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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명절 연휴 바로 전날이었다.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지인이 일을 하다 뜨거운 물에 데었다는 것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접했다. 일단 알고 있는 노동법 지식을 활용해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서 산재 신청하면 되니 큰 걱정 하지 말라"고 얘기해 줬다.


하지만 뒤에 들어보니 찬물로 덴 부분을 씻어 내기만 했을 뿐이란다. 화상을 입고도 그날 일을 마칠 때까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고 한다. 너무 아파서 다음날 새벽에서야 응급실에 가게 됐다는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화상을 입었고, 흉터가 적지 않게 있다.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걱정과 빨리 치료했어야 했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머리를 스쳐 갔다.


지인은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취하고 고통 때문에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려워서 산재 신청을 한다고 사장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 입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가 나왔다.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장은 산재 신청도 날인해 주지 않았다. "버릇없는 아이", "가게에 민폐를 끼쳤다"며 일하다 다친 노동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질타했고, 해고로 보복했다.


사업주 날인 없이 산재 신청이 가능하다고 알려줬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결국 날인 없이 산재를 신청하고, 사실관계가 확인돼 지난주 산재를 인정받았다. 산재 인정 문자를 받고 요양비 청구서와 휴업급여 청구서를 뽑아 주면서 신청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며칠 뒤 요양비와 휴업급여를 받아서 고맙다는 문자를 받았다.


20대 초반, 사회생활과 학업을 같이하면서 느끼는 ‘노동’의 세계는 엄혹하다. 인격적 모독의 정도가 심하고 ‘노동의 권리’는 책 속에만 있다. 지인이 해고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아직 모른다. 일하다 다친 것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책임지는 것이 맞지만 그것을 인정받기가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일을 옆에서 조언하면서 법과 현실이 멀리 있고, 특히 알바 노동자들에게 멀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로 벌어질 텐데, 그냥 넘어가는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1993년 4월 태국 인형공장에서 불이 났는데, 노동자가 인형을 훔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밖에서 문을 잠근 탓에 188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제 노동계가 산재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려고 지정한 날이다.


산재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한국에서 올해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고, 기업살인법 제정을 촉구하는 운동이 벌어진다. 매년 진행되는 추모가 산재사망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와 용광로 참사, 현대중공업·현대제철의 산재를 비롯해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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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4월28일 알바노조에서 진행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알바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커피전문점 화상 사례에서 드러나듯 알바에게 산재는 그리 멀리 있는 일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다 기름에 데고, 화기에 덴 노동자 사례가 여럿 나온다고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주의를 기울일 수 없는 상태, 안전상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상태가 반복되지만 큰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눈감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작은 사고들이 쌓이고 쌓여 큰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문을 잠그는 것에 항의하지 못해 발생한 태국 인형공장의 참혹한 비극과 비인격적인 대우로 다치고도 말 못하는 알바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대기업부터 작은 사업장 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업살인법 제정과 패스트푸드점 알바 노동자 특별산업안전 근로감독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안전하게 일하는 일터, 그 작은 바람이 이뤄지길 바란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 최승현 노동당부대표(노무법인 삶 노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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