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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되어 날아간 이유에 대하여

- 희망버스재판 최후진술

 

 

* 이 글은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혐의로 송경동 시인과 함께 구속 기소된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희망버스 재판의 선고(2014년12월2일, 부산지법 301호)를 앞두고 재판부에 보내는 최후진술이다. 재판정에서 실제 진술한 내용을 정돈하여 기술하였다. 지난 10월14일, 검찰은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에게 징역2년을 구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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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삼년이 되었네요. 재판부를 포함해 재판 진행을 위해 힘써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특히 지금 이 시간에도 법원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법원노동자들과 구성원들에게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삼년 전 겨울, 푸른색 수의를 입고 재판정에 들어설 때가 기억이 납니다. 무척 긴장을 하였지요. 지금 방청하는 분들께서는 의외라 여기시겠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유치장이란 곳을 부산에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감옥까지 들어가 팔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조그만 독방에 갇혔으니 얼마나 낯설고 깜깜하였는지 모릅니다. 다른 재소자들과 동승해 교도소에서 법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서 포승줄에 꽁꽁 묶인 불편한 몸이었지만 애써 맘을 잡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저 같은 사람 하나 더 처벌하는 것을 통해 희망버스를 범죄로 몰아가려 하겠지만, 진정 우리 사회에서 단죄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담담하게 자문해 보았습니다. 뒤늦게나마 희망버스에 탑승하고, 기꺼이 나비가 되어 85크레인으로 날아간 이유에 대하여.

 

피고인 자리에 앉아 검찰의 주장도 애써 들어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재판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법리적 공방이란 게 무색할 정도로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1차 희망버스라고 이후에 명명된 바로 그 날, 저의 혐의사실로 “무단으로 도로를 행진한 후에 사다리를 타고 공장 담벼락을 넘어갔다”는 것이 적시되어 있었지요. 당 전국위원회를 마치고 당원들과 함께 출발하여 뒤늦게 공장에 도착하였고, 이미 무언가 상황이 종료되어서인지 경찰의 주차안내까지 받으며 편안하게 걸어서 공장 정문으로 들어갔는데도 말입니다. 휴대폰도 압수되고 위치추적까지 해갔다는 통지서도 받았는데, 증거확보는 고사하고 육하원칙도 짜 맞추지 않고 일단 기소하고 보는 것이 검찰의 관행인 것일까요? 심지어 구속시키려고 선택한 주동자에게 말입니다.

 

그나마 실정법 위반이라고 공방이 될 만한 것으로는 3차 희망버스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편에 대해 승차안내를 한 것이 있겠네요. 정당연설회 방송차량을 이용하여 전국 각지로 돌아가는 승객들에게 지역별 차량의 주차 위치도 안내하고, 분실물도 찾아주는 등 몇 가지 지원활동을 했습니다. 100대가 넘는 차량에 수많은 사람들을 탈 없이 신속하게 탑승시키기 위해 목이 쉬어가며 정신없이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것을 집회라 부르든, 그 무엇이라 규정하든, 그런 걸 다 인정하더라도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것까지 징벌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당일 현장에서 지켜보던 경찰도 결국은 빨리 귀가하기를 바라는 입장이었을 것이고, 피곤에 지친 승객들조차 아쉬운 헤어짐이지만 차분하게 마음 모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시간을 끝까지 함께 잘 만들어냈는데도 말입니다.

 

2년. 검찰이 오늘 제게 구형한 숫자입니다.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지고, 곳곳에서 증인들이 불려나오고, 변호인들이 준비한 소중한 변론을 남기고, 그렇게 길고 긴 재판을 끝내며 결국 검찰은 제가 감당해야 할 징역의 형량이라며 저런 숫자를 던지고 마는군요. 저의 죄 값을 측량한 저 숫자의 많고 적음에 대해서 굳이 따질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차라리 처음 재판정에 들어서며 스스로 다짐했던 것을 다시 전하며 저의 약속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희망버스 승객의 하나로서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희망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의 책임과 대가로 우리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법의 이름으로 겸허하게 묻고 답하고, 또 함께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의 답으로 2년이라고 써냈지만, 저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건의 당사자로서 제가 찾아가던 질문이나마 재판부에 진솔하게 전합니다.

 

법원은 얼마 전 “대공장 사내하청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불법파견이고 위장도급에 지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고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데 적지 않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불법파견을 기획하고 주도한 사람들을 구속하거나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법’이고,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이 있습니다. 법은 그렇게 상반된 두 개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고, 그런 것을 법의 이중성이라고 하는 걸까요?

 

85크레인에 있는 어느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소박하지만 절박한 마음들이 모여 시작된 희망버스.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아름다운 연대와 희망의 상징으로 조명받기도 했고, 또 한편에서는 외부세력의 개입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도 했지요. 사회적 토론과 공감이 확산되며 많은 귀감과 교훈을 남긴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또 하나의 심판, 아니 이 모든 공동의 모색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함께 이루어낸 것, 여전히 넘어서야 할 것을 찾아내던 우리사회의 포용력과 다양한 상상력까지도 이제 죄의 유무와 형벌의 크기로 대체되어 답해야 할 때입니다. 최후진술에 필수적으로 따라 붙는 선처의 호소는 굳이 하지 않겠습니다. 재판부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던 질문을 재판부에 감히 돌려드립니다. 어떤 얼굴로 재판정에 들어오실 것인지요? 법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요?

 

검찰은 이 재판이 남겨야 할 답은 물론이고 이 재판을 구성해야 할 증거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실은 애초에 왜 우리를 가두어야 했는지, 그 이유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보석으로 석방되고 처음으로 희망버스에 대한 저의 의견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희망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 지에 대한 저의 답입니다.

 

“담벼락 밑에서 7박8일을 혼자서 서성거리며 버틴 사람. 유럽 유학중에 귀국해서 크레인을 먼저 찾는 풍경.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비를 맞으며 밤을 새는 시민들과 72시간 연속 정당연설회를 개최해 투쟁의 공간을 확보한다는 구상. 경찰청 건물 주변을 돌아 줄지어서 버스에 승차해보겠다는 이상한 발상. 영도가 워낙 좁아서 일만이 모여 공연 할 장소가 없으니, 차라리 차벽을 설치해주면 신나게 놀아보겠다는 가수들...”

 

희망버스의 진정한 실체는 어쩌면 검찰이 공소장에 써내려간 그 희망버스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당연설회 차량을 운행하고,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고, 또 영도에 오지 못하는 전국의 시민들과 트위터를 주고받으며, 85크레인이 보이는 곳에서 밤이슬을 맞고 함께 노숙하는 시민들에게 그 마음을 전달하던 시간. 희망버스라 불리던 날도 아니고, 공소장에 들어갈 항목도 없고, 어떤 범죄혐의를 내세울 수 있을지 검찰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들. 제가 함께 한 그 작은 것들이 희망의 날갯짓이었다면, 저는 희망버스의 자발적 기획자이고, 진짜 승객이었다고 자부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통일지라도 아름다운 연대의 손을 먼저 내미는 사람들, 함께 살기 위해 스스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법이 어떤 얼굴을 하고 누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아직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합니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저 자신이 그리고 함께 했던 이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말하며 새로운 희망의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구속과 재판, 험한 길을 걸으며 더욱 단단히 깨닫습니다. 희망은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손을 내밀며 함께 잡는 것이라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저의 이름을 그래서 다시 기억해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냈던 절박한 그 외침, 우리 모두가 김진숙입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모두가 기획자가 되었습니다. 함께 날아가 스스로 희망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마음을 열고 들어주셔서 용기를 냈습니다. 꿈꾸는 자들이 갇히는 것이 아니라, 더 따뜻하고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로운 판결을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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