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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직장폭력'

지난 16일 JTBC 탐사플러스라는 시사 프로그램에 경악할만한 사태가 보도되었다. 서울 시내에 소재한 한 텔레마켓 사무실에서 일어난 직장내 폭력에 대한 보도였다. 4~5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팀장’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상습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팀장은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벌서기’ ‘오리걸음 걷기’ ‘구호 외치며 자기 뺨 때리기’ 등 21세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상상하기도 힘든 일을 시키는가 하며, 심지어 우산이 망가질 정도로 노동자에게 매질을 해 대는 장면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나왔다. 

피해를 당하는 노동자들은 동료가 오리걸음을 걷고 있는 순간에도, 동료가 폭행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리고 자신이 폭행을 당한 직후에도 수화기를 들어야만 했다. 비상식적 폭력을 그치게 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실적을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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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노동자의 영혼, 원인은 간접고용

피해자들은 결국 지난해 6월 회사를 그만두고 소송을 제기했고, 가해자는 공갈과 명예훼손으로 맞고소를 한 상태다. 하지만 그들은 회사를 그만 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 했다고 전해진다. 지속적인 가혹 행위로 영혼이 피폐해진 것이다. 

해당 업체는 ‘위탁’을 가장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의 대표적 형태로 원청에게 받은 텔레마켓 물량을 소화하는 다수의 소규모 업체 중 하나다. 원청 업체는 ‘출퇴근 시간만 관리’했지 일상적 노무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업장 내 폭력 사태에 대해서는 소송이 이뤄진 이후에 인지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과연 돌출적 예외상황이었을까?

이번 폭력 사건이 우리 사회의 일상적 풍경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가해자로 지목된 ‘팀장’의 행동 역시 일상적으로 보는 관리자의 행태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그저 돌출적 예외사항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팀장이 노동자들에게 오리걸음을 시키며 외치게 한 구호 중에는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오지만 인생의 봄은 만들어야 온다’는 구호가 있었다. 경쟁이 심화되고 구성원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노동자 서민의 삶은 늘 겨울이고, 그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것도 오롯이 노동자 개인의 몫이다. 인생의 봄을 만들기 위해 가해진 폭력은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이 되어버린 경쟁,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고있나?

경쟁과 실적은 이제 기업과 기업 사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과 옆 팀 사이에서도, 나와 옆 자리 동료 사이에서도, 내 아이와 그 짝꿍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평가 항목이 되었다. 예의 그 팀장의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 흔하지 않은 일탈적 행태였기에 법과 제도를 바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실적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는 보다 안정적인 고용형태였다면, 팀장의 비상식적인 행동이 아무런 제지 없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자문해 봐야 한다. 우리사회가 보복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사회였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자문해 봐야 한다. 또한 더 많은 비정규직을 만들어서라도 추구해야만 했던 우리 사회의 주된 가치가 무엇이었는가를 자문해 봐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우리 사회를 더 많은 경쟁과 효율성(실적)의 사회로 몰아가면서 정작 구성원의 삶과 그들 영혼의 안식을 더 위태롭게 만든 것은 아닌가 자문해 봐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세계적 메트로도시인 서울의 한 구석에 일어난 작업장 폭력을 단순히 예외적 사건으로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노동자에 대한 이번 폭력 사태를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보여주는 지극히 징후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 홍원표 (노동당 정책위원회 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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