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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2차로 가면 음악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나름 음악도 열심히 듣고 인터뷰도 꼼꼼하게 챙겨 보고 준비를 해 왔다. 그런데 서로 당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보다. 왜 아니겠나? 흔한 기회가 아니다. 단편선 씨는 소주를 비워가며 거침없이 속내를 이야기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면 어떠냐 싶은 마음이었다. 
대부분 생각이 비슷했다.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그마저 편하고 재밌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인간 단편선은 좀처럼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소주가 계속 들어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사람은 편견이 없이 대화를 마구 확장시켜 나가는 재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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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과 선원들 1집 앨범 <동물>에 실린 사진


나 : 정파와 관련해서 청년들은 달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정파구조라는 게 끊임없이 위에서 아래로 재생산된다. 

단편선 : 청년들이 선배를 무조건 생각 없이 따라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청년들도 자기 선택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나 : 단편선 씨의 입장이니까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단편선 : 맞다. 그런데 싸울 필요가 별로 없는 부분에서도 싸우는 경우가 있다. 서로 이용할 수 있는만큼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나라면 (좋은 의미에서) 상대를 이용할 생각을 하겠다. 빨리 안 좋은 분위기를 끝내야 한다. 주위에 보면 생각보다 견원지간이 된 사이가 많다. 빨리 극복해야 한다. 

나 : 어떻게? 짧은 단편이라도. 단편선이니까.

단편선 : 이번 청학위 선거에 박기홍 씨가 나왔잖아. 박기홍 씨에게 이전 청학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물었는데 불충분하지만 나름대로 답을 했다.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당원사업 못했으면 인정하고 이제라도 손 내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주체들이 결심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답이 없다. 

나 : 개인으로는 잘 안 움직여서 그런 것 아닌가? 조직의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까. 

단편선 : 나는 조직에 속해있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경우라도 조직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부터라도 움직여야 한다. 

나 : 전국위원 선거 운동을 하는데 마포 당원들 냉랭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독자 통합 무관하게 당에 대해 냉랭하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마포는 진보정치에서 매우 뜨거운 지역이었다.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뭔가 많이 해봤는데 이게 무망하게 된 것이다. 그것에 대한 환멸이나 무기력 같은 게 느껴진다. 통화를 하면 길게 말하기 꺼려하는 분위기가 자주 감지된다. 

단편선 : 선거 때마다 우리 당의 가진 역량 이상으로 많은 후보를 내서 재정이 거덜 난다. 지방선거 할 때도 최대한으로 후보 내는 이유가 비례 지지율 높이겠다는 것이었는데 이게 실제로 증명된 적도 없을뿐더러,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다곤 해도 너무 리스크가 크다. 선거를 하고 나면 개인은 거덜 나고 당 역시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다. 

나 : 당직선거 토론회 할 때 후보들 중에 당이 왜 힘들다고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발언이 자주 나왔다. 여전히 이렇게 많은 당원이 있고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당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쉽게 나오기 어려운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단편선 : 각 조직의 입장에서는, 독자-통합 이슈에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일단 대의원과 전국위원을 최대한 확보하면 좋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각 정파가 당직선거의 거의 모든 부문에 자기 정파의 후보를 내는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역할당부분 대의원이나 전국위원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건 이해를 못하겠다. 지역할당이면 지역 활동할 사람이 필요하다. 일단 후보부터 내고 시작한다는 마인드가 너무 싫다. 지역에서 활동을 전혀 안하다가 지역에 나오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거라고 본다. 아무리 자율적이라 해도 당에 기강이 있어야 한다. 지역에서 활동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이 왜 힘들다고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 당이 왜 힘든지는 알고 전국위원이든 대의원이든 시작해야 한다. “여전히 이렇게 많은 당원이 있고” 같은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당은 동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 : 상도덕이라 했는데 정해놓은 건 없지만 지역에서 대의원에 나온다고 했을 때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출마자 중 많은 이들이 당직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 공간이 달라졌는데 평소에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한다. 자기활동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당의 재정구조나 형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또 탈당을 하느냐 마느냐, 당을 나가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쟁이 너무 압도적이다. 만약 탈당 여부가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면 여기저기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단편선 : 동의한다. 배제보다는 어쨌든 설득과 조화가 필요하다. 수평적 네트워크라는 게 자율적으로 약속을 잘 지키자는 건데 심판도 없고 룰도 없이 성립 안 되는 게임 같은 느낌을 주면 안 된다. 나도 이전에 마포 대의원이었는데 아무 것도 못 했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나 : 좋게 좋게 넘어갈 생각 마라. 이전에 썼던 문서들 내가 다 뽑아왔다.  

단편선 : 좀 봐도 되나? (잠시 후) 내가 이런 글을 쓰다니. 당시로써는 쓸 만한 글이었네.  나도원 지지 글은 다시 읽어보니 약아졌네. 분명히 반론을 제시할 부분이 있을 텐데 지적하기 모호하게 썼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나 : 그 사이에 사람이 닳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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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는 단편선 씨


점점 대화가 격이 없어진다. 단편선 씨는 턱을 괴고 이야기한다. 인터뷰는 어느새 그냥 편한 수다가 되어 가고 있다. 시간도 제법 늦어졌다. 어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슬슬 주제를 돌려본다. 
1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단편선과 선원들은 1집 <동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상을 수상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을 수 없는 노릇. 당에 대한 이야기야 몇 년을 고민했기 때문에 정리된 언어가 있다. 그러나 음악은 다르다. 잘못 질문을 던졌다가는 고민의 깊이만 탄로 날 것이다. 그래서 몸을 사리면서 대화가 빨리 끝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으나 착각이었다. 또 다시 엄청나게 긴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대화는 밤을 새도 지겹지 않을 것 같았다. 

나 : 단편선과 선원들은 처음 들었는데 인터뷰 하려고 이틀 내내 들었다. 내 음악적 취향은 완전히 언더도 오버도 아닌 어중간한 스타일이다. 90년대 후반 홍대에 인디씬 1세대가 나올 때 관심은 있는데 열렬히 듣진 않고, 그 세계를 좋아는 하는데 매니아는 아니고 그 정도였다. 언니네 이발관이나 크라잉넛을 좋아하는 정도였다. 

단편선 : 그 분들은 인디 선배님이시고, 훌륭한 사람들이다. 내가 인디 39기인데 깝치면 선배들한테 빠따 맞는다. (이해 못함) 농담이다. 
  
나 : 걸그룹도 잘 구분 못 하고 텔레비전도 거의 안 본다. 언더 노래 위주로 듣긴 하는데 새로운 곡을 많이 듣지는 않는다. 한 때 허클베리핀을 매우 좋아했다. 의리 때문이 아니라 음악적으로 진짜 좋아했다. 음악에 열광한 건 그게 마지막이었던 거 같다. 스무 살 전후론 록 음악 팬이었다. 다들 서태지 팬일 때 난 넥스트 팬이었다. 그런데 요샌 재즈만 듣는다. 가사가 없어야 생각 없이 들을 수 있는데 직장 다니고 피곤하니까 그런 곡들이 편하다. 그런데 단편선과 선원들 노래는 사운드가 비교적 강하고 실험적이면서 날카롭다. 이런 음악 오랜만에 들었다. 연주들이 신경질적이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진짜 좋더라. 하지만 일상적으로 계속 들을 거 같지는 않다. 

단편선 : 일상적으로 들으라고 만든 곡은 아니다. 다만 다시 꺼내 들었을 때, 그때도 곡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면 된다. 일상적으로 듣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나도 의도적으로 듣기 편하게 쓸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들리는지 조금 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그걸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다. 

굳이 분류하면 장르가 싸이키델릭인데, 이 장르의 음악들은, 선조 격인 지미 핸드릭스부터 전반적으로 지저분하게 녹음된다. 대부분의 경우, 깔끔하게 만드는 게 목표는 아니다. 감정이 좀 더 걸쭉하고 과잉되어 있다. 환각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음악 장르다. 장르적 특성에 비하면 우리는 아주 깔끔하게 만든 편이다. 정말 딱 떨어지게 만들려고 엄청나게 깎고 또 깎았다. 기술적으로 다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무척 다듬어서 만들었다. 

나 : 곡을 만들 때 무엇을 제일 많이 고려하나?

단편선 : 김연아 같은 스포츠 스타를 풀 HD 화면으로 본다고 하자. 그냥 눈으로 보면 클로즈업된 신체부위나 동작을 화면에서처럼 자세히 볼 수는 없다. 기술적으로 훨씬 드라마틱하게 과잉되어 있는데도 현실로 받아들인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현대적인 미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 미감을 음악적으로 전유해보고 싶었다. 나는 음향에 관심이 아주 많다. 한편으로는 팝처럼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대중적으로 다가가도록 리듬을 강조했다. 박자가 일관성 있게 딱딱 떨어지는데 그리드(눈금)가 정확히 나뉘어 있어 구조 파악하기 쉽게 만들었다. 

나 : 굉장히 수학 이야기처럼 들린다. 수학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기사를 봤다.

단편선 : 옛날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그런데 수2를 못 배웠다. 수학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중학교 끝날 쯤부터 음악을 공부했다. 학교 다닐 때는 이과도, 문과도 아니고 예체능 계열이었다. 음대 작곡과에 진학하려고 계속 공부했는데 고3 때 매일 반복적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이 너무 싫어서 그냥 문과로 시험치고 대학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학원 다니면서 수1을 공부했다. 수학에서는 개념적으로 집합론 같은 논리 체계가 중요하지 않나. 그런 것에 관심이 많다. 관련된 책도 많이 읽는다. 

나 : 미디어스에 비슷한 종류의 글을 쓰고 있다. <수학으로 세상에 말 걸기>라고 영화나 소설을 수학과 융합시켜서 분석한다.  

단편선 : 수학을 좋아한다면 내 음악도 좋아할만한 측면이 있다. 비교적 마인드가 수학 쪽에 가까운 음악이다. 소리도 여럿이 섞여 들어가는데 이게 어떻게 들릴까 악기배합이나 공간배치와 관련해서 신경을 많이 쓴다. (후에 술자리에서 단편선을 다시 만났을 때 노라 존스 이야기를 들었다. 공간 배치까지 고려하며 녹음을 하기 때문에 듣고 있으면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느낌이 나고 아주 편안해 진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부분이란다.)

나 : 가사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단편선 : 내 음악은 스토리텔링이 핵심이 아니다. 내래티브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그냥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가사는 직관적으로 쓴다. 하고 싶은 말만 하며 서사를 만들고 싶단 욕망이 없다. 이 멜로디에는 이 말을 했어야 돼 라고 생각하는 핵심 단어나 문장이 있는데 그것만 들어가면 된다.
 
곧 공개할 <그리고 언제쯤>이라는 곡이 있다. 멜로디를 먼저 썼는데, 이 멜로디는 그냥 “그리고 언제쯤”으로 불러야겠구나 생각했다. 그것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생각나는 대로 살을 붙였다. 서사구조를 몰라서 안 쓰는 게 아니다. 서사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관이 파편적이고 나를 둘러싼 세계가 파편적인데 굳이 완성된 서사를 구축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있다. 

2014년에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는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에서 발표한 앨범 [동물]에는  <소독차>라는 곡이 실려있다. 그 곡의 가사는 유년기에 대해 그리고 있어서 조금 평범해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화자의 시점이 계속 교란된다. 나에서 시작하다가 갑자기 우리로 바뀌었다가 이후에는 시점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백년>이란 곡에서도 두 시점이 왔다 갔다 한다. 같은 시점에서 쓰는 가사가 아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사는 하나의 인칭을 가지고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배치하는데 나는 이걸 어떤 곡에서는 완전히 포기하고 어떤 곡에서는 슬쩍 비껴간다. 그러면 이야기 자체가 완결성이 떨어진다. 구조가 뫼비우스 띠처럼 순환하며 완결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나 : 허클베리핀을 좋아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이올린이다. 연주가 락 사운드로 고조되다가 확 바뀌면서도 클래식 분위기가 나기도 하고. 바이올린을 해금처럼 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연주 부분 어딘가에서는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바이올린이 분위기를 많이 좌우한다. 

단편선 : 바이올린이 확실히 분위기를 주도한다. 보컬과 바이올린이 큰 선율을 주도하고 다른 이들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나도 고등학교 무렵에 허클베리핀의 음악을 즐겨들었다. 어떤 느낌을 말하는지 알 것 같다. 

허클베리핀 음악 생각하면 요즘 음악 같이 안 느껴질 수 있다. 스트레이트한 미드 템포 록 음악이고 메시지는 시적이다. 허클베리핀의 은유가 혁명에 가깝다면 내 은유는 이미 망해버린 세계에 가깝다. 영원히 미래가 오지 않는 분위기. 미래를 향해 계속 달려가지만 미래가 도망가고 있어서 아무리 나아가도 미래가 오지 않고 영원히 지연되는 느낌이다. 정체되고 분열적이며 망해가는 세계. 

나 : 앨범에 <우리는>은 왜 넣었나? 희망적으로 마무리 하려했나?

단편선 :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다. 너에게 위로는 못해주고 위로해줄 생각도 없지만 계속 성심성의껏 얘기를 할 테니 내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인지하고 의지가 있다면 버틸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내 음악의 태도다. 내 음악은 그게 전부다. 다른 메세지는 하나도 없다.

우리 밴드 라이브를 보면 육체적 능력이 강조 된다. 민첩성, 순발력, 힘을 느낄 수 있고 트레이닝으로 동적 에너지를 키워 어떤 한계를 돌파한다는 느낌을 준다. 망한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성심성의껏 열과 성을 다해 제안을 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같이 용기를 내자라고 몸으로 말을 거는 것이다. 나한테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 어쩌면 메세지가 단순해서 가사를 열심히 쓸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누구든 우리 공연을 보면 열심히 하고 있구나, 정말 빡세게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 받을 수밖에 없다. 온 몸으로 세계가 망했다 이런 걸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 망했는데 이제 어쩔 것이냐 묻고 싶다. 

나 : 꼭 에반게리온 이야기 같다.

단편선 : 그렇지. 에반게리온 빠다. 요즘은 애니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그런 발상에서 얻는 게 많았다. 예를 들어 친구랑 술자리에서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친구가 되게 못 생겨 보여 그래서 막 웃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만화 <란마 1/2> 같은 경우는, 캐릭터들이 실은 온통 사회부적응자에 패륜만 가득한 만화고 그 캐릭터들이 죄다 서로 싫어하고 증오하고 싸우지만 결과적으로 서로를 죽이진 않는다. 서로 난동 부리면서도 은근히 쾌감을 느끼고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쌓이는 감정이 있다. 그렇게 서로 에너지를 주고 부대끼면서 살아간다. 거시적 차원에서 힘들고 망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받아가며 함께 가는 것이다. 

나 : 친구 중에 잘생긴 사람 없나?

단편선 : 잘 생긴 사람은 원래 한정적이니까. 대부분 성격 안 좋지만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로서 존재할 수 있다. 공동체주의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정확히는 개인으로 자립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으려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런 생각이 있다. 아 너무 꼰대 같은 이야기 같다. 

나 : 일본 애니랑 비슷한 느낌이다. 츤데레인데 세계관은 디스토피아적이고. 애니나 만화를 많이 본 것 같은데 인터뷰를 보면 어릴 때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단편선 : 어릴 때 그런 걸 너무 많이 봤지. 동인지도 많이 보고.

나 : 원래 꿈이 만화가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단편선 :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었다. 통제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부도 거의 안하고. 

나 : 그래도 자기 길을 빨리 빨리 잘 찾아갔다는 느낌이다. 

단편선 :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고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는 친구를 많이 만났다. 그 친구들을 통해 내 위치를 잘 파악할 수 있었다. 두리반이 생각나는데 그 때 만난 친구들을 통해 내 음악의 좌표를 그리기 용이했다. 상대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비교하면서 내 판단을 세우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나 : <동물>은 1집인데도 완성도가 높다. 실험적인데 안정감이 있다. 창법도 특이하다. 판소리 같기도 하고.

단편선 : 내가 흑인이냐 백인이냐, 남자냐 여자냐, 엘지비티냐 아니냐 선택과 무관하게 결정되는 것들이 있다. 이런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가장 적합한 목소리를 낼 것이냐 고민을 많이 했다. 또 발음이 짧다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것을 활용하거나 혹은 돌아가는 방식으로 노래할 수 있는 창법을 연구했다.

한국어는 전반적으로 부드럽다기보다는 탁한 느낌이 있다. 이 점이 음악하기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지만 나에겐 매력이 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갖게 된 것이 우연적 조건이라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해석까지 포함된다. 예를 들어 미술가인데 여성이라면 생리하는 상황을 어떻게 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다. 음악적으로 제3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민하고 실천해보는 게 필요했고 이런 조건으로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고 생각했다. 이건 민족주의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음악 이야기도 한없이 뻗어나갔다. 그런데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지루한 게 더 뭔가? 함께 정치를, 당을 이야기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음악을 곁들이고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뻗어가는 잔가지와 농담들이라니. 이런 술자리가 오랜만이었다. 직장생활이 오래된 탓에 잊고 지낸 어떤 내 감각의 원형까지 살짝 되찾는 기분이었다. 그가 구축해놓은 세계를 듣고 있자니 오래 동안 표현할 길 없었던 내 세계도 계속 엿보게 되었다. 관심사가 비슷한 구석이 많아 전혀 인터뷰로 느껴지지 않는 대화였다. 시간이 제법 깊었지만 대화는 조금 더 연장되었다. 준비한 것이 아직 남아 있기도 했다. (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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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보러 가기 -> http://www2.laborparty.kr/1565095

나동혁(서울 4권역 전국위원)

전국위원이 되고 회의참석 말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선거 때 이야기했던 것들 하나씩 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4권역(마포, 서대문, 은평, 종로중구)의 당원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다양한 그들의 목소리를 전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연재할 계획입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만남, 기대해주세요.  


인터뷰 녹취는 마포당협 대의원인 김준씨가 도와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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