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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 것과 사실이 아닌 것

지난해 SBS 작가에게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 위원이시죠?” “노무사 관련 드라마를 제작 중인데요. 도움을 요청 드리려고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수차례 전화통화와 이메일 교정 등이 이뤄졌고, 마침내 이번 설날특집 2부작 드라마로 방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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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rogram.sbs.co.kr/builder/programMainList.do?pgm_id=22000004724


몇가지 단편적인 부분만 조언을 해줬고,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실제 행정기관에서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는다고 조언을 해준 적도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가 어떤지는 알지 못했다. 평소에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직업인 ‘노무사’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내가 조언한 부분이 있으니 한 번 봐야겠다 싶었다. 

대략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직장상사의 비위행위를 발견하고 시정을 요구하자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던 영업직으로 밀려나고, 영업직으로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그 교통사고가 과로사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을 회사가 은폐하려고 한다. 노동자의 배우자가 노무사를 선임하지만 그 노무사는 회사의 회유에 갈등하다가 노동자의 편으로 다시 돌아서고 구체적인 증거를 찾고, 증인을 섭외하여 과로사, 산재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찾아보니 SBS 드라마에서는 줄거리를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이놈]은 죽은 자의 ‘목숨 값’을 받아내던 생계형 속물 노무사가 망자의 ‘인생 값’을 찾아주는 진짜 노무사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노무사: 노동과 관련된 법률 및 경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직) - 이혼 소송 중이고 하나뿐인 아들 얼굴도 잘 볼 수 없는 노무사 재구가 어느 날 맡게된 사건. 태수의 목숨 값은 돈 몇 푼으로 판단될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살아온 한 남자의 인생에 대한 증명이다. 이재구 노무사의 고군분투를 통해, 치열한 현실 속에서 치이고 견디며 내딛어온 이 시대 아버지들의 발자취야말로 우리가 기억해야할 소중한 역사이자 명예임을 말하고 싶었다.”

‘생계형 속물 노무사’는 무엇이고, ‘진짜 노무사’는 무엇인가? ‘목숨 값’은 무엇이고, ‘인생 값’은 무엇인가? 나는 노동법을 가지고 노동자를 위해 일을 하는 노무사가 ‘진짜 노무사’이고, 거짓, 은폐가 아닌 진실을 찾아서 쟁취한 대가가 ‘인생 값’이지 않을까 얼핏 생각이 든다. 하지만 칼로 무를 베듯이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는 일들이 수없이 많고, 중간에 절충을 하는 경우도 많은 현실에서 무엇이 답일지 고민을 하게 된다. 

아내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노무사’가 법률전문가가 라기 보다는 ‘탐정’같네”라고 얘기를 했는데,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숨겨진 또는 숨기는 사건에서 유리한 증거와 증인을 찾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고, 처음에는 설령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후에 이기려면 처음의 사실관계, 증거, 증인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사실인 것들과 사실이 아닌 것이 섞여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인 것은 첫째 실제로 이 드라마의 노동자처럼 회사내의 부당한 노동관행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회사의 비리를 알게 됐다는 이유, 구조조정을 준비하는 이유 등으로 전직을 시키고,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경우처럼 묵묵히 그것을 따르는 노동자들이 대다수이고, 그 노동자들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나라가 이 드라마에서처럼 과로사가 너무나 많은 사회라는 것이다. 뇌출혈, 심근경색 등 과로질환은 사망 아니면 중증질환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앗아가거나 장애를 갖게하고, 한 가족을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게 만든다. 이것은 세계 노동시간1위 장시간 노동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현실이다. 

셋째는 이 드라마에서처럼 회사는 산재를 은폐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4대보험 중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것이고, 산재법에는 ‘회사의 조력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허울뿐이다. 과로처럼 주관적인 부분이 개입되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상 사고에 대해서도 은폐하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산재은폐 속에서도 산재사망 세계1위라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인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은 첫째 증거자료, 제보자들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지, 실제로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망한 노동자의 회사 책상의 다이어리를 보고, 행선지를 찾고, 그 근처에 핸드폰을 떨어뜨렸고, 동료노동자들 중 일부가 도움을 주는 일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함께 도와주고, 증거를 구해주는 회사와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망인의 가장 절친이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나도 먹고살아야지’, ‘회사에 매인 몸이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상당했고, 그래서 수차례 쏘아붙여서 설득한 적도, 어르고 달랬던 적도 있지만 결국은 망연자실했던 적이 휠씬 많다. 

두 번째는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 산재 재심사위원회의 구술심리가 꼼꼼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조언을 했던 부분인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위원들 숫자도, 테이블 배치도, 말하는 뉘앙스와 풍기는 분위기 모두 사실이 아니다. 현실은 ‘드라마’틱한 구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노무사가 강하게 주장을 하고, 위원들도 이해를 하는 듯이 이야기도 하고, 한참의 시간동안 공방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하시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해보세요’, ‘네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정도가 대부분이다. 단편적인 질문을 위원 중 1, 2인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질문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충분히 노동자들이 주장할 시간 조차 주어지지 않고, 충분한 공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회의 분위기라는 것이다. 내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들어와서 문제제기를 하기 전까지는 노동자들이 낸 전체자료도 위원들에게 미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전문적인 위원들이 노력을 하고, 민주노총 추천 업무상 질병판정위원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개선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좋은 것은 사실이 아니고, 안 좋은 것만 사실로 보여지는 현실, 이것이 우리 노동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노무가의 내적갈등도 드러난 드라마에서 나 또한 다시 한번 내적갈등을 해봤다. 그리고 수없이 스쳐지나갔던 과로질환의 노동자들의 모습이 기억나고, 이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외쳤던 절규도 생각 난다. <인생 추적자 최승현>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고있나~~

[ 최승현 (노동당 부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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