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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대부분의 짐을 강탈당한 뒤, 40일간 유럽 민중의 집 취재는 고난의 행군을 방불케 했다. 수영복을 입고 자야했고, 아침에 옷이 말라있지 않으면 드라이기로 말려서 갈아입은 후 하루를 시작했다.

* 정경섭 마포 민중의집 대표가 쓴 <민중의 집>(레디앙)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정경섭 대표는 유럽 곳곳의 '민중의 집'의 뿌리를 찾아 취재하고 다시 2년간 각종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였습니다. 그 책에 마저 담지 못한 이야기- 그가 만난 사람들, 45일간의 유럽여행기를 들어봅니다. 이 기사는 <레디앙>과 <정치신문 R>에 공동 게재됩니다.



유럽 민중의 집을 45일간 탐방하기로 결정한 후, 가장 걱정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수동기어로 된 차량을 운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10년 전 2종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한 이후 한 차례도 수동기어로 된 차량을 운전해 본 적이 없었다.

굳이 수동기어로 된 차량을 빌리려고 한 것은 기름값이라도 아껴야 했기 때문. 하루 평균 400킬로 미터 이상을 운전하며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프랑스 남부에서 이탈리아로,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이동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삼일동안 취재를 마친 후에 한 달간 함께 할 차량을 인도받았다. 검은 색 푸조.

차량을 받고 하루 동안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도로 환경과 낯선 표지판, 그리고 사실상 처음 해보는 수동기어 조작. 영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는 내비게이션.

라이트와 레프트까지 헷갈린다. 명색이 진보정당에 속한 사람이 좌우를 헷갈려 하다니.

그리고 차량을 받고 이틀째 되는 날이자 스페인 도착 5일째. 4시간 동안 운전을 하다가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라는 도시에 잠시 들렀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아름다운 곳. 몇 가지 물품을 사려고 마트에 들렸다.

유럽 민중의 집 투어 대부분의 잠자리는 캠핑장이었고 우리는 그에 걸맞게 텐트와 전기밥솥, 버너 등을 한국에서부터 구비해 갔다. 그날 역시 목적지인 세비아 인근 캠핑장에서 묵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간단한 식료품 등을 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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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에서 모든 걸 도둑 맞은 흔적


20분 정도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왔는데, 조수석 유리창에 주먹크기 만한 구멍이 뚫린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누군가 유리창에 구멍을 내고 우리가 가지고 온 짐의 대부분을 강탈해갔다. 눈물이 핑 돌았다.

카메라 3대, 노트북, 내비게이션, 한 달 치 식량과 옷가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얻은 <민중의 집 100년사> 등 소중한 자료들이 모두 없어졌다. 남은 것은 텐트, 2인용 전기밥솥, 그리고 속옷가방, 드라이기, 취재 시 상대방에게 전달할 몇 가지 한국 기념품.

이후 40일간 유럽 민중의 집 취재는 고난의 행군을 방불케 했다. 수영복을 입고 자야했고, 아침에 옷이 말라있지 않으면 드라이기로 말려서 갈아입은 후 하루를 시작했다.

스페인 외에 다음 행선지인 이탈리아, 스웨덴에 매일 이메일을 써서 보내는 것도 스마트 폰으로 겨우겨우 했다. 취재 후 메모 역시 스마트 폰에 저장을 했다.

조그마한 스마트 폰 자판을 손으로 누르는 게 익숙지 않아서 노트북에 비해 열배이상 시간이 걸렸다. 사진과 출신인 난, 도난당한 고급 카메라 대신 급하게 마련한 소형 카메라로 민중의 집과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꾸역꾸역 4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한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종로에 개업하는 서점 <레드북스> 오픈 행사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과 거나하게 한잔 하고 밤 12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열쇠구멍을 뻥 뚫려있었고 문은 반쯤 열려져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나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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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또 한번 당한 도둑의 흔적


절도의 추억…술이 확 깨면서 반쯤 열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짧은 찰나에 내 머리 속에는 똑닥이 카메라의 생존 여부였다. 그 카메라가 없어진다면 유럽 민중의 집 책 출판은 물건너 간다는 생각뿐이었다. 집 안은 온통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난 카메라부터 찾았다. 사진을 전공했는데 좋은 카메라 다 잃어버리고 이런 작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니 하며 구박을 했던 그 카메라를.

아직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 컴퓨터에 사진파일을 옮기기 전이었다. 카메라를 잃어버리면 책 출판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다.

감사한 일이었다. 원채 빈궁한 살림인지라 없어진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카메라도 물론 곱게 있었다.

털석 방안에 주저앉으며 스페인 도난 사건을 떠올렸다. 만약 스페인에서 카메라와 노트북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이번 밤 손님에서 분명 노트북과 고급 카메라는 넘어갔을 것만 같았다.

노트북에 있어야 할 기록들은 스마트 폰에 안전하게 저장되어 있었고, 사진도 무사했다. 결국 2년 동안 작업을 한 끝에 최근 <민중의 집>을 펴낼 수 있게 됐다.

따지고 보면 스페인 도둑에게 감사할 일이다. 새옹지마라고 하더니, 당시 내게 엄청난 시련을 주었지만 결국 <민중의 집> 책 출판에 일등공신이 됐다.

[ 정경섭 (마포민중의집 공동대표, 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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