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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기습이나 한국전쟁처럼 일요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민주당과 ‘안철수당’의 통합 소식에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한국에서 정당 이름은 참으로 자주 바뀐다. 이름을 외울 겨를도 없이 사라지는 정당도 숱하다. 안철수 씨의 새정치연합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사람들은 굳이 외울 필요도 없는 그 이름 대신에 영원히 ‘안철수당’이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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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 



대통령 이름 따라 바뀌는 집권당 당명

한국 정당정치의 천박함은 역대 집권정당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당 대 당 정권교체는 두 차례 밖에 없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집권한 민주당류(이 또한 당명이 몇 번 바뀌었으니 민주당‘류“라고 표현할 수밖에) 정권 외에는 동일한 세력이 집권했다. 1948년부터 시작하는 66년 헌정사에서 거의 같은 정당이 집권한 것이다. 그러나 당명은 줄기차게 바뀌었는데, 대통령 이름이 바뀌는 데 따라 당명도 바뀐 것이다. 그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정부수립 초기부터 12년간 장기집권한 자유당은 이승만 한사람만 대통령으로 섬기다 막을 내렸다. 이후 단명으로 끝난 민주당 장면 정권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무려 16년을 집권한 민주공화당도 박정희 1인만을 섬겼을 뿐이다.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은 노태우까지 2인의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2번째 임기 도중에 3당 합당에 의해 민주자유당으로 간판을 바꿨다.

이후부터는 집권하면 임기 중에 간판 바꾸는 일이 불문율처럼 반복되었다. 김영삼(민자당->신한국당), 김대중(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노무현(민주당->열린우리당), 이명박(한나라당->새누리당).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66년 헌정사에서 2명의 대통령 임기를 채운 정당(정확히는 당명)이 없었던 것이다. 정권교체는 드물지만 당명 교체만은 줄기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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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당 연대표 (출처: 위키피디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어느 정권도 같은 이름으로 두 번 심판받을 자신이 없었다는 얘기다. 정당의 차별성도 없었고 따라서 진정한 정권교체도 없었으며 정당의 자체 혁신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 모든 것을 당명 교체로 대신했던 것이다.  


제3당? 있지도 않았다 

간만 본다고 해서 ‘간철수’라는 별명을 가진 그 분은 확실히 이름값을 했다. 별명 그대로 간은 잘 본 것이다. 몸값 잔뜩 올려놓고 최초의 전국단위 선거라는 심판을 앞두고 몸을 매도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는 특정한 개인의 명망성에 의존한 제3당 시도가 간혹 있었다. 박찬종과 이인제의 당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개인의 이름값에 의존하기에 대선에서는 나름대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러나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형편없이 깨진다. 손오공처럼 자기 털을 뽑아서 수많은 분신을 만들어 출마시킬 순 없으니까 당연한 결과다. 개인의 이름값이 중요한 서울시장선거와 대선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안철수 씨도 전국단위 선거인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자기 한계를 인식했을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통찰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심판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체감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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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으로 흡수합당되었던 선진통일당의 이인제 전대표



보수양당구도로 일관한 한국 정당정치에서 제3당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있다. 그것을 채워줄 공급이 없을 따름이다. 결선투표도 없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아래서 제3당이 진출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제법 똑똑해 보이는 2명의 변호사와 1명의 의사가 개인의 명망성에 의존해 틈새를 노려봤지만 일시적인 거품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정체성은 보수양당을 대신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또 다른 보수정당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에는 제3당에 대한 수요는 마치 목마른 자가 바닷물을 퍼 마시듯이 영원히 풀릴 수 없는 갈증이 될 것이다. 


진보 제3당의 길

그렇다면 대중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진보 제3당은 가능할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진보정당이 진출하기에 한국의 조건은 매우 척박하다. 분단 상황을 포함한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인 악조건이 있고 제도적인 한계도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객관적 조건들을 극복하고 지난한 세월을 인내하며 꿈을 이루려는 주체 역량의 부재다. 

진보 제3당은 2004년 총선에서 잠시 실현된 적이 있다. 그것이 4년천하로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여기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온갖 비극들이 있었고 그 결과로서 2008년의 분당이 있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분당은 비극의 원인이 아니라 비극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를 혼동하면 그 어떤 고민도 논의도 불가능해진다. 

이른바 얼어 죽을 각오로 분당을 결행했으나 실제로 얼어 죽진 않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얼어 죽지 않게 된 현실조차 만족스럽지 못했다. 2004년에 잠시 실현되었던 그 영광의 순간을 당장 재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2011년과 2012년에 걸쳐서 또다시 비극이 벌어졌다. 반복된 비극이니까 희극인 것이다. 정작 얼어 죽을 위기는 희극 이후에 닥쳤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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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7월 21일 진보신당 재창당대회에서 휘날리는 임시 노동당 깃발



27년을 감옥에서 지내다 끝내 꿈을 이룬 만델라 같은 의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척박한 한국 땅에서 진보정당의 길을 가고자 했다면, 더구나 얼어 죽을 각오로 분당까지 결행했다면 그 길이 순탄치 못할 것임을 틀림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대중의 갈증을 바닷물이 아닌 담수로서 풀어줄 수 있는 길이 이것 말고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고 견뎌내야 하는 이유다. 


[ 구형구 (노동당 중앙당 조직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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