누구가 어떤 입장이었는지는 구경한 적이 없어서 모른다. 관심 안 가져서 미안하지만 의무는 아니었다.
구진보신당에만 통합파와 독자파가 있었던 게 아니다. 구사회당에도 여러 가지 입장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진보신당과 ‘한몸’이 되자는 통합파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탈당하여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홍세화 대표의 취임 이후 사회당에는 당 지도부를 위시하여 양당의 통합을 지지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통합파겠다. 지도부가 하는 일이니 믿고 따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당을 그만 닫고 통합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며 소극적으로 통합에 동의하는 당원들도 많았다. 그리고 진보신당과 통합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당원들도 있었다. 독자파겠다.
당 지도부는 통합 관련 일을 추진하느라 분주했을 테고 수임기구 성원들과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동지들은 정신없었을 것이다. 나는 소극적으로 통합을 따르다가 ‘흡수합당’에 분개하는 당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과 실망하여 탈당하려는 즉 현재의 어떤 진보정당에도 속하지 않으려 하는 동지들을 붙잡는 일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미 지도부가 하는 말에 설득되지 않는 상태였고 통합하면 왜 좋은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은 건 일단 통합 후 당의 운영을 지켜보고 신중하게 여유 있게 결정하라는 권유와 총선 이후 좌파정당 건설에 동참하자는 명분 밖에 없었다.
雨歇長堤草色多 비 개인 긴 언덕에 풀빛이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 마를 것인가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네
- 送人 / 정지상
흡수합당의 비애
사회당과 진보신당 양당이 통합하는 데 새로운 당명을 안 쓰고 진보신당으로 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흡수합당이라고 비웃어도 아니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 좋다.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당원정보를 통합하는 게 아니라, 사회당 당원 데이터를 진보신당 양식에 맞게 끼워 넣었다.
사회당 출신 당원들은 진보신당 홈페이지에서 가입 절차를 또 밟아야했다. 그래 좋다. 글을 쓸 수 있게 되자, 로그인이 가능해지자 발령 받은 당직자들과 당원들이 가입인사를 했다. 인사야 좋은 것이지만 주르륵 이어지는 사회당 출신 당원들의 가입인사, 그것에 화답하는 진보신당 당원들의 환영인사를 보면서 몹시 씁쓸했다. 선관위에 흡수합당으로 처리했다는 소식을 본 것 같다. 그저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도부를 믿고 따라왔을 뿐인데, 마치 당을 해산하고 개별적으로 다른 당에 기어들어간 것 같아서 기분이 상했다.
마포갑의 배제와 후보인정 문제
마포당협 정경섭 위원장이 통합당원대회 즈음에 [마포갑 총선대응에 대한 입장입니다.]라는 장황한 하소연을 밝힌다. 그날 이후 마포갑 후보인정 문제는 모두들 보아왔으니 따로 정리할 필요가 없겠다. 홍세화 대표가 모든 후보와 같은 자리에서 이선주 후보에게도 스카프를 매어주었거늘, 그것을 그날 참석한 양당 당원들이 똑똑히 보았거늘 마포갑 당협에서 반대하면 후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로다.
정경섭 위원장이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의 생존을 위해 다른 지역처럼 마포갑 후보로 나갔다면 애당초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신당의 존속을 위해 다들 고군분투 하는데 태업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후보까지 포기하라며 방해한다. 처음엔 단지 세상사 어디에나 존재하는 일종의 텃세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홍세화 대표나 진보신당 서울시위원장이 전략공천으로 마포갑에 출마한다고 밝혔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 지역은 사정이 있어 곤란하니 다른 지역에 나가세요, 총선 후 상근하시렵니까? 상근하겠다고 서약서를 쓰면 출마를 막지는 않겠습니다라고 했을까.
기존 마포당협 측이 더 잘못했는지, 구사회당에서 정한 것이라며 갑자기 마포갑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이선주 후보희망자 측이 더 잘못했는지 그걸 따지는 건 시간낭비다. 만약 이선주가 출마를 포기한다면 그 사태가 단지 마포지역 만의 문제로 끝날 일인가. 다른 지역에서 선거운동으로 정신없는 동지들에게 힘을 주지는 못할망정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한 곳이라도 더 출마하여 당 전체의 득표력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은 존중받을 수 없는 것인가.
사실 정경섭 위원장을 글과 그에 대한 다른 당원들의 논평과 이어지는 약간의 논쟁을 보고 개인적으로는 정경섭 위원장이 무척 고마웠다. 덕분에 이 당에 정의롭고 슬기로운 당원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름은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 고름은 짜내야 하고 소독해야 새살이 돋는 법이다.
총선이 지나면 그 결과에 따라 지난 일들에 대한 평가가 있을 것이다. 이선주가 포기한다면 정경섭 위원장의 목적은 달성되겠지만 홍세화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권위는 크게 손상될 것이다. 수임기관 성원들의 정치력과 수수방관 역시 기억해 두겠다. 양당통합의 축제와 당원들의 화합으로 치러야할 총선이 어떻게 상처 속에 약화되었는지 재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비례대표명부의 차별
언젠가 안효상 대표는 홍세화 대표가 지역구에 나가면 자신도 지역구에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두 대표가 당선가능성이 적음에도 당을 위해 마포갑이나 은평갑에 나란히 출마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그런데 안효상 대표만 지역구로 가고 홍세화 대표는 비례대표로 갔다. 두 대표의 선택을 나쁘게 보진 않는다. 오늘 발표된 비례대표명부와 순번도 그 자체로는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현재 당 지도부와 구사회당 지도부가 놓친 게 있다. 비록 흡수합당이 현실이지만 구사회당 당원들은 이번 총선에서 우리 당이 선거를 잘 치르기를 바라고 사회당에서 했던 것처럼 이 당에서도 각자가 속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비례대표명부에 구사회당 출신이거나 그 동안 사회당과 깊은 교감을 나눈 후보가 한 명이라도 있는가? 그것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 같은 우리 당 후보인데 과거의 출신을 왜 따지느냐고.
이제 나는 진보신당과 통합하는 것을 떨떠름하게 생각해온 당원 동지들에게 진보신당에서 잘 해보자고 말하는 게 힘들어졌다. 마포갑에 이선주가 나가려다가 제동이 걸렸다고, 비례대표명부에 구사회당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2002년 대선에 김영규선생님이 사회당 후보로 나섰고 나는 선본의 인터넷위원장이었다. 후보 홈페이지를 만들고 대선기탁금과 선거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위해 후보홈페이지에 당원들의 후원금내역을 들어오는 대로 날마다 공개했다. 중앙위원급 간부들은 몇 백만 원씩 냈고 당원들도 특별당비를 납부했다. 그렇게 5억을 훨씬 상회하는 돈을 마련했다.
지금 진보신당은 사활을 걸고 총선투쟁에 매진하고 있다. 당원 한 명에게 백 명의 정당투표를 조직하라고 한다. 한 명이 입당하면 그가 조직하고 영향을 줄 표가 수십 표가 될 수 있다. 자기 지역에 후보가 있으면 더 열심히 참여할 것이다. 지역에 후보가 없더라도 자신이 공감하는 후보가 비례대표명부에 있다면 이 당이 총선에서 좋은 결실을 맺는 일에 손을 보태고자 더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안효상 대표가 홍세화 대표와 함께 비례대표명부에 들어갔다면 구사회당 당원들은 좀더 깊은 애당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안효상을 국회로 보내기 위해 3%가 아니라 5%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입당을 보류하고 관망하던 이들도 좀더 빨리 입당했을 것이다. 양당 통합을 기쁘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새로 합류했을 것이다.
왜 그런 배려를 생각지 않는가. 그 숫자가 전체 당원 가운데 아주 일부라서 무시해도 좋단 말인가. 이번 총선에 50만원 내려던 당원이 기분이 좋아서 100만원을 낼 수도 있는데, 무언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10만원만 내고 말 수도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양당 통합을 상징하기 위해 공동위원장을 해야 한다, 아님 부위원장이라도 하라 최소 운영위원이라도 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실제로 그렇게 된 지역 당협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아주 중요한 비례대표후보 명부에서 이유가 어쨌든 양당 통합을 상징하는 공천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역에선 배제하고 비례에선 차별한다면 구사회당 당원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참고로 나는 이번 합당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이렇게 많은 당원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이미 입당했거나 앞으로 함께 할 어떤 동지들이 생각나서였다. 총선 이후에 평가해도 되겠지만 오늘 시점에서 이런 입장도 있었다는 것을 밝혀두는 게 수순이겠다. 당원동지들의 비판과 고견을 기대한다.
안양당원 오창엽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미안한 마음입니다. 사회당에서 합류한 당원들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 소홀해서는 안되는 데. 비례대표 부분에서 특히 심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