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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남편의 산재 불승인 통보를 받은 한 장애인여성이 찾아왔다. 남편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장애인재활작업장에서 화장지를 만드는 노동자였다. 한 쪽 다리에 장애가 있던 남편은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2층 기숙사에서 술을 마신 뒤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가 떨어져 ‘경추분쇄파열골절 및 사지마비’ 진단을 받았다.


아내는 남편을 대신해 근로복지공단 수원지사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수원지사는 “사회통념상 사고발생 위험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난간에서 위험에 대한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사고(특히, 음주의 개연성)일 뿐만 아니라 작업종료 후 기숙사내에서 사적행위에 귀속되는 업무 외 사고라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한 사건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경위


장애인재활작업장은 모두 5명의 장애인노동자를 고용하여 화장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건물 1층에 작업장이 있고, 건물 2층에 기숙사가 있었다. 사고당일 재해노동자는 밤 9시까지 야근을 마치고 동료노동자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소주를 마신 뒤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바람을 쏘이러 2층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가 몸의 중심을 잃고 5~6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작업시간외에 사적행위 중에 발생한 사고의 산재 가능 여부


‘업무상 질병’과 달리 ‘업무상 사고’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에 있는 작업시간 중에 발생한 사고 즉, 업무수행성이 인정되는 사고라야 산재로 인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업시간외에 발생한 사고는 무조건 산재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업주가 관리하는 시설의 결함이나 사업주의 시설관리 소홀로 인하여 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비록 그 재해가 작업시간외에 발생했더라도, 재해노동자가 자해를 한 것이거나 사업주의 구체적인 지시를 위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산재로 인정된다(당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35조).


또한 ‘사적행위’ 중에 재해가 발생했더라도, 사적행위와 시설의 결함이나 시설관리상의 소홀이 경합해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산재로 인정된다.


‘장애인시설’은커녕 ‘비장애인시설’ 기준에도 못 미치는 위험한 장애인기숙사


사고 장소인 2층 기숙사 베란다 난간은 근로복지공단 수원지사에서도 “사회통념상 사고발생 위험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난간”이라고 할 정도였다. 난간 높이는 측정결과 약 70cm에 불과했는데, 이는 90~120cm 사이로 정해져 있는 난간 설치기준(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을 크게 밑도는 높이였다.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보다 더 높은 안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장애인시설이었지만, 실상은 비장애인은커녕 비장애인시설 기준에도 크게 못 미치는 언제 추락사고가 날지 모르는 위험한 시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추락사고의 위험이 항상 내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는 추락방지를 위한 어떠한 안전시설도 설치하지 않았고 안전교육 또한 실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날 사고는 작업시간외에 사업주가 제공한 ‘시설의 결함’ 또는 ‘시설관리상의 소홀’로 인하여 발생한 사고가 분명해 보였다.


음주와 난간에 걸터앉은 것은 사업주의 구체적인 지시사항 위반이나 자해가 아님


사업주는 장애인노동자들이 퇴근 후 숙소에서 술자리는 가지는 것을 제재하기는커녕 오히려 장기간의 임금체불로 인한 장애인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려고 소주를 박스로 제공하고 가끔 같이 마시기도 했다. 사고당일 술자리에도 사업주가 함께 있었다.


또한 사업주는 장애인노동자들이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이후에 2층 숙소 베란다 난간에서 휴식을 취해 온 사실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별다른 제재조치 없이 위험한 장소에서의 휴식을 묵인 내지 방조했다. 그리고 재해노동자가 자해를 목적으로 투신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이날 사고는 재해노동자의 자해행위 또는 사업주의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위반한 행위를 하다가 발생한 것이 아니므로 근로복지공단 수원지사의 산재 불승인 처분은 부당한 것으로 보였다.


※ 위 사례는 심사청구를 제기하여 산재로 인정되었습니다.


[ 김민호 노무사(충남비정규직지원센터 상임대표 / 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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