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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은 선거제도를 공정하게 개혁함으로써 기득권 정치를 바꾸기 위한 공동대응에 합의한 녹색당, 민중당 등과 연석회의를 꾸리고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개혁 등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동당 당원인 박노자 교수가 정치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글을 한겨레신문에 기고했기에 이를 옮겨봅니다. 원래 글의 주소는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9780.html입니다.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정치의 민중화부터!


직업적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의 거리가 먼 근원적 이유는, 한국의 주류 정치가 여전히 ‘위로부터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중들이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만한 동료들에게 정치권력을 위촉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정치엘리트들이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동원하는 방식이다.


노르웨이 국회에는 다양한 비주류 정당들이 있다. 전체 169석 중 29석을 진보적 소수 정당들이 차지한다. 소수정당과 경쟁을 실감하기에 거대 중도좌파 정당인 노동당도 ‘밑’의 이해관계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적어도 국회를 돈 많은 부촌 아저씨들의 놀이터로 만들지는 못한다.


 

한국의 수많은 이율배반 중 하나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상당히 자기모순적 태도다. 일면으로는 공적인 정치란 대다수의 깊은 불신만 살 뿐이다. 한국의 택시에서 정치인에 대한 험담•욕설은 많은 경우 가장 인기있는 화제로 등장한다. 개별적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차원을 넘어 정치영역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 된다. 작년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7%가 정치인이라는 부류를 사리사욕을 위해 움직이는 무리로 보며, 73%가 정치인의 말을 믿는 것이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사이의 정부 신뢰도도 34% 정도밖에 안 되지만, 국회의원 등 정치영역에 대한 신뢰는 행정부만도 못하다. 한국에 가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많은 한국인들에게 정치인이란 ‘성공한 사기꾼’에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정치인이란 그저 지대추구적 행동만 일삼는 행위자일 뿐이다.


하지만 또 일면으로는 본인이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인이라면 예외라고 생각하면서 거의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속칭 ‘빠’ 현상이라고 한다. 가끔 특정 정치인의 열성 지지자들과 논쟁할 때, 상대방이 본인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무오류성을 믿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할 정도다. 민주화의 수준에 큰 차이는 있지만, 정치와 정치인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한국과 러시아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러시아에서도 국회의원 등을 “운 좋게 형벌을 피해 성공한 범죄자”로 보는 시각은 일반적이지만 본인이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딱 한 명의 정치인만큼은 맹신하는 듯한 태도가 눈에 띈다. 단, 한국과 달리 다수가 열광하는 정치인은 러시아에서는 복수가 아닌 단수, 딱 푸틴 대통령 한 명이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본인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자신을 완전하게 일치시키려는 듯한 맹종은, 궁극적으로 전통사회에서 ‘문중 어르신’, ‘나라님’, ‘스승님’ 등 ‘군사부’(君師父)에 대한 태도를 방불케 한다. 당시는 개인이 소속집단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한 점의 회의 없는 ‘맹신’은 당연했다. 이러한 전통사회가 이미 까마득한 기억이 된 지금에 와서도 그런 태도가 종종 나타나는 이유는, 극단적 원자화가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시대의 많은 개인들이 ‘소속’을 간절히 요구해서다. 이들은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상의 공동체’들을 조직하곤 한다.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은, 독재 시절 국가에 대한 민중의 소외로부터 비롯됐다. 군사독재 시절의 어용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도 야당의 지도자들도 실제 풀뿌리 민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계급 소속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정서’나 ‘지역개발에 대한 약속’ 같은 방식이 아니면 정치인은 지지를 호소하기가 힘들었다. 애당초부터 그와 유권자 사이의 벽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여야가 이제 정치적 위치를 서로 바꾸는 등 제도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엄청나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지금도 그 사회•경제적 신분상 평균적 유권자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은 약 41억원이지만, 한국의 가구당 평균 재산은 3억6천만원에 불과하다. 즉, 국회의원은 그를 뽑은 유권자보다 평균적으로 약 11배나 더 부자인 셈이다. 다수의 흙수저들이 국회에 들어간 소수의 금수저들을 냉소적으로 본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물론 정당별로 보면 약간씩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국민의당 의원의 평균 자산이 60억원이라면 더불어민주당의 경우에는 36억6천만원 정도다. 유권자들의 평균 자산과 엇비슷한 자산 보유의 현황을, 오로지 정의당 의원(3억7천만원)만이 보여준다. 하지만 국회에서 그들은 불과 6명이다.


재산만 그런가? 한국 국회의원들 중에서 고졸은 거의 없고, 절반 이상은 아예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물론 한국은 세계에서 전체 인구의 학력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30살 이상의 성인 인구에서 대졸자 비율은 아직 40%에 불과하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가방끈 긴 의원이, 가난해서 대학 문턱도 가기 어려웠던 유권자를 어디까지 대변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노동인구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은 서비스업 종사자, 영세자영업자, 그리고 제조업 근로자다. 그러나 이 직군의 일선 담당자들을 국회에서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변호사 출신 의원만 16명이나 있어도 말이다.


직업적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의 거리가 먼 근원적 이유는, 한국의 주류 정치가 여전히 ‘위로부터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중들이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만한 동료들에게 정치권력을 위촉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정치엘리트들이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동원하는 방식이다. 흙수저들은 이 동원의 주체가 아닌 대상물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 같으면 해당 지역 ‘유지급 인물’이거나 그 지원을 받는 사람이 나가는 경우가 많고, 전국구 비례대표라 하더라도 공천을 받을 만한 명망이나 네트워크 등을 가진 유산층 ‘인사’가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한국의 전형적인 국회의원이란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속칭 ‘명문대’ 출신의 40~50대 남성이다. 지금도 서울대를 졸업한 국회의원의 비율이 20%를 넘는데, 15년 전 같으면 아예 48%나 됐다. 하나의 대학을 이렇게도 많은 국회의원들이 졸업하는 건, 세계사에서 전례를 찾기도 힘들다. 한데 여성 의원의 비율은 여전히 17%에 불과하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인데 말이다. 20~30대들은 겨우 3명뿐이다. 서울대 등 ‘명문대’와 인연이 없는 젊은 흙수저들이, 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려고 온 돈 많고 ‘지체 높은’ 분을 왜 하필이면 신뢰해야 하는가?


유형적으로 보면 오늘날 한국 의회정치는 미국과 흡사하다. 미국에서도 절반 정도가 100만달러(한화 약 10억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부호들이 국회 양원을 메우고, 뉘앙스가 달라도 대기업 이해관계의 표방에서 별 차이 없는 거대 주류 정당들이 정치 무대를 독점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치나 정부에 대한 불신은 당연하다. 그나마 민초들이 정치인들을 믿을 수 있는 나라들은, 대체로 풀뿌리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비주류, 소수, 민중 정당들이 정치에서 보다 큰 몫을 차지하는 곳들이다.


내각제 국가인 노르웨이에서는 의회와 내각에 대한 신뢰도가 70%에 이르러 한국이나 미국보다 두배나 되는데, 노르웨이 국회에는 다양한 비주류 정당들이 대표를 보낼 수 있다. 전체 169석 중에서 29석을 진보적 경향의 소수 정당들이 차지한다(좌파당, 사회주의 좌파당, 녹색당, 그리고 농민의 당인 중도당). 소수정당과 경쟁을 실감하기에 거대 중도좌파 정당인 노동당도 ‘밑’의 이해관계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급진주의와 경쟁을 의식하는 만큼 적어도 국회를 돈 많은 부촌 아저씨들의 놀이터로 만들지는 못한다. 의원의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고 전체 평균 연령은 46살이지만, 약 4분의 1은 20~30대들이다. 내가 재직하는 대학의 학부생 중에도 국회의원이 있다. 그리고 절반이 대졸이긴 하지만, 고졸 출신으로 육체노동을 하다 노조활동을 통해 결국 정치인이 된 사람도 상당수 있다. 이 정도면 적어도 정치에 대한 극단적 불신과 혐오라도 면할 수 있다.


좋은 자본주의라는 건 없고, 그 어떤 자본주의적 정치체제도 궁극적으로 총자본의 지배를 뒷받침해준다. 그래도 북유럽처럼 선거제가 완전히 정당명부투표로 바뀌어 사표심리가 설 자리가 사라지고 민중정당들의 당세가 확충되면 적어도 오늘과 같은 민중과 정치 사이의 괴리라도 약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헬조선이 살만한 나라가 되자면 정치의 민중화, 정치 참여의 대중화•일상화야말로 그 이상으로 가는 첩경일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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