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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

- [들꽃, 공단에 피다]를 읽고

 

노동당 대구시당 위원장 최창진

 

이 책은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고 세상이 바뀔 것만 같던 시기에 높은 광고탑에 올라간 오수일 동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새롭게 들어설 정권에 의해 세상이 바뀔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광고탑 위에서 비정규 불안정노동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후보는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광고탑 위의 투쟁은 세상과 언론의 관심 밖이었고 그런 일에 대통령 후보들도 관심을 가질 리 만무했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바뀔 것을 기다리기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직접 행동했다.

 

짧은 휴식시간, 힘든 노동강도, 한 달에 고작 하루 쉴 정도의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임금체계.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비인간화되어가던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간다움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20155, 세상을 바꾸는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아사히글라스에 들어갔다고 하는 차헌호 동지의 주도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깃발이 세워졌다. 2주 만에 138명의 노동자가 함께했고, 이 들꽃들은 단단한 아스팔트를 뚫고 당당하게 피어났다.

 

들꽃이 되려고 들꽃으로 피어나지 않았듯, 비정규직이기 되기 위해 비정규직인 노동자도 없다. 자본이 자유롭고 부담 없이 노동을 이용하기 위해 일자리란 일자리는 모두 비정규직으로만 고용하고 있는 현실을 최진석 동지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 온통 들꽃만이 피어나고 있었고, 아사히글라스의 들꽃들은 투쟁을 시작하며 다른 들꽃과 뿌리에서부터 깊이 서로를 단단히 묶어내었다.

 

자본은 피어난 들꽃을 짓밟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을 설립한 지 한 달 만에 해고통지를 받은 것이다. 들꽃은 들꽃이라서 짓밟히고 꺾이지만, 또 들꽃이라서 다시 일어선다. 뿌리가 단단하기 때문일 거다. 어떤 들꽃(이영민 동지)은 노래로, 어떤 들꽃(장명주 동지)은 몸짓으로, 어떤 들꽃(조리담당 짬장 동지)는 영양분으로, 어떤 들꽃(조남달 동지)은 이발로 옆에 있는 들꽃에 힘을 준다. 이렇게 단단하게 뿌리내린 한 무리의 들꽃은 이제 다른 무리의 들꽃에 힘을 준다. 처음 뿌리내릴 때 다른 무리의 들꽃에게서 받은 힘을 또 다른 무리의 들꽃에 준다.

 

해고된 후 노조설립 100일 되던 날 아사히 공장 앞에서 전국의 사내하청노동자들과 함께 비정규직 철폐 운동의 승리와 아사히 투쟁의 승리를 염원하는 집회를 열어 아사히 동지들에게 든든한 연대세력이 있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고, 아사히 동지들은 다시 울산(이명재 동지의 이야기)으로, 일본(민동기 동지의 이야기)으로 또 다른 들꽃들의 사업장으로 연대했다. 힘차게 싸우는 다른 들꽃들과의 공동투쟁을 만들어갔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면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투쟁했다.

 

들꽃도 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꽃은 장식일 뿐이고, 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자인지는 잘 모르겠다. 차헌호 동지의 말처럼 대공장 중심의 정규직 노조운동은 먹을 것과 지킬 것이 많아지면서 노동자계급으로서의 의식과 투쟁 정신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반면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된 후 자본과 맞선 가장 선두에서 강한 계급의식과 투쟁 정신을 가진 진정한 노동자가 되었다. 노동조합을 알기 전 사회가 요구하는 약육강식 체제에 익숙하고 알 수 없는 분노로 가득했던 안진석 동지가 노동조합을 알고 나서 노동자에게 소외와 비인간화를 강요하는 이 사회의 구조가 분노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기 삶의 주체가 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노동자가 노동자 운동을 통해 삶의 주인이자 세상을 바꾸는 역사의 주인으로서 진정한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이 동지의 이야기는 아주 인상 깊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중노위에서의 부당노동행위 판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일터로 돌아가는 일은 멀어 보인다. 우리는 이 동지들의 복귀가 멀어 보이는 이유를 아사히 자본의 태도보다는 노동자 운동과 우리에 대한 성찰에서 찾아야 한다.


* 이 글은 노동당 노동위원회 소식지 2017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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