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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된 용산개발의 꿈③ 사람이 살아야 도시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가 결국 '사기극'으로 끝났습니다. 개발환상과 토건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던 용산참사, 그리고 이번 국제업무지구 부도. 정부와 서울시는 과연 책임에서 자유로울까요? 진보신당 서울시당에서 '좌초된 용산개발의 꿈'이라는 주제로 마구잡이 도시개발 사례와 그 대안에 대해 릴레이 기고합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매체 '미디어스'에 동시게재되었습니다. ("'공공' 없는 공공개발, '유령도시'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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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6월 3일 가든파이브 NC백화점 1호점 오픈 모습 ⓒ 연합뉴스
 

청계천 상인들, '유령도시'에서 길 잃다
 
얼마 전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산하 '가든파이브 특혜의혹 진상규명 특별소위원회'는 SH공사가 가든파이브에 이랜드 NC백화점을 입점시키면서 정식 공모절차와 경쟁입찰 없이 수의계약을 하고, 일부 서명이 위조된 동의서까지 동원해 입점을 허가하는 특혜를 줬다고 밝혔다. SH공사는 이에 대해 "가든파이브 입점률이 너무 낮아 활성화를 위해 NC백화점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답했다. '대한민국 문화특구'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동남권 유통 단지와 가든파이브의 성공을 자신했던 예전과 달리 '유령도시'가 된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가든파이브는 서울시와 SH공사가 추진한 장지문정지구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을 지칭하는 동남권 유통 단지를 구성하는 물류단지, 이주단지, 활성화단지 중 이주단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동남권 유통단지 개발은 90년대 말부터 예정되어있던 것인데, 이명박 전 시장이 청계천 복원공사를 추진하면서 청계천 상인들의 대체 상가 요구가 빗발치자, 기왕 예정되었던 문정장지지구 도시개발 사업에 이주단지를 포함하게 되어 2006년부터 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따라서 가든파이브는 청계천 복원 공사로 장사 터전을 잃은 상인들을 입주시키기 위한 '이주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주변 상권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이들 상인들이 "의류판매업자가 많고, 평균 매출액이 월 4천만원 정도"인 영세상인임을 확인했고, "청계천 지역에 소규모도소매 업종들이 높은 지가에도 불구하고 그 형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상호 연관된 업종간 네트워크 형성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입주를 희망한 6천 여명의 청계천 상인들이 입점해야할 이주단지는 '업종간 네트워크 형성'을 골자로 영세상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청계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분양에서 실 계약한 상인은 17%에 불과했다. 10평도 안되는 점포가 2억원이 넘는 가든파이브의 높은 분양가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유령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부랴부랴 분양률 제고를 위한 특별공급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는 입주부담을 1~2년 연기해주는 것에 불과해 실질적인 입주 대책이 되지 못했다. 결국 1조 4천억을 투입한 SH공사도, '코엑스의 6배 규모 쇼핑 센터'를 자랑한 서울시도, 비싼 분양비를 감당하고 가든파이브에 입주했지만 NC백화점에 손님을 다 빼앗겨버린 이주 상인들도, 청계천을 떠나야 했던 영세 상인들도 이 '유령도시'의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만 것이다.
 
비리 관행과 부실 전략으로 쌓아올린 ‘이주 없는 이주단지’
 
가든파이브의 실패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다. 가든파이브의 높은 분양가가 청계천 상인 이주를 막고 분양률을 저하시켰으며, 이 높은 분양가는 가든파이브의 최종공사비가 SH공사가 당초 책정한 공사비인 4천억 보다 세배 가까운 금액인 1조 1천억원까지 올랐기 때문이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 경쟁입찰을 통하여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담합과 입찰로비가 쉬운 설계시공 일괄입찰 계약방식(일명 턴키 계약)으로 대형 건설업체들을 낙찰했고, 턴키 계약 방식에서 으례 나타나는 건축비 뻥튀기 관행이 건축비 증액으로 이어졌다. 낙찰 과정에서 한국 개발 사업의 클리셰인 뇌물 로비가 작용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1평당 건설원가만 1,500만원을 상회하게 된 상황에 서울시가 청계천 상인들에게 구두로 약속했다는 '분양가격 7천만원'이 가능할리가 없던 것이다.
 
대규모 신축 상가에서 점포 임대가 아닌 점포 분양 전략을 취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고비용의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는 상인들이 적기 때문에, 임대 방식으로 문턱을 낮췄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공 출자로 대형 상가를 만들었으면 점포 분양 매각으로 단기 수익을 내려는 방식이 아니라 상권을 성장시킬 수 있을 임대 세입자들을 받으면서 전략적으로 '대한민국 문화특구'에 걸맞는 점포 배치를 했어야 한다. 결국 서울시와 SH공사는 얼마나 빨리 공사를 끝내느냐, 얼마나 빨리 수익을 내느냐에 몰두했지 장기적인 상권 성장 전략은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계천 이주 상인들을 위한 '업종간 네트워크 형성' 계획이 존재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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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5월25일 당사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일대를 방문해 공사 현황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며 청계천 복원 공사를 서두르면서 정작 상인들에 대한 현실적인 이주 대책은 고민하지 않는 공공 개발. 영세상인들을 위한 이주단지를 건설한다면서 분양가가 높을 수 밖에 없는 대형 쇼핑몰을 만드는 공공 개발. 그 와중에 분양률이 너무 낮다며 특혜를 주면서까지 대형 백화점을 입점시키고, 인근 점포 상인들은 굶어죽게 만드는 공공개발.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면서도 피해자를 머릿 속에 넣지 않는 마구잡이 개발 사업의 현실이다.
 
‘공공 개발’ 속에 ‘공공’이 없다
 
이른바 한강 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워터프런트 타운'으로 계획된, 이에 따라 갑작스럽게 용산국제업무지구 단위로 포함된 서부 이촌동 아파트 지역 주민들 역시 이 공공 개발의 피해자다. 서울시가 애초에는 민간주도의 개발사업이었던 용산 개발 사업을 '한강 르네상스'라는 공공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연관시키면서 서부 이촌동 주민들은 지난 6년 동안 투기 열풍, 공동체 분열, 재산권 제한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가 실제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통로도 없었다. 서울시가 일방적인 개발계획을 발표하자 주민들의 반대 시위와 항의 방문, 행정 소송이 이어졌고, 1년이 지난 후인 2008년 9월에야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했고,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개발에 찬성하는 주민,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차익을 노리고 끼어든 투기 세력, 재개발 특수를 기대한 부동산 거래인, 상권 몰락이라는 폭탄을 맞은 인근 상가 세입자 등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이 고스란히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역시 ‘한강 르네상스’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그리면서 지역 주민들이 받을 고통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서울시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개발 사업이라면 일단 추진하고 보는, 그리고 쫓겨나게 될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경우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허망하게도, 금융 위기 이후 PF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공사를 위해 사람을 쫓아낸 자리에 건물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용산 4구역은 현재 토지매매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빈 공터로 남아있다. 서울시가 ‘고급주택단지’를 조성한다던 내곡동 헌인마을은 강제철거 이후 사업이 표류하면서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다. 당장 오늘도 누군가 쫓겨나는데, 정작 쫓겨나는 이유가 되는 개발 사업은 연달아 망하고 있는 판이다.
 
‘단군 이래 최대’라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좌초하면서 도대체 이 ‘부도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많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주요 언론의 초점은 누굴 비난해야 하는가, 누가 이 책임을 져야하는가에 머무르는 것 같다. 우리가 되짚어봐야할 것은 무엇보다도 공공 개발의 이름 하에 더 이상 피해자를 양산해서는 안된다는, 아주 기초적인 교훈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건물을 올린다고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야 도시이기에.
 
 
 
[ 김예찬 (진보신당서울시당 정책대협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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