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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기고] 삼성 불산 누출 사고, 그 후
이 기사는 경기도의회 최김재연 의원(진보신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3월 3일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프레시안> 편집자와의 협의 하에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에 동시게재합니다.

 
 
비밀의 공간, 삼성 반도체 공장
 
전 세계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 '윌리 웡카 초콜릿 공장'. 매일 엄청난 양의 초콜릿을 생산해 세계 각국으로 운반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공장을 드나드는 걸 본 적이 없는 비밀의 공간.
 
어느 날 신비로운 인물인 초콜릿 공장의 사장 윌리 웡카가 5개의 웡카 초콜릿에 감춰진 행운의 '황금 티켓'을 찾은 어린이 다섯 명에게 자신의 공장을 공개하고 그 모든 제작 과정의 비밀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제 전 세계 어린이는 황금 티켓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팀 버튼이 만든 판타지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가난한 소년 찰리가 기적처럼 티켓을 얻고 나서 환상적인 달콤한 맛을 만들어내는 초콜릿 공장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오늘날 아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에게 판타지를 제공하면서 우리의 생활에서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갖가지 전자제품, 그 중에서도 그 모든 기기들의 작동을 가능하게 하고 그 성능을 한꺼번에 달라지게 하는 '마법의 돌' 반도체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질까.
 
세계 1위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이 반도체 공장이 하루 동안(2010년 4월 15일) 잠시 기자들에게 공개된 적이 있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이 1983년에 세워진 이래 처음으로 반도체 D램 생산 라인 두 곳과 핵심 공정을 하는 곳이라는 클린룸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동안 기술 보안을 이유로 결코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바꾸어 이런 이벤트를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삼성 측에 따르면, 그건 '소수'의 사람들이 제기한 백혈병 발병과 반도체 제조 공정 사이의 관련 의혹을 씻어내기 위함이었다. 지난해 2월 기준으로 반도체 등 전자 산업 현장에서 백혈병 등 희귀 질환으로 사망한 62명의 노동자 가운데 2007년 백혈병 판정을 받은 기흥 반도체 공장 노동자 박지연(당시 23세) 씨가 2010년 3월 31일 사망하자 인터넷을 통해 논란이 확산되던 시점에.
 
늘 이런 식이다. 하기야 누가 이런 사실들을 챙겨서 기억하겠는가. 노후한 생산 라인이 사라진 더구나 먼지 하나 없는 클린룸에서 기자들이 발암 물질을 발견하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기적. 혹시 그 직후 만들어진 '삼성 이야기'니 '삼성 반도체 이야기'니 하는 삼성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세간의 의혹들이 말끔히 세척되는 걸 느낄 것이다.
 
법과 윤리를 지키는 정도 경영은 삼성전자의 경영 원칙이고, 이 글로벌 기업의 대표이사는 스스로를 CEO가 아닌 CHO(최고 건강 관리사)라 부르며 "임직원의 건강을 담보로 한 이익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깔끔하게 못 박고 있지 않은가.
 
삼성 공장은 초콜릿 공장이 아니다
 
이번에는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이 터졌다. 경기도의회의 첫 회기가 시작되던 지난 2013년 1월 28일 수원에 도착하고 나서 오후가 되자 <연합뉴스> 등의 보도를 통해 이곳에서 멀지 않은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유독 화학 물질인 불산이 누출되어 작업 중이던 노동자 박 아무개(33세) 씨가 숨지고 4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곧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업장에서 일하던 방역 협력 업체 STI서비스 노동자들이 11라인에서 불산 누출을 확인하고 삼성전자 측에 보고한 것은 그 전날인 27일 오후 1시 22분이었다. 불산은 유해 화학 물질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4등급 화학 물질. 그럼에도 사고는 고지, 보고되지 않았고, 불산이 새어나오는 탱크는 가동이 중단되지 않았고, 불산이 비워지지도 않은 채 10시간 이상 방치된 가운데(아직은 추정이지만) 방역 하청 노동자들이 밸브 교체 작업에 투입되었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머릿속은 의문 부호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삼성은 왜 STI서비스 노동자 박 아무개 씨가 작업이 끝난 지(28일 오전 6시 31분경) 한 시간 만에 병원으로 옮겨지고 오후 1시 숨지고 나서야 관리, 감독 기관인 경기도청에 누출 사고를 보고했을까. 그것도 사고 시간을 놓고서 처음엔 허위 보고를 하고 불산 누출 양에 대해서도 말을 바꿔가면서(처음엔 10L라 했다가 나중엔 2L라고).
 
사고 후 25시간이나 지나서야 사건을 보고받은 경기도청은 언론이 보도를 시작한 뒤에야 유관 기관인 환경부나 경찰청 등에 사고 사실을 알렸다. 이건 또 왜 이럴까. '삼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도' 도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긴급 사안에 대한 행정 책임 기관의 이런 느려터진 대응은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일까.
 
경찰이 CCTV를 통해 확인한 대로 삼성이 STI서비스 작업자와 함께 사고 수습 후, 불화수소로 변한 불산을 외부로 배출했다면. 그래서 작업장과 맞붙은 곳에 사는 지역 주민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유독 물질에 노출되었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나중에 민관 합동 조사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불산 누출 사고 당시 중앙 화학 물질 공급 시스템(CCSS) 룸의 문이 6시간가량 개방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고, 이는 불산이 외부로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도청의 눈과 귀는 삼성과 경찰의 움직임을 향해서만 열려 있었다. 도시환경위원회 소속인 의원들과 화성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은 경기도의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민간대책위원회의 여러 가지 요구를 접하고 의회에서 논의를 하면서, 우리는 해당 지역에 책임이 있는 우리들 자신이 직접 민관 합동 조사단을 구성하고 수행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반도체 산업은 절대로 '청정 산업'이 아니다. 가난한 소년 찰리가 동경하며 찾아간 초콜릿 공장이 아닌 것이다. 화성 공장 한 곳만 하더라도 반도체 제조용으로 연간 불산 7658톤, 불산 함유물 7719톤, 불산과 질산 혼합물 866톤을 사용하는 것을 포함, 연간 40만톤의 유해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세계 최대의 화학 단지이다. 바로 그 옆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이 이번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조사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지역 사회 구성원의 최소한의 알 권리와 안전권에 해당한다.
 
하지만 삼성이 이 민관 합동 조사단을 대하는 태도는 속된 말로 '개무시'로 일관하는 오만 그 자체였다. '그래서 너희가 어쩔 건데?' 냉랭한, 때로는 사무적인 부드러움 속에 감추어진 진짜 표정이 묻는 것은 바로 이 한마디였을 것이다. 불법 비자금, 경영권 불법 승계, 태안 반도 원유 유출 사건, X파일, 백혈병 등, 수많은 '역경'을 이겨온 '관리의 삼성' 아닌가.
 
수사권도 없는 민관 합동 조사단이 요구하는 기본 자료(공정 안전 보고서나 CCTV 자료 등)의 제출은 물론이고, 불산의 외부 유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사업장 내의 시료 채취 조사도 거부되었고 주민 설명회 등에서 한 약속은 간단히 번복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시작한 오늘(2월 26일) 경기도경찰청의 이번 불산 누출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경찰의 발표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 가운데 '기본적인' 사실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노동자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 '사고'는 지극히 짧은 시간에 노출되어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불산이라는 유해 화학 물질의 위력으로 인해 너무도 명백한 결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었고, 수사권이라는 물리적 강제력을 조금만 동원할 수 있어도 확보된 CCTV 자료 같은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비록 녹화 기록으로 확인했듯이 사고 수습 후 중앙 화학 물질 공급 시스템(CCSS) 안에 가득 찬 불산 가스(로 추정되는)를 9대의 배풍기로 외부로 배출한 행위(와 그 결과)의 위법 여부에 대한 판단을 환경부 등의 조사 완료 이후로 미루었지만.
 
불산 누출 사고, 그 진실은?
 
나는 경찰의 노고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다.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이 정도의 실체였나 하는 허탈감만이 아니다. 경찰은 자신들이 밝힌 사실만 가지고서도 삼성전자 임직원과 STI서비스 임직원 7명을 업무상 과실 치사 협의로 입건했고 또 추가 입건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마 이제 이 사건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는 지칠 것이고 또 다른 업무에 치이며 이 사건을 미제 건으로 아쉬움 속에 묻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는 '껌 값'의 과징금과 보상금을 치룬 뒤 반도체 생산으로 천문학적 매출을 기록할 것이고 사람들은 이 수치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 속에서 오늘 이 사건을 잊게 될 것이다. 두려운 것은 이러한 망각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늘 이렇게 되는 것 아니던가. 화성 반도체 공장이 매일같이 뿜어내는 하얀 수증기의 정체를 의심하던 지역 주민들은 부동산 가치의 하락을 걱정하는 마음에 자신과 아이들의 현재의 안전을 저당 잡히게 될 것이고, 경기도는 초일류 기업 삼성이 가져다주는 1000억 원이 넘는(2012년 기준) 엄청난 지방세 수입을 기대하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도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쯤에서 거대 기업 삼성이 보기에 하찮은 도의원으로서의 신분을 걸고라도 꼭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사건은 복잡한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대 산업 사회 어디에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사건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발표한 대로 누출 사고의 원인이 불산 탱크 밸브 연결부의 노후화와 볼트 부식이라면 이는 한 사업장에서만 연간 수십조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삼성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한 라인에서만 99종에 이르는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위험한 작업 환경 개선에 극히 인색한 삼성의 문제인 것이다.
 
삼성은 누출 사고 확인 뒤로도 탱크에서 불산을 제거하고 밸브를 교체하는 대신, 사고 탱크 안의 불산을 전부 사용할 때까지 기다리며 방치해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프레시안> 김윤나영 기자가 규명한 대로 협력 업체(하청업체)는 공정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무조건' 삼성 측에 보고해야 하고 작업 역시 삼성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야 하므로 사고의 결과는 '무조건' 삼성에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관련 기사 : 삼성은 그때 왜? 불산 누출 사고 5대 의문점)
 
그러나 그뿐일까. 경찰의 발표는 벌어졌던 사고의 그것도 일부의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내 머리 속으로는 오래 전에 읽은 팔레스타인 작가 가산 카나파니가 쓴 <뜨거운 태양 아래서>(윤희환 옮김, 열림원 펴냄)이란 소설이 떠오른다. (☞관련 기사 : 김연수 씨! 문학이 뭐죠? 쇳덩이 혹은 마리화나?)
 
돈을 벌기 위해 불법으로라도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한여름 뜨거운 빈 물탱크 속에 몸을 숨긴다. 한 검문소에서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탱크 안의 사람들은 비명도 질러보지 못하고 모두 숨진다. 운전사가 차를 다시 몰고 가다가 아무런 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겨 차를 멈추지만 때는 한참 늦었다. 시체 한 구 한 구를 사막 한쪽에 내려놓으면서 목이 메어 외친다. "왜, 탕탕하고 두드리지 않았느냐 말이다. 왜 당신들은?"하고.
 
내가 궁금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불산이 누출되어 흐르는 것을 알면서도, 왜 숨진 박 아무개 씨를 포함해서 STI서비스 직원들은 탱크 가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는커녕 흐르는 불산을 비닐봉지에 받아가며 그것도 화학 약품을 막는 방산복(방진복이 아닌)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로 보수 작업에 묵묵히 투입되었느냐는 것이다.
 
(박 아무개 씨는 불산에 1차 노출된 후 귀가했다가 다시 새벽에 불려나와 작업을 하다 2차 노출로 사망에 이르렀다. 삼성은 초기 작업에서 박 아무개 씨 혼자 안전 복장을 갖추지 않았다고 하지만 개인 과실로 규정하려는 이러한 설명은 안전 관리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뿐더러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이다.)
 
그들은 왜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탕탕 두드리지 않았냐(못했냐)'는 것이다. 김윤나영 기자의 같은 기사에 쓰인 대로, 이런 상황에서도 원청인 삼성에 사고가 알려지는 것이 꺼려져서 사업장 안에 있는 삼성병원이 아니라 바깥 병원으로 가면서까지 말이다.
 
삼성이 보여주는 무책임의 구조에는 물론 선출되지 않은 '경제 권력'으로서의 삼성이 지닌 엄청난 '힘'이 배경으로 버티고 있을 것이다. 삼성은 스스로 대한민국 전체를 '먹여살릴' 뿐 아니라 특히 경기도에 대해 그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업의 투자 유치 혈안이 된 것은 비단 경기도만이 아니겠지만, 상대가 삼성이라면 그 강도는 달라진다.
 
경기도가 삼성에 들이는 공력은 눈물겨운 바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술은 생략한다.) 이번 사건을 거치면서 경기도에 '삼성 예외론' 같은 것이 작동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비단 나만일까. 이 예외론이 유독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그 범위를 자기가 관리한다는 자기 폐쇄적인 삼성의 기업 문화를 키운다.
 
어떤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원인에 대한 철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비록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일지라도 다시 그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삼성의 문제는 '죽은 사람(결과)'은 있어도 '죽인 사람(원인)'은 밝혀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삼성은 스스로에게만 책임지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0년에 동일한 불산 누출로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병원으로 실려 갔어도 이 사건은 은폐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무서운 것은 이것이다.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삼성의 모습에서도 어떤 심각한 인명 손실도 '일상적 유지 관리 차원의 일'로 간주하려는 완강한 태도가 읽힌다.
 
이 모든 것은 삼성이 성장하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부수적 손실' 쯤으로 여기는. 여기에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에 포함이 안 되는 하청노동자들의 존재는 어떤 위치를 부여받겠는가. 이야기를 다시 이 부분에 맞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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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7일 삼성전자 화상 반도체 공장에서 불산 가스가 누출돼 협력사 직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시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사건(사고)이 일어나는 곳은 '현장'이다. 직접적으로 안전을 위협받고 자칫하면 생명을 빼앗기는 사람들은 현장 노동자들이다. 이 현장 노동이 어떻게 조직되고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어떤 라인에서 어떻게 유독 물질이 유출되었는가 하는 문제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사내에서 일하는 원청-하청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삼성전자에는 현장의 현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해줄 '노동조합'이 없다. 왜 유독 삼성을 문제 삼느냐는 볼멘소리는 왜 삼성 반도체 공장 같은 곳에서 유독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러한 사건을 잉태하는 원인이 드러나지 않는가를 돌아보지 않는 하품 나는 투정이다.
 
유독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작업장에는 거의 군대식 기율이 적용된다. 이곳에는 나이 어린 여성을 비롯한 하급 노동자들이 배치된다. 방제 작업 같이 위험도가 더 높을수록 하청 업체가 이를 담당한다. 오로지 사측의 관리에 의해서만 현장에서의 노동은 이렇게 위계화되고 높은 벽으로 분할되어 있다.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의 삼성 공장 방문 조사 시 우리가 들은 삼성 측 답변에 따르면, 사고 당일 삼성은 유독물 관리자도 참여시키지 않은 채 STI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불산 운반과 중화, 세척과 보수 작업 등을 지시했다.)
 
어차피 어지간한 사고는 하청 업체들이 알아서 자체적으로 처리할 것이다. 사고가 생기더라도 이번 경우처럼 자기 회사의 직원이 아니니 보상도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다. 게다가 STI서비스는 하청업체 STI의 하청을 받은 제2하청이니 문제는 더 복잡하다.
 
무노조의 문제와 원청-하청 문제까지 거론하는 것은 이야기를 너무 멀리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할 수 있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위험이 상존하는 현장의 노동 과정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어떤 권한도 당사자들에게 부여되지 않는 지금까지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사고 역시 근원적으로 방지될 수 없다.
 
그래서다. 삼성은 스스로 책임 윤리를 작동시킬 수 없는 '무책임의 구조'를 지닌 자폐적인 왕국이다.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를테면 전략기획실 같은 곳이나 경영-관리 집단을 빼고는 '삼성에 다닌다'는 자부심 빼고는 어떤 자율적인 권한도 없다. 삼성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관리-통제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업 이미지에 '기스'가 나는 일이다.
 
법에 따른 신고의 의무를 저버리고 시간을 끌었던 이유도, 예를 들어 CCTV 기록 자료를 민관 합동 조사단에게만큼은 넘겨주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불산의 외부 유출 사실을 은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또 비상사태 시 주민 조치 사항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공정 안전 보고서 제출을 거부한 것도 삼성은 자신의 담장 밖에 대해 어떤 책임 있는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번 사건에서 삼성이 가장 신속히 한 일은 환경부(국립환경과학원) 조사를 통해 불산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 일이었다. (이것은 민간 단체인 시민환경연구소가 조사한 주변지역 불소 농도 추정치와 판이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환경부와 삼성과 민간을 포함한 조사단이 공동으로 재조사에 나서자는 제안에 대해 정부는 그럴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래서 민관 합동 조사단의 구성은 중요했던 것이고, 경기도민(수원 등 일부 지역에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좋다)의 삶과 안전이 '삼성의 안전'에 볼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지역 주민의 참여는 긴요한 것이다.
 
이번 삼성 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불산 누출 사건이 깨닫게 해준 가장 큰 교훈은 삼성 반도체 공장의 담장 안의 위험이 밖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있을 것이다. 지난해 9월 구미 산업 공단에서도 불산 유출 사고가 나서 노동자 5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으며 인근 주민이 모두 대피하는 등의 소동이 일어났었다.
 
민관 합동 조사단이 밝힌 사실이지만, 경기도 환경국은 삼성전자로부터 지난달 28일 오후 2시42분 사고 신고를 받았으나 3시간 정도 지난 오후 5시 40분에야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에 사고 사실을 알렸고, 소방재난본부는 같은 날 오후 4시 8분에 화성동부경찰서로부터 사고 내용을 접수했으나 환경국에 알리지도 않는 등 도지사의 지휘, 감독을 받는 환경국과 소방재난본부의 협조 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경기도에 위기 대응 시스템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화성 반도체 공장은 동탄 신도시와 불과 6~8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지척의 거리에 있다. 기업 도시니 혁신 도시니 하는 것이 마치 시대적 명제인 것처럼 운위되는 현실에서 경제 지표만으로 모든 것을 덮으려 할 때 지역 공동체에 대한 기업의 무책임성은 그 아래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기생할 것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세계 초일류 기업이 있다는 자부심과 삼성 반도체 공장이 그 자체로 폐쇄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위기의식은 어느 한쪽에 의해 다른 것이 감추어져야 하는 양자택일의 사항이 아니다. 위기에 노출된 노동자들에게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어떤 조직적 발언도 허용되지 않는 기업이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으면 어느 때인가는 그곳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위험은 담장을 넘어 우리들 자신을 덮칠 것이다.
 
시민의 알권리 차원을 넘어선 참여의 대책과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판적 언론이 환기시켜준 예 가운데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소재하고 활동하는 '실리콘 밸리 독성물질방지연합(SVTC)'이라는 조직이 있다. 여기에는 지역 주민과 반도체 공장 노동자, 환경 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1981년 지하수 오염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이 조직의 주도로 2년 후 일반적인 산업안전법령에 더하여 '지역 사회의 알 권리에 대한 법'과 '유해 물질 모델 조례'라는 것이 통과된다. 시민 참여와 노동조합의 역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감시 운동, 나아가 법(조례)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곳의 기업들 역시 '철저한 감시와 참여를 보장하도록 지역 사회나 노동자들과 긴밀히 협조한다'는 '전자 산업의 사회적, 환경적 책임에 대한 실리콘 원칙'을 따르게 되어 있다.
 
산업 안전 문제는 개별 사업장을 넘어서는 지역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산업 안전 시스템이 개별 기업 안에만 구축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며 해당 기업의 정보의 공개 여부를 기업의 판단에만 맡기는 것은 지역 사회 행정 기관의 직무 유기(배임죄)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나는 경기도 주민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한복판에 들어선 무소불위의 삼성의 담장을 허물고 들어가 '노조 없는' 세계 최대의 화학 단지가 얼마나 무서운 시한폭탄인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독극물이 흐르는 공장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 벽을 탕탕 두드리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의 자부심을 형성하는 첨단의 산업체들이 특정 재벌 가문의 배를 불리는 소유물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는 공동의 자산이 되는 꿈이 단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되는 날을 꿈꾼다.
 
     
/최재연 경기도의원·진보신당연대회의 경기도당 부위원장
 
 
[ 최김재연 (진보신당 경기도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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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전될 전기기기도 없는 천막, 신원불명의 도주자 목격되기도 ▲ 3일 새벽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 진보넷) 오늘 새벽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천막농성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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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특정정치세력”이라니, 그럼 헤럴드경제는 새누리당 매체인가

    당의 당원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정치세력'까지 되는 것은 논리적 비약 수준도 안되고, 그냥 사기에 가깝다. 이런 논리로 말할 것 같으면, 새누리당 홍정욱 전 의원이 소유주인 헤럴드경제는 새누리당 매체인가? 더군다나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어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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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화덕헌 의정일기② 충격! 남자 구의원이 여자화장실에?

    작년 말 행정사무감사를 진행 중이던 해운대 구의회. 쭈뼛거리며 남성 의원들이 여자화장실을, 여성 의원들은 남자화장실을 들어갔다. 남성 의원들은 여자화장실의 좁고 열악한 시설을 보고 충격받았고, 여성 의원들은 변기 갯수가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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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리에쥬에서 쓰는 편지⑤ 오즈의 에메랄드 성을 찾아서

    오즈의 에메랄드 성을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초록색으로 된 안경을 써야 하지요. 그러면 눈앞에는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도시가 펼쳐지지요. 저에게는 프랑스 북부에 자리잡은 도시 릴이 그런 도시였습니다. 지역 수준에서 사회적경제를 지역개발의 주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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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들은 가진다. 우리는 나눈다. 그러므로 지지 않는다”

    2월 첫날 아침, 부평 콜트 공장에서 농성 중이던 콜텍악기 해고자들 4명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경찰과 용역들에게 사지가 들려서 버려졌다. 이번 ‘집행’으로 집을 뺏긴 건 해고자들 뿐 만이 아니다. '기타 만드는 노동자 없이 음악도 없다'며 빈 공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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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다시 10년, 독립정치 노선의 재구성을 위해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보수를 택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보수 진영이 두텁거나, 최근 더 두터워졌다. 새누리당이 피상적일지나마 복지 공약과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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