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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꿈은 ‘진보정당의 관료’입니다. 제가 늘 “관료가 뭐냐? 고리타분하게”라며 놀리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정책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기본소득 운동을 하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하면서, 알바연대 활동을 하면서 언제나 최고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올해 초 기본소득과 알바노동자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해서 당신이 쓰면 내가 꼭 편집해줄게 라며 응원하고 지지했습니다. 저랑 남편은 우리 둘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난처럼 이야기하며 언제나 ‘안 되면 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스무살 이후 한결같이 진보운동, 진보정당운동을 위해 일을 해왔고 이제 물이 올라 한창 하고 싶었던 일이 많았던 그의 꿈을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하나씩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남편이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강서희, ‘권문석 가는 길’ 중에서(2013년 6월 3일 영결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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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시작


“최저임금 1만원? 당신부터 최저임금 1만원 받아오면 안 돼?”


시민단체가, 사회운동이 무엇인지 알았던 나였지만, 남편이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는 알바연대에서 일하겠다고 하는 순간 나는 웃으며 물었다. 바가지를 긁으며, 그런 운동하기 전에 우리집의 생계를 책임지라며 집에서 시위를 벌였다.


남편은 ‘알바연대’ 일을 시작하자마자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저녁이 되어서 들어왔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회의나 야간캠페인, 강의가 잡혀있었고, 알바연대가 점점 잘 나갈수록 같이 밥 먹을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일정이 없는 날이면 집에 들어와 수다를 떨며 밥을 먹었고, 아이 목욕을 시켰다. 아이가 잠든 후에는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피파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TV 앞에서 각종 스포츠 중계와 드라마를 즐겼다.


2013년은 육아휴직을 하고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던 해였는데, 집에만 있었던 나는 온종일 남편이 집에 돌아오기만 기다렸었다. 남편이 집에 도착하면 나는 ‘말문이 터지곤’ 했다. 말없이 지냈던 하루의 적막을 깨듯이 말이다.


그의 전화는 집에서 꽤나 자주 울렸다. 자고 있을 때는 절대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그였지만, 자고 있지 않을 때는 매우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기자들의 주목을 많이 받아왔던 터라, 그는 전화로 걸려오는 모르는 번호도 늘 반가워했다. 그리고 퇴근해서는 꼭 ‘알바연대’와 ‘기본소득’을 검색창에 입력해, 오늘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확인했다.


2013년 5월 1일, 첫 알바데이를 하고 술에 취해 새벽에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기자들이 많이 왔다”며 “기분이 좋아 사람들하고 2차까지 하고 들어왔다”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손에는 20만원 짜리 술값 영수증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그래도 되지?”라고 물었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남편이, 권문석이 홀연 떠나버렸다. 2013년 6월 2일, 바로 2년 전의 일이다.

 

출판사 디자이너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로


육아휴직을 마치고, 나는 일하던 곳을 관두었다. ‘싱글맘’으로 살며 일하기에는 사무실이 너무 멀어졌다. 퇴사를 하고 새로 일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알바연대’였다. 나는 그 곳에서 알바연대/알바노조의 홍보팀장을 맡게 되었다. 알바연대 대변인이었던 권문석이 세상을 뜨고 6개월만의 일이었다.


주로 내가 맡은 업무는 다양한 홍보 업무이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소식지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몇 번의 소식지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정기적이지 않았다. 소식을 알리고, 다양한 인쇄물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신문에 알바노조 단체 아이디를 만들고, 글을 송고하기 시작했다. 기자회견에 다녀와서 글을 썼고, 조합원들과 함께 연재기사를 만들었다. 알바노조에서 준비하는 수많은 행사의 포스터와 홍보물을 디자인했다. 언젠가 권문석과 침대에 누워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기본소득과 아르바이트 노동에 대한 글을 써야겠어. 알바 노동자들의 글을 받아서 엮은 책을 내는 것도 좋겠지?”
“그러면 당신이 책을 쓰고, 내가 디자인을 하면 되겠다.”


권문석의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나는 그 일을 하게 된 셈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편씩 글을 쓰거나 고쳐댔다. 나는 권문석과 달라, 직접 글을 쓰는 일을 했다. 대변인이었던 권문석은 매일 ‘알바연대’를 검색하면서 ‘아르바이트생(알바생)’이라고 기사를 쓴 기자에게 ‘아르바이트 노동자(알바노동자)’라고 수정요청을 했지만, 나는 그처럼 꼼꼼하지 않아 이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알바노조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물은 적은 없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죽은 남편이 일하던 곳에서 일하는 것 괜찮아요?’ 권문석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역할을 대신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가 활동하던 단체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 나는 아무렇지 않다. 대신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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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달다, 최저임금 1만원!


혜리가 취업포털 사이트 광고에서 2015년 ‘370원이 오른 최저임금 5580원’을 이야기했던 것은 기억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했던 알바연대 대변인인 故 권문석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권문석이 세상을 뜨고, 그해 6월은 뜨거웠다. 당시 서울 학동사거리에의 최저임금위원회 앞 ‘최저임금 1만원’ 농성과 집회가 연일 계속되었고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처우에 대해 보도는 계속되었다. 같은 해 8월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가 설립되었고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매년 계속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2년이 되는 지금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면서 이 의제는 날개를 달았다. 노동당에서도 최저임금1만원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최저임금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권문석의 2주기 추모제의 사전행사로 국민투표 선포식을 가졌다. 이제 ‘최저임금 1만원’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님이 분명하다.


사회운동가 고 권문석 동지 2주기 추모제 ‘권문석의 이름으로 최저임금 1만원’이 지난 5월 31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나는 ‘권문석이 살아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이 보편적인 의제가 된 지금을 좋아했을까? 아니면 더욱더 초췌한 얼굴로 퇴근해서는 ‘피곤하다’며 나에게 하소연했을까? 오늘도 권문석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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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노조



故 권문석 당원 약력

1978년 2월 5일 출생
1999년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 집행부
2001년 전국학생회협의회 정책국장
2002년 사회당 정치연수원 간부학교 수료, 16대 대선 전국유세단
2003년 전국학생투쟁위원회 집행국
2004년 ~ 2006년 병역특례
2007년 17대 대선 정치실천단
사회당 청년위원회 사무국장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2009년 ~ 2010년 사회당 기획위원장
2009년 ~ 2012년 사회당 기본소득위원장, 대외협력국장
2012년 진보신당 전국위원, 비상임 정책위원, 기본소득위원회(준)위원장
2013년 ~ 알바연대 대변인, 진보신당 서울시당 대의원,
진보신당 은평당협 운영위원



[강서희(노동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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