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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유니온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어 이거 뭔가 신선한데. 사람들 주목을 좀 받을 거 같다.’는 정도였고 한 번 더 들었을 땐, ‘뭐라도 도움을 좀 주고 싶은데.’였다. 그래서 고작 하는 일이라곤 어쩌다 공연 한 번 가고 페이스북에 좋아요 눌러주는 게 전부였다. 뮤지션 유니온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울림이 깊었다. 뮤지션 유니온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도 몇 년 된 듯한데 몇 년이란 단어로 퉁치고 마는 그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2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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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이 만든 밀크뮤직 앱은 스트리밍이 무료다. 스마트폰 판매를 늘리기 위해 택한 전략. 

삼성에 저항하며 버스킹 캠페인을 진행중인 정문식 당원


나 : 지금은 [여섯 개의 달]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마포당협 모임에서 좀 더 개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다양하게 하고 싶었다면서 <작은 방>이란 노래를 불렀다. 이전 노래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좀 말랑말랑하다고 해야 하나? 그 사이에 음악적 취향이나 해석에 변화가 생긴 것인가?


정문식 : 취향에 대한 변화라기보다는 밴드도 오래 하다 보니 밴드의존성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기본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싱어 송 라이터 정체성이 있는데 너무 밴드에 의존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해보고 싶은 다양한 음악 하고 싶다 그런 생각에서 밴드를 밀쳐놓고 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됐다. 

[여섯 개의 달]이란 밴드는 나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은 세션으로 결합하는 형태였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성격이 조금 달라졌다. 그 이전에 나와 다른 멤버의 역할이 8 : 2 정도였다면 지금은 6 : 4 정도 된다. 그 이전에 [더:문]할 때는 똑같이 사등분되어 있었고.  지금은 장르 구분도 너무 규정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더:문] 할 때는 모든지 너무 심각했다. 연주도 잘해야 하고, 멋있어야 하고, 가사도 심각해야 하고, 노래도 어렵게 만들고 그랬는데 그렇게 너무 오래하니까 피곤해지더라. [여섯 개의 달]은 웬만하면 어렵게 안 만들고 같이 즐길 수 있게 쉽게 가려고 한다.  


나 : 가사도 그런 느낌이 든다. 이전에는 외부로 질러댔다면 <작은 방>은 자기 내면의 이야기에 치중한 느낌이 들었다. 멘탈 자체가 부드러워진 건가?


정문식 :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욕심을 버린 것이다. 음악으로 잘될 수 있다는 욕심. 젊었을 때는 되게 잘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참 했었다. 자연스럽게 40대가 넘어가면서 밴드도 이미 에너지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밴드 [더:문]이 문 닫은 게 2012년인가 그런데 6년 만에 새 앨범 준비할 때 멤버들 사이에 분란 일어나면서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그냥 밴드하지 말고 혼자 곡 써서 하자 그렇게 마음 먹고 간간히 [여섯 개의 달]로 활동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2013년도에 영국에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가서 롤링스톤즈를 봤다. 할아버지가 다 되었는데 근데 너무 멋있는 거야. 연주를 되게 잘 하는 것도 아닌데. 아 저런 록 스타는 유전자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거구나. 뭔가 타고나는 게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맘이 편해지더라. 그러고 나서 그 뒤로 한국 돌아와서 [여섯 개의 달] 멤버들이 2명이 바뀌었다. 편하게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고 그 때 구성한 멤버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유명한 스타가 되고 싶다, 상을 받고 싶다, 이런 생각은 더 이상 없다. 공연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할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한다. 앨범 내면 발매공연 정도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07년도 대중음악상 후보에 올랐었는데 그 때는 상 못 타서 한 동안 속상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거기 올라간 정도면 꽤 잘 한 거란 생각이 들더라. 이비에스 공감에서도 공연해봤고 중국 MIDI록페스티벌에 참여도 했었고 텍사스 록페스티벌 초청도 받았었고 이 정도면 됐다 싶다. 앞으로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길게 오래할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런 생각.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음악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나 : 그럼 이제 정말 편해진 것인가?


정문식 : 말로는 다 괜찮다고 하지만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더 잘 나갈 수 있는데,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어쩌겠나. 그러다가 몇 시에 회의 있고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가 가고 그러는데. 


그러고 보니 처음 볼 때 그냥 강한 인상이라고만 느껴졌던 얼굴이 달라보인다. 확실히 이 사람은 불의 기운이 강한 사람인데 우여곡절을 겪으며 봉인된 불씨가 얼굴에 새로운 지형을 그린 게 아닐지. 깊어진 눈가의 주름,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어제끼는 너털웃음, 적당히 거칠어보이는 길이의 수염. 

마지막으로 내가 이 인터뷰를 하면서 항상 기대하는 시간이 왔다. 뮤지션으로 유니온 활동가로 수 많은 인터뷰를 해왔겠지만 매체를 통해 당에 대한 이야기를 듣을 기회는 많지 않다. 그가 당원이라는 사실만으로 그의 활동을 통해 마치 당이 무언가를 한 것처럼 뿌듯해하지만 정작 한 명의 당원으로 그의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전국위원이 되고 인터뷰를 요청하면 이렇게 일대일로 대면할 수 있다는 것. 좋다. 

 

나 : 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입당은 언제쯤 하게 되었나? 


정문식 : 늘 관심은 가지고 있었다. 민노당 만들어질 때부터 관심은 있었다. 그 때는 당원은 아니었고 관심만 있었는데 진보신당이 창당했을 땐 가입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대학생 때 내가 다니던 경제학과가 한강 이남 피디의 본산이었다. 정치경제학이 정식 커리큘럼에 들어가는 전국 5개 대학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과의 기풍도 비슷했다. 정식 커리큘럼으로 맑스경제학을 배울 뿐만 아니라 학회도 죄다 좌파고. 잉여가치, 고정자본/가변자본, 생산수단, 이런 말을 학과 수업에서 배웠다. 딱히 학생운동 하는 사람들하고 다닌 건 아니었어도 기본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 음악하면서 잊고 있다가 노무현을 찍었었는데 에프티에이 추친하는 거 보고 지지를 접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민노당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런데 민노당 내 다수파였던 민족주의(NL) 진영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가입은 하지 않았다. 패권주의도 싫었고 가슴으로만 정치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에 대한 태도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08년도에 마포 에프엠에서 프로그램 진행할 때 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 쪽이었다. 나한테도 입당 제안이 들어왔는데 대놓고 진보신당 지지자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그 쪽으로 기울었다. 


나 : 그 뒤로 당이 지나 온 과정을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정문식 : 독자, 통합 논쟁으로 시끄럽다가 2012년 대선 때 진보진영에서 김순자, 김소연 나오는 거 보면서 진짜 너무 이해가 안 갔다. 아니 이게 무슨 대학 동아리 선거도 아니고 대선인데 힘을 합쳐도 시원찮을 판에 너무한다 싶었다. 어차피 진보정치도 정치인 이상 당시 사태는 너무 정치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였다. 결국 문재인을 찍었다. 박근혜가 되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강했는데 진보진영은 그걸 넘어설만한 이유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나: 가끔은 좌파들이 지나치게 내부투쟁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모습이 답답할 때가 있다. 모든 종류의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어본 적이 없다. 새누리당, 새민련 둘만 나와도 기권을 하면 했지 보수정당을 찍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대선에서는 처음으로 문재인을 찍었다. 강정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계속 생각나서 암울한 마음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 진보진영이 내건 대선 방침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무조건적인 단결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항상 그 반대였기 때문에 웬만하면 진보후보를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때는 그럴 수 없었다. 왜 진보후보들은 선거인단 뽑아서 경선하고 정치 자체를 흥겨운 참여의 과정으로 만들고 결과에 승복하고 이런 걸 못하느냔 말이다. 정말 자기들만의 리그라는 기분이 들었다. 지분이 크다면 이해 할 수 있다. 그런데 1% 남짓한 지분으로, 그다지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데 내부적으로 룰에 합의 못해서 또 갈라선 것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정문식 : 난 그 때 진보정치쪽 관계자에게서 이런 얘기도 들었다. 이명박보다 박근혜가 나을 수 있다. 이명박은 돈 밖에 모르는데 그래도 박근혜는 나름 정통 이념보수고 신뢰를 강조하기 때문에 일말의 합리성이 있을 것이라고. 그 말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게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스스로 그런 분석을 한다는 게 자기 위안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그 와중에 김소연, 김순자 후보가 서로 누가 진짜 좌파냐고 선명성 경쟁을 하는데 정말 미치겠더라. 아니 대체 그 차이를 몇이나 알아듣느냐는 말이다. 그 때 이후로 심각하게 탈당을 고려했다. 14년 지방선거도 잘 안 됐고 그 과정에서 당원들이 계속 나갔다. 마포는 특히나 마포파티 하면서 노동당 입장에선 분위기가 더 좋지 않았다. 아무튼 이래 저래 활동을 해도 당 활동과 관련 없는 활동을 하며 지냈다. 당적도 유지만 했을 뿐 일부러 계좌관리도 안했다. 주소변경도 안하고 그냥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이런 심정이었다. 

계속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올해 초에 당직선거하면서 조금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좀 나아지는 거 같아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나마 말이 되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오는구나 싶었다. 한 편으로는 너무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해야 하나 지쳐 보이는 후보들이 있고 한 편으로는 너무 아마추어 같아 보이는 후보들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람들이 출마한 것을 보면서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불만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노동당에 여전히 기대하는 바는 분명히 있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고 서울시나 마포구는 이런 저런 혜택을 많이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시장은 대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박원순은 과정이고 우리는 그 이후가 중요하다. 그런데 박원순에 대한 지지에서 더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원순에서 진보가 완성된다고 보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에게 없는 것, 결국엔 노동과 계급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이나 계층이란 말은 충분하지 못하다. 자본에 맞서지 않고 온전한 대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이란 도시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 소유를 둘러싼 문제가 첨예하지 않은 곳이 없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그렇고 상가임대차 문제나 뮤지션유니온 활동이나 모두 이 문제와 맞닿아 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포스트 박원순 시대를 고민해야 하고 그렇다면 결국 진보정당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통진당은 이미 해산됐고, 정의당은 정체성을 잘 모르겠고, 노동당이 잘해야 하는데... 노동당이 잘했으면 좋겠다. 


나 :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개인의 활동과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많을 거 같다. 


정문식 : 지역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구체적인 상황과 대면하게 된다. 의료생협이나, 민중의 집이나, 여러 마을 공동체나 지역단체, 사회적 기업을 만나게 된다. 문화예술 쪽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만나보면 마포는 항상 자원이 풍부하다. 사람도 많고 늘 새로운 시도가 먼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고. 상황이 늘 빠르게 변한다. 민간역량에 있어 먼저 앞장서서 모델을 제시한 것들은 분명 높게 평가하지만 요즘 들어 기반이 제대로 구축이 안 됐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양적으로 확대시키는데 집중하다보니 질적 성장이 부족했던 것 같다. 결국엔 주체의 문제인데 내가 봤을 때는 한계에 다다랐다.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신호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나 : 재정 문제를 말하는 것인가?


정문식 : 재정문제를 비롯해 전반적인 기반이 흔들리고 어렵다 보니 자꾸 외부의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홍대쪽 상인회장이 지역단체 중요 자리에까지 이름을 올렸는데 이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상인회라는 조직은 특성상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재래시장 상인회랑 큰 상권의 상인회는 또 그 성격이 다르다. 그 상인회에는 자기 건물을 가진 회원도 있고 임대차 분쟁이 발생해도 세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진 않다. 이런 사람이 단체 주요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어떤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구조가 왜곡되고 단체 성격의 본질이 흔들릴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문제가 생기는 단체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이권단체의 참여를 인정하더라도 방지하거나 견제할 장치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원래 문제의식을 상기해야 한다. 지역에서부터 약자들을 정치화시키겠다는 문제의식 말이다. 과도한 걱정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가 마포에서 이들과 직접 대면해보았기 때문에 이런 우려를 하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에서 노동당이 일정한 역할 해주면 좋겠다. 서울시당과도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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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스페이스 공감 축소에 반대하는 콘서트 "공감하고 싶어요"에 출연한 <여섯 개의 달> 



나 : 지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이런 저런 당내 분쟁을 겪으며 떠난 사람들은 물론 많은 게 단절되었다. 

 


정문식 : 생각해보면, 중앙과 시도당과 마포당협 이 삼자 간에 늘 긴장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간격이 확 벌어졌다. 들어보면 각자에게 다 수긍할만한 이유는 있다. 어느 한 쪽의 잘못이 아니다. 지난 과정들은 아쉽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전체적으로 당 차원에서 실력을 길렀으면 좋겠다. 투쟁현장에 연대만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연대도 좋지만 노동당만의 정책을 만들고 무엇보다 정치를 좀 했으면 좋겠다. 당장 실력이 약한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있는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난 노동당에 훌륭한 자원이 많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못 엮어서 그렇지. 당직자 중심의 정당활동에서 좀 더 폭을 넓혔으면 좋겠다. 너무 당연한 말만 해서 미안한데 제안하는 방식이 중요한 것 같다. 잘만 제안하면 서로 도움이 안 되겠나 그런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통합을 하더라도 명확한 비전을 갖고 했으면 좋겠다. 


나 : 통합이 필요하면 할 수도 있는데 지금 상황은 무기력의 반증이 아닐까 걱정이다. 어차피 원내정당과 원외정당은 동급에서 통합 논의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애초에 기세자체가 높지 않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당이 계속 왜소해질까 걱정이다. 


정문식 : 과정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늘 지금의 선택 이후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면서 전망을 찾으면 좋겠다. 근데 게시판을 가보면 다들 오늘하고 내일밖에 없다. 일년 뒤, 이년 뒤, 오년 뒤에 대한 고민이 없다. 이 선택을 해서 어떻게 가려 한다 이런 플랜이 없다. 독자든 통합이든 양쪽 다 그 과정이 없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 있다 보면 잘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싫다. 정당이나 정치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나 : 정당은 문제제기와 동시에 해결 내지는 개입집단이 되어야 한다. 크게 보면 한국, 작게 보면 서울시, 더 작게는 마포. 그런데 과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우리를 찾아오는가. 우리가 어떤 문제를 제기했을 때 권력자들이 우리 목소리를 듣는가.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우린 냉정하게 실력이 부족하다.

다시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주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활동가로 계속 남는 루트가 비슷하다.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활동을 관두기는 싫고 그래서 대부분 최저임금 받으며 단체 상근을 한다. 대부분은 기획자가 아니라 그냥 일꾼에 머물고 만다. 이전에 원로들이 짜놓은 프레임만 집행하고 소모된다. 모든 권력과 정보가 초기 멤버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성장시스템도 없고 내부에서 권력투쟁하다 지치고 대부분 도제관계처럼 활동이 승계된다. 


정문식 : 새로운 주체 만드는 게 능력인데 나도 요즘 고민이 많다. 


나 : 진보정당은 시스템이 안 되어 있다. 대부분 자기 정파, 자기 사람만 키운다. 거기서 스타일이 다르면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늘 경험이 축적이 안 되고 항상 잘 안되면 바닥에서 다시 시작이다. 


정문식 : 시스템은 새누리당이 최고다.  


나 : 맞다. 시스템도 잘되어 있고 흔들리지 않다보니 경험이 축적도 잘 되고 생각보다 일도 잘 한다. 


정문식 : 맞다. 진보정당이 제일 엉망이다. 자원이 축적될 시간도 없이 싸우다 갈라서는 패턴이 늘 반복된다. 당협 총회 가보니 멤버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게 새로운 기운이라고 좋게 말하기에는 조금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처음부터 완전 다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는 게 아닌가?


나 : 오랫동안 이 당에 있었던 당원들의 마음이 잘 잡히질 않는다. 속내 얘기도 안하고 전화해보면 냉랭한 게 느껴진다. 나는 스스로 다리 역할을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당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지만 나는 무조건 배워야할 입장이다. 무조건 자신을 낮춰야 한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사람들을 존중한다. 

 

정문식 : 난 마포파티 긍정적으로 봤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 안됐고 지역에서 나름 경륜 있는 사람들이 다 떨어지는 거 보니까 한 편으론 기가 막히기도 하고 한 편으로 뭘 어째야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상적으로 지역에서 여러 정치세력들이 척을 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 느슨한 네트워크라도 구성하는 게 지역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 통합이란 프로세스가 갖는 기본 배제원리는 있다. 다 만족할 수 없고 누군가는 나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카드를 너무 자주 쓰다 보니 사람들도 지쳐 있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많다. 자연스럽게 활동을 같이 하면서 생각을 좁히고 이래야 하는데 선거 때문에 쉽지 않다. 통합이란 게 잘해보자 이래서 모이는 건데 결과는 더 안 좋아진 게 최근의 경험이 아닌가 한다. 사회당과 합당 이후 노동당 내에서도 제대로 결합이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이 든다. 보이지 않게 너무 많은 감정들이 누적되었다. 


정문식 : 어쨌거나 잘 지내야한다. 그래야 나 같은 사람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다. 감정이 상해있을지라도 서로 가볍게 갈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물론 현실이 복잡한 이해관계에 묶여있고 정말 첨예하다는 걸 안다. 그래도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그 사람들은 다들 가면을 두 개 세 개씩 써야 한다. 그에 비해 이쪽은 상대적으로 편한 거 아닌가? 선거라는 장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 최소한의 페어플레이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가끔 너무 적개심이 큰 사람들을 본다. 서로 멋있게 경쟁하고 사람들이 인정해 줄 수 있는 과정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정문식 : 진보정당 1세대들이 확실히 조금 지친 거 같긴 하다. 지역만 해도 그렇다. 


나 : 이쪽이 성장 동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중심이 옮겨간다. 그러면서 의존성이 커지고 거꾸로 운동성은 약해지는 고민을 많이 겪는 거 같다. 마포당협도 여전히 민중의 집 소속단체로 남기로 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쳐서 결정했다. 그런데 뭘 어디서부터 풀어 가야할지 막막한 부분이 있다. 


정문식 : 다시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나는 민중의 집 회원인데 구조적으로 느끼는 문제들이 있다.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본다. 이권에 예민한 사람들이 포함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으로 왜 이 사람들이 필요한 상황까지 왔나 고민해야 한다. 주체의 문제가 더 중요한데 그래서 나는 다시 중심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중심을 잡는데 결국엔 진보정당, 진보정치 활동가들이 일정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나 : 한 번 만나봐야겠다. 


정문식 : 마포파티도 분명한 전망이 있으면 좋겠다. 정말 풀뿌리를 지속할 생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풀뿌리를 지향하는지 물어야 한다. 


나 : 2년 마다 이사를 다녔다. 존재 조건 자체가 한 번도 지역에 관심을 가질 계기가 없었고 경제적 여건도 안됐다. 당원들에게 연락해보면 이삼년 사이에 엄청 많이 이사 갔다. 당적은 마포인데 마포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역운동이란 게 어쨌든 정주민 중심일수밖에 없는데 주요 구성원들이 오르는 집값 때문에 동네에 머무를 수 없다는 현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무조건 한계가 있다 이런 한가한 소리는 아니고 고민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새내기인데 아는 것도 없고 인맥도 없다. 안정적으로 지역에 남아 있는 당원도 많지 않다. 동시에 망원동까지 골목마다 까페 생기고, 연예인 기획사 생기고, 풍경이 나날이 바뀐다. 몇 년 뒤가 어떻게 될지도 장담 못하겠고 근본적으로 상업지구화 되면서 지역활동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 


정문식 :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언급된 지도 꽤 되었다. 홍대 쪽은 이미 경험을 했고 점차 주변 마을로 퍼지고 있는데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상가임대차 문제로 싸우는 사람들은 상생협약하자 이런 것도 시도해보고 있고 뮤지션들도 어떻게든 기반을 만들어 보려 하는데, 그런 타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엄청 싸울 수밖에 없다. 싸우는데 누가 동력이 되느냐 고민해보면 역시 다시 진보정당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 : 지역현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있으면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다. 잘 모르는 게 사실이고 배우려고 해도 정보가 많이 없다. 


정문식 : 지역에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려고 한다. 자리가 마련되면 마포당협도 나오면 좋겠다. 



나는 인터뷰를 정리하는 지금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나하나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주제들이 너무 한꺼번에 쏟아져서 소화를 못할 지경이다. 진보정치 역사에서 논쟁이 흘러온 맥락들을 주워 삼켜 본다. 그 중에 나는 지역이라는 고민 하나만 일단 붙잡아 보기로 한다. 진보정치는 중앙정치를 통한 당지지율 상승과 비례전략으로 최초 국회에 입성했다. 그것이 어느새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리고 이어 수많은 지역전략이 나왔고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려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노동자 도시 울산과 경남을 비롯해 몇몇 지역에서 드물게 성과를 내기도 했고 진보정치의 스타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좌표설정에 난항이 거듭되었고, 야권연대라는 쓰나미가 덮쳤다. 일부는 그 파도에 잘 올라탔으나 진보정치 전반을 볼 때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어떤 특정 개인이나 정파의 탓이 아니다. 시대를 읽어내는 능력의 한계이며 총체적인 역량 부족이다. 그렇다면 노동당은 지금 무엇으로 미래의 씨앗이 될 것인가? 고민이 많아진다. 일단 지역이라는 주제를 붙잡고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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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보러 가기 -> http://www2.laborparty.kr/1580010

2편 보러 가기 -> http://www2.laborparty.kr/1582624


나동혁(서울 4권역 전국위원)

전국위원이 되고 회의참석 말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선거 때 이야기했던 것들 하나씩 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4권역(마포, 서대문, 은평, 종로중구)의 당원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다양한 그들의 목소리를 전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연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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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 만나러 갑니다] 뮤지션 유니온 위원장 정문식 3탄

    뮤지션 유니온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어 이거 뭔가 신선한데. 사람들 주목을 좀 받을 거 같다.’는 정도였고 한 번 더 들었을 땐, ‘뭐라도 도움을 좀 주고 싶은데.’였다. 그래서 고작 하는 일이라곤 어쩌다 공연 한 번 가고 페이스북에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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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권문석의 이름으로 최저임금 1만원

    남편의 꿈은 ‘진보정당의 관료’입니다. 제가 늘 “관료가 뭐냐? 고리타분하게”라며 놀리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정책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기본소득 운동을 하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하면서, 알바연대 활동을 하면서 언제나 최고가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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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금 만나러 갑니다] 뮤지션 유니온 위원장 정문식 2탄

    정문식 씨 공연을 몇 번 봤는데 그 때마다 뮤지션유니온이란 이름이 따라 다녔다. 뮤지션 최초의 노동조합. 처음 접했을 때부터 멋지다고 생각했다. 정문식 당원은 뮤지션유니온 창립멤버이며 초대위원장이다. 그는 어디에서나 음악인들도 노동자라는 점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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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산재 신청했다고 해고되는 알바 노동자

    노동상담사례 연재는 노동당 당원인 노무사, 노동상담을 하는 활동가들이 노동상담사례를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일단, 최승현, 김민, 김민호, 이병훈 당원이 시작하며, 점점 필진을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명절 연휴 바로 전날이었다. 커피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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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난민 신청 중인 외국인도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나요?

    노동상담사례 연재는 노동당 당원인 노무사, 노동상담을 하는 활동가들이 노동상담사례를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일단, 최승현, 김민, 김민호, 이병훈 당원이 시작하며, 점점 필진을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난민 신청 중인 외국인도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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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지금 만나러 갑니다] 뮤지션 유니온 위원장 정문식 1탄

    이를테면 마포에 와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길을 가다 우연히 뮤지션 당원을 만나 넋두리처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맥주 한 잔 마시는 상상을 했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게 정문식 당원이다. 우연찮게 정문식 당원을 두 번인가 술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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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반도체 소녀’ 故 박지연을 추모하며

    노동상담사례 연재는 노동당 당원인 노무사, 노동상담을 하는 활동가들이 노동상담사례를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일단, 최승현, 김민, 김민호, 이병훈 당원이 시작하며, 점점 필진을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미디어 충청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내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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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김민 노무사의 감성 만남 ①

    노동상담사례 연재는 노동당 당원인 노무사, 노동상담을 하는 활동가들이 노동상담사례를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일단, 최승현, 김민, 김민호, 이병훈 당원이 시작하며, 점점 필진을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노동사건을 대리하는 직업인 노무사는 가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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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노무사의 삶을 그린 SBS 드라마 <인생 추적자 이재구>

    노동상담사례 연재는 노동당 당원인 노무사, 노동상담을 하는 활동가들이 노동상담사례를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일단, 최승현, 김민, 김민호, 이병훈 당원이 시작하며, 점점 필진을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인 것과 사실이 아닌 것 지난해 SBS 작가에게 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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