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노동당 / 역사
진보신당합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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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진보신당은 2008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시급히 창당 일정을 진행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동당을 탈당했으나 새로운 당에 결합하지 않은 인사들에 대한 조직은 이후 실질적 창당을 통해 실현한다는 취지의 '2단계 창당론'이 제시됐다. 같은 해 3월 한국사회당에서 활동하던 일부 당원들이 조직적으로 이탈해 진보신당에 합류했다. 진보신당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전략명부를 구성하고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지역구에 출마하는 등 노력했으나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고,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2.94%를 득표하여 0.06% 차이로 의석 획득에 실패했다.
이후 원내 진출 실패를 아쉬워하는 이른바 ‘지못미’ 현상이 나타나고 광우병 파동 촛불시위를 통해 입당한 당원 숫자가 늘어나면서 진보신당은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당 외의 노동운동 세력 등을 합류시키기 위한 제2창당 관련 논의가 진행됐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제2창당 일정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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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008년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공동대표제 등의 과도기를 마감하고, 2009년 3월에 당헌과 강령을 제정하고 노회찬 (단독)대표를 선출하는 것으로 제2창당을 대신했다.
2009년 4월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한 조승수 후보가 본선에서 당선되어 진보신당은 원내 정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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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폭정에 의해 2010년 지방선거는 광범위한 '반MB연대' 구도로 치러졌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노회찬 후보는 완주했으나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심상정 후보는 민주당과 단일화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이 사건으로 당의 조직진로에 대한 논란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진보신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정당득표 3%를 넘김으로써 2008년 총선보다 근소하게 향상된 결과를 얻었다. 그럼에도 당내 유력 정치인들은 선거 결과와 당의 전망에 회의를 품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장기적 발전 전망과 그에 따른 진로에서의 관점 차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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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혼란 속에서 조승수 의원을 대표로 한 3기 지도부가 출범했으나 조직진로에 대한 백가쟁명이 시작된 이상 안정적 운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당내 주요 파벌들은 민주노동당 등의 진보대통합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럴 경우 국민참여당을 통합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 아예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민주대연합' 노선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두고 연일 격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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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011년 8월 조승수 대표가 9월 말까지 진보신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이 함께하는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당의 진로에 대한 논쟁은 진보대통합에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의 문제로 압축되었다. 통합반대론자(이른바 독자파)들은 진보대통합이 '도로 민노당'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국민참여당은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반면 통합론자(이른바 통합파)들은 진보대통합을 통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 전제를 포함한 전면적 선거연대가 가능하며 국민참여당은 조건부 통합 대상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같은 해 9월 당대회에서 3기 지도부의 진보대통합안이 2/3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54.1%의 찬성으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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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통합론자들은 집단 탈당을 결행했다. 조직분리가 이뤄지는 국면에서 당의 운영은 비정상적으로 이뤄졌고 정치적 불안정성은 강화되었다. 김혜경 고문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가 출범해 가까스로 혼란을 수습했으나 당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다.
2011년 11월 온갖 혼란상에도 불구하고 홍세화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당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홍세화 지도부는 우선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천명했다. 진보좌파정당 건설은 사회당을 비롯해 녹색당, 사회진보연대, 진보교연, 사회주의노동자정당추진위원회, 노동전선, 현장노동자회, 공공현장 등 통합진보당 좌측의 정당 및 사회단체에 광범위하게 제안되었다. 그러나 이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고 결국 사회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논의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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