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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도입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 정치가 급진적이고 좌파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


고용 없는 성장, 성장 없는 거품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대표적 사태는 고용 없는 성장, 성장 없는 거품이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인정한다. 이른바 (과학)기술의 혁신과 발전은 생산력 수준을 최첨단으로 끌어올렸으며, 인간의 노동력은 갈수록 그 비중이 줄고 있다. 주요 자동차회사들의 1년 총 생산량은 5,000만 대 가량인데, 그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노동자와 노동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기술의 발전이 자본의 이윤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동 유연화, 금융화라는 과정을 만들었다. 고용 증가 없이도 경제성장이 가능한 신화적 체제를 만들었다. 이 과정은 거품을 일으킨다.

거품은, 성장할 수도 있으며 그 떡고물이 나에게도 떨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거품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며 더 부풀어버린다. 이 거품이 위험하다는 것을 예견한 금융자본은 위험(리스크)을 줄이고자 여러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었고 꼬리에 꼬리를 잇는 연결고리로 모든 신용(credit)이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신용의 정지’, ‘신용의 부(否)지급’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한 최후의 담보는 끊임없는 착취와 수탈을 통해 이 거품이 위험하지 않다고 거짓으로 선전하는 것뿐이다.

바닥을 향한 질주, 착취와 수탈

자본주의 기본 작동 원리인 노동력 착취에다가 각종 수탈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망한 기업과 금융회사에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재정 수탈, 건설자본 부양을 위해 실시한 4대강 ‘죽이기’ 사업과 같은 조세 수탈, 각종 대출이자와 모기지 및 주주 배당을 통해 이뤄지는 금융 수탈 등 다양한 수탈이 인간생활의 24시간을 지배한다.

이윤율 저하를 만회하고자 자본은 갈수록 본 모습을 드러낸다. 대자본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착취 구조가 강화될 뿐만 아니라 아예 대자본은 모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자그마한 이윤이라도 낼 수 있다면, 대자본이 무조건 그 시장에 뛰어드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바닥을 향한 질주는 노동과정을 또다시 유연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보편적 계급 형성 전략: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도입

이런 조건과 상황에서는 게임의 규칙 자체가 부당하고 불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 위해선 좌파의, 노동자의 정치가 필요하며 우리는 그것을 보편적 계급 형성 전략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보편적 계급으로 만드는 전략은 무엇인가? 좌파는 이 과제를 붙잡고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실체와 허상이 인간의 몸, 머리, 마음을 모조리 지배하는 이 시대에 노동자운동은 그 해답을 찾아 끊임없이 ‘모색과 실천’을 반복한다. 실용주의 노조, 전투적 노조, 단사 중심의 교섭 전략 등이 한 시대를 장식했고 사회적 노동자운동, 보편적 노동자운동이라는 당연히 옳은 말이 좌파에게 놓여있다.

노동자, 비정규 불안정노동자가 보편적 계급으로 형성되기 위해선 보편적 이해관계와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자운동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정답은 나와 있으며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오래된 과제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이 실제로 가능한 (돌이킬 수 없는) 조건을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한가

지난 글에서 던졌던 이 오래된 질문은 곰곰이 살펴보면 어리석은 질문이다. 단기적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에 비해 임금삭감이 적을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자본의 손실은 (언제나) 회복되었다. 막강한 산별노조 조직률을 자랑하던 자본주의 황금기 시대(1950~60년대)는 지속적 경제성장률과 자본의 이윤 보장, 소비자인 노동자의 구매력 보장을 위한 지속적 임금 상승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조차도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노동 유연화’를 통해 노동자와 노동자운동은 일방적 희생을 강요받았다.

고용 또는 임금노동 여부가 생존과 직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좌파와 노동자운동의 절대 과제다. 고용된 모든 노동자가 안정적 일자리와 적절한 작업시간을 갖는 것이 목표라면, 새로운 조건을 만드는 싸움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정규 불안정노동자 일반이 최소한의 생활을 누리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 노동시간 상한제 + 최저임금 인상 + 기본소득 도입

주5일 노동이 보편화됐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장시간 노동과 실업이 공존하는 기형적 상태다. 노동시간 단축이 실제로 가능해지려면 노동시간 상한제가 법제화되어야 한다. 하루 몇 시간, 일주일에 몇 시간 하는 식으로 명문화해 초과노동 자체가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평균소득에 근거한 (평균임금이 아닌) 기준 마련, 물가인상률과의 자동적 연동 등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불가피한 소득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 필자의 결론적 주장은 단순하다. 기본소득 도입 없는 노동시간 단축 정치는 급진적이지 않으며 좌파적이지도 않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 연결하기 그리고 비정규직 철폐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일자리를 의무적으로 만드는 것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충분히 쉬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노동시간 단축은 강제적이어야 한다. 복지 체험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기본소득 도입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 정치가 급진적이고 좌파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 노동시간 상한제와 최저임금 인상, 기본소득 도입은 연속적 과제이자 동시적 과제이며, 노동자를 보편적 계급으로 만드는 주요 전략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 정규직 쟁취라는 단순한 원상복귀가 아니라면, 노동시간 단축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는 개별 노동자의 힘 증가, 노동자 전체의 힘 증가로 이어진다.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시간 단축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물량 확보(장시간 노동)를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 정치가 필요하다.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노동시간 단축 정치.

[ 권문석 [기본소득위원회(준), 정책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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