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전국위원회를 마치고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
지난 토요일, 제11차 전국위원회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주요한 안건으로 “정당 등록의 건”과 “제18대 대선방침 승인의 건”이 의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전국위원회 전후의 다양한 토론과 의견의 표시, 전국위원회 당일의 논의 과정을 보면 19세기 프랑스의 어느 보수주의자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화산 지대를 걷고 있다.” 물론 급진적인 좌파인 우리는 안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든, 밖에서 분출하는 것이든 화산의 폭발, 마그마의 흘러넘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방향성 있는, 긍정적인 힘으로 흐르게 할 것인가입니다.
우선
이른바 정당 등록에 관한 것입니다. 전국위에서 우리는 창준위 활동 시한 내에 ‘진보신당연대회의’라는 당명으로, 기존 진보신당의 강령과 당헌으로,
조직적 변화 없이 법적인 정당 등록, 즉 창당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다른 좌파 세력, 노동계
세력 등과 함께 ‘진보좌파정당’을 건설하기로 했는데, 아직 이 부분이 마무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진보신당만의 내용적 변경을 통한 창당은
정치적으로나 예의상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창당’을 하기로 한 것은 대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 사실상 정당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진보신당에 적절한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근거 때문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다 아시는 것처럼 ‘창당’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창준위’ 내부에서 창당을 반대하는 건 어쩌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나, 아니면 창준위 자체가 잘못 만들어진 건 아닌가라는 의문을 들게 합니다. 하지만 짧게는 ‘독자-통합 논쟁’ 길게는 2008년의 진보신당 창당 때부터 내재한 문제가 정당 등록을 계기로 표현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진보신당이 여전히 ‘자기 형성의 도정’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위기의 시대에 좌파의 철저한 대안을 제출하고,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를 비롯해 ‘배제된 사람들’의 주체화를 통한 새로운 좌파 정당을 만들자는 견해에서부터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도 내에서 대중적으로 ‘진보’를 표상하는 통합진보당이 있는 한 현재 규모의 진보신당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으니, 빨리 다양한 수준의 연합을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는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등장한 새로운 노동 정치의 흐름과 함께 하는 게 관건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런 풍경을 항공사진으로 찍어보면 ‘착종’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복잡할 것입니다.
진보신당이 힘을 결집하는 게 중요하다
이럴 때 진보신당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중심을 잡고, 활동의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의 수렴이 전국위원회 결정과 같은 방식의 창당으로 귀결되었습니다. 현재 충분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진보신당을 좌파 정당의 주요한 기반으로 보고 내년 상반기까지 부족하나마 내적 혁신과 외적 소통을 지속하는 것을 통해 ‘자기 형성의 도정’을 마무리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정에 어느 정치 세력에게나 중요한 대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권력을 직접 담당하겠다는 세력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대선은 자신의 이념, 의제, 색깔을 드러내는, 드러내야만 하는 정치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를 전 조직적으로 충분히 준비하고 실행할 때만 가능한 큰일입니다. 지난 번 대선 관련 기자회견과 이번 전국위원회에서 결정된 대선방침에 따르면 우리는 이번 대선을 통해 내년 상반기까지 건설될 ‘진보좌파정당’의 의제를 분명히 제출할 뿐만 아니라 후보 자체를 대중적인 사회연대의 과정으로 선출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세력과는 물론이고 기존의 낡은 진보와도 구분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을 알리고자 합니다.
이런 목표 속에서 이 과정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하는 진보신당이 잘 정돈되고, 힘을 결집하는 게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일 것입니다. 이에 저는 대중정당이, 특히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합당이라는 과정을 거쳤고, 총선으로 인해 등록이 취소된 현재의 진보신당의 경우 대표단 선거를 비롯해 각급 선거를 치르는 것이 정돈과 결집을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이자 경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난점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세력과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함께 하려는 진보신당이 당내 선거를 치러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우선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과연 당내 선거가 기술적, 조직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논의를 할 당시 물리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선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내적인 의견 통일이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큰 일, 대선을 제대로 하자는 의견으로 뜻을 모았던 것입니다.
오로지, 좌파의 결집과 새로운 출현을 고지할 대선을 위해
이렇게 글로 쓰자니 간단치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변명할 생각은 아니지만 이게 앞서 말한 ‘자기 형성의 도정’에 있는 우리의 처지라는 생각입니다. 비록 뜻은 크나 지금의 힘은 미약하고, 새로운 방향은 잡았으나 낡은 힘은 안팎에서 여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의 결집과 새로운 출현을 고지할 대선을 위해 중요한 많은 것을 생략하거나 미룬 것이 이번 전국위원회 결정입니다. 이것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대선의 결과가 말해줄 것입니다. 물론 이 대선을 ‘배제된 사람들’의 대표를 중심으로 잘 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린다 하더라도 한 가지 남는 문제는 있습니다. 그건 당명에 관한 것입니다. 이번 대선을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신자유주의 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낡은 진보와도 구별되는 좌파 세력의 출현을 알리는 계기라고 볼 때 진보신당이라는, 통합진보당과 대중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의 전제로 이번 대선을 사회연대 후보로 치른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진보신당이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습니다. 맞는 말씀들입니다. 이미지로서의 이름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명료한 것이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대선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지금의 진보신당이 큰 몫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사회연대 후보를 우리가 지향하는 좌파의 이름으로 출마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연대는 주로 후보가 형성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며, 거기에는 아직 이념으로서의 이미지와 색깔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사회연대라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 후보가 좌파의 의제를 분명히 할 경우, 우리는 이를 준거점으로 해서 대선 이후 진보좌파정당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전국위원회 결정으로 돌아가, 진보신당연대회의로의 창당과 대선에 집중하자는 우리의 결정이 여러 가지 면에서, 여러 시선에서 충분하거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된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조건 속에서 낡은 진보와 구분되며, 다가올 파국의 시대를 감당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진보신당을 통해 새로운 좌파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이런 결정이 나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하반기 우리의 주요한 두 사업, 즉 진보좌파정당 건설과 대선이 대선이라는 하나의 계기로 모였습니다. 여기가 로도스 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뛰어야 하는 것은 바로 진보신당에 모여 있는 우리입니다.
공동 대표 안효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