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지방의원에게 민원을 보내주세요
부산 해운대구의회 화덕헌 의원은 지역 내 현안들에 대해 수치를 꼼꼼히 분석하여
문제제기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등, 생활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기초의원으로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최근에는 부산시의회가
민주공원 예산을 반 이상 삭감한 데 항의하여 옷을 '반만 입고' 하의실종 시위를 벌여 또 한 번 이슈가 되었습니다.
직업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 아파트와 대형교회를 주제로 작업하거나 주공 AID아파트
철거과정을 사진으로 남기는 등 다채로운 작품활동을 통해 오늘의 한국사회를 담아냈습니다. 구의회에 간 노랑머리 사진작가의 의정일기 세 번째,
보좌관 이야기입니다.
국회의원은 인턴을 포함해서 9명의 보좌관을 두고 있지만, 광역 시/도의원이나 기초 구의원 같은 경우 보좌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2010 지방선거에서 당선되고 첫 등원할 당시 해운대 진보신당 의원 세 명은 공동 경비를 월 100만원씩 갹출하여 보좌관 1명과
공동사무실을 운용했다. 세 명 모두 의정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등원하자마자 추경을 다룬 175회 임시회와 176회 결산 정례회가 이어졌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진보신당 의원들은 보좌관 김문령 동지의 도움으로 의정활동이라는 첫경험에 연착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정활동 3년차에
접어든 지금, 진보정당 재통합과정에서 3명의 의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의원사무실과 보좌관도 없어지고 말았다.
첫 번째 보좌관, 신문
보좌관이 없어지고 나서부터는 스스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의 공부는 신문을 챙겨 읽고, 읽은 신문 기사를 지방정치나 행정,
환경, 여성, 노동, 장애인, 자살, 동물, 노인, 청년 등의 주제어 별로 기사를 복사해서 수집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면 폐지로
쓰레기통에 처박힐 신문이지만 오려서 분류하고 모으면 둘도 없이 소중한 자료실이 된다. 지금 내 책상에는 주제별로 모은 서류철이 150개 정도
된다. 이렇게 모은 자료들은 위원회 활동과 의회에서의 각종 발언에 중요한 소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비판과 지적에 머무르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는
의정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지난 연말 2012년 행정사무 감사를 준비하면서 나는 모아놓은 신문기사 자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신문 기사를 가지고 행정사무감사
준비를 다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기사를 살펴보면 어떤 패턴이 보인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거창한 담론을 꺼낼 필요도 없다. 세상은
고만고만하다. 다른 도시에서 일어난 문제점이 해운대구의 문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
▲주제별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두면 의정활동에 중요한 소재들을 얻게 된다. (사진:
화덕헌)
지난 첫 번째 의정일기(화덕헌 의정일기① 지자체 위원회 난립 “이의있습니다”)에서 다룬 위원회 난립 문제 역시 울산시의
사례에 관한 신문기사를 통해 발견한 것으로 혹시나 하고 해운대구 현황 자료를 요청해 분석해 보고 쟁점을 만든 것이다. 화장실 기본법이 있다는
사실도, 2013년부터 성인지 예산서가 제출된다는 정보도 마찬가지이다(화덕헌 의정일기② 충격! 남자 구의원이 여자화장실에?). 이렇듯 나는 매일 버려지는 신문기사를
모아서 의정활동의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일간지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이야말로 나의 첫 번째 보좌관인 셈이다.
두 번째 보좌관, 카메라
나의 두 번째 보좌관은 카메라이다. 작은 크기의 디지털 카메라는 주변에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특별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경우만 아니라면 나는 의정활동을 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사진으로 남긴다. 별 뜻 없이 찍어 둔 한 장의 사진이
나중에 엄청난 문제의식을 뿜어내기도 하고, 나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 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왜냐면 사진은 발효식품과 같은 거라서 시간과
함께 맛이 익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은 사진들은 5분 발언이나 구정질문 할 때 나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중요한 시각적인 자료가
된다. 사진은 나의 부주의함과 퇴화하는 기억력을 보완해 준다. 카메라는 빠트림 없이 기록하며 오차 없이 재생하는 놀라운 보좌관이다.
한 장의 사진은 전후 맥락을 알 수 없다는 속성 때문에 엄청나게 과장되고 자극적이다. 거두절미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발언 할 때
사진을 제시하면 반응이 훨씬 크다. 기승을 부리는 불법 사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5분 발언에서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전단을 뿌리는
사람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제시했는데, 제출된 사진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그 어떤 웅변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공공장소에 범람하는 협찬성 상업광고 문제점을 사진자료를 제시하면서 문제제기했다.
(사진: 화덕헌)
공공공간에 범람하고 있는 협찬성 상업광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구정질문의 경우도 그랬다. 질문신청자가 구정질문 순서를 포기하는 바람에
내가 급하게 대타로 나서게 되어 질문준비 자체가 부실했지만 <공유지의 비극>의 극적인 실태를 찍어둔 사진들을 증거물로 제시함으로써
본회의장에서 반향을 일으켰고 재발 방지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보좌관은?
얼마 전 활동보조인연대 집행위원장인 서울의 고미숙 당원으로부터 민원을 해결해 달라는 부탁 전화를 받았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근무시간
축소에 따른 임금 감소에 관한 내용이었다. 비록 내가 소속한 위원회의 소관 업무는 아니지만 당연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담당 부서를 통해 민원
내용을 차근차근 알아보았다.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는 신체적 정신적인 장애로 인해 생활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에게 국가에서 활동지원 급여를 제공하는 것인데,
장애인들은 지급 받은 급여를 가지고 활동 보조인들을 요청해서 생활과 활동에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문제는 근무시간인데 근로기준법은 월 208시간을 못 넘게 되어 있지만 활동보조인들은 장애인 보조 활동 업무의 특성상 특례적용을 받아
208시간 이상 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부정 수급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제한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략 시급이 6500원
정도인데 4대 보험 내고 나면 월수입은 110만원 정도 밖에 안 되니 부양가족이 있는 활동보조인들의 경우 208시간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쟁점은 보건복지부의 지침내용의 무리한 해석이었다. 208시간 초과분에서 부정 수급 빈도가 높으니 관리를 잘하라는 지침이 지자체로
내려오면서 그 내용이 둔갑하여 208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는 식으로 자의적으로 해석되어지는 사례가 발생했다. 활동보조인 제공기관들 역시
감사지적을 염려해서인지 편의적으로 초과 근무자들을 가려내어 근무시간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움을 받는 장애인 입장에서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함께 생활하던 익숙한 보조인의 근무시간이 다 차면 중간에 낯선
보조인으로 교체해야하는데 이때 사생활 노출이라는 문제가 중복 발생하게 된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근무시간 축소 민원을 해결한 뒤, 민원인으로부터 감사 문자를
받다!
해운대구의 경우 내가 알아본 바로는 구청 직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제한에 대한 특례 조항을 이해하고 있었고 근무시간 제한 지침을
제공기관들에게 내리지 않은 것으로 말했으나 제공기관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초과 근무자들의 근무시간 제한하고 있었다. 담당부서의 직원에게
활동보조인들이 근무시간 제한 없이 근무할 수 있도록 관내 활동보조인 제공기관 3곳을 지도 감독할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민원을 처리하다보면 나
스스로도 활동보조인 제도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고미숙 당원에게 상담을 하였던 분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려 드렸다. 그리고 기존 방식대로 연장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얼마나 기뻤는지 통화가 끝나고 곧바로 문자까지 다시 보내왔다. 앞으로 지역에서 좋은 인연이 계속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국의 당원 여러분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진보신당의 열 두 명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 현장이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고 각 지역의 의원들에게 문제점을 알려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민원을 물어다주는 당원들, 여러분들이야말로 나의 세 번째
보좌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