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이슈 / 뉴스
우리들의 밀양





황종섭(노동당 서울시당 조직국장)

서울로 옮겨온 밀양

지난 12일 오전 서울시청광장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목숨을 끊으신 유한숙 님을 추모하며, 공사를 멈추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는 시청광장에 간이 분향소를 설치하였습니다. 작은 테이블 하나에 영정 사진과 향로, 국화 등이 놓였습니다.

1.JPG

하지만 서울시청과 남대문경찰서는 이 작은 추모의 공간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내 들이닥친 양쪽 경찰들은 하나가 되어 분향소를 박살내고 현수막을 빼앗아 갔습니다. 분향을 위해 준비했던 국화는 바닥에 내팽개쳐졌습니다. 분향소를 빼앗기고 망연자실해 하는 사람들 뒤로는 하필이면 나눔과 사랑의 불빛을 밝힌다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서있었습니다. 천막 하나 칠 수 없는 광장의 하늘에선 하필이면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3.JPG

사람들은 분향소가 철거된 후 서울시청에 항의 방문을 갔습니다. 거기서 또 한바탕 아수라장이 연출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경찰들이 향로를 빼앗겠다고 달려들어 향로에 들어있던 모래가 로비에 쏟아졌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항의하는 사람들, 뭐든지 안 된다고만 하는 경찰. 우리에게는 한 뼘 추모 공간도 사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핑 돕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온갖 작전들을 동원해 13일 새벽에 간이 분향소와 천막을 설치했습니다. 지금 시청광장에 가시면 천막이 한 동 보이는데 이것이 유한숙 님을 기리고 공사 중단을 기원하는 간이 분향소입니다. 노동당 서울시당은 17일 10시부터 18일 10시까지 분향소를 지킵니다. 17일 저녁 7시 30분에는 ‘오손도손 토크쇼’도 진행할 생각입니다. 안녕치 못한 밀양뿐만 아니라 온갖 안녕치 못한 일들을 얘기하며 하루를 보낼 생각입니다.

밀양 희망버스

지난 달 30일에는 밀양에 다녀왔습니다. 1박 2일로 진행된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던 것이죠. 송전탑 공사 현장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분주히 밀양으로 떠났습니다. 4시간을 넘게 달려 밀양에 도착하자마자 ‘등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지상에서 공사를 하려면 초반부터 분쟁이 많을 것이 분명하니 산꼭대기부터 공사를 시작하는 게 아니겠냐고 합니다. 산에서 공사가 끝나면 이제 논과 밭으로 내려올 거라는 얘깁니다. 그 때는 공사가 이미 이만큼 진행되었으니 되돌리기 어렵다고 하겠죠. 하루 이틀 보는 장면이 아니지 않습니까?

4.jpg

어쨌든 수십 명의 ‘등산객’들이 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초반부터 무섭게 헬리콥터들이 날아다녔습니다. 밑에 공사자재로 보이는 것들을 매달고 날아가던 헬기는 경찰 버스가 주차된 곳으로 날아가 앉았습니다. 업무 협조가 필요해서인가 봅니다.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밑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른 쪽에서 오르던 등산객인가 봅니다. 그런데 굉장히 익숙한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불법...” 3단어만 들어도 ‘느낌 아는’ 바로 해산 명령입니다. 당장 등산을 멈추고 내려가라는 것 같습니다. 해가 지니 위험할까봐 그런 것인가 봅니다.

저희들은 계속 산을 타면서 생각했습니다. 왜 밑에서 소리를 질렀을까? 그 때 함께 오르던 중앙당의 브레인 정 모 국장님이 “이것은 성동격서 전략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이유인즉슨 경찰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송전탑이 있는 곳까지 등산객을 못 올라가게 막을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으로 오르는 전략이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까 들렸던 소리는 동쪽에서 나는 소리(성동)라는 얘기고, 그렇다면 우리는 서쪽에서 적을 친다(격서)?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의 주인공?

부푼 마음을 안고 한참을 올랐습니다. 하지만 산은 우리에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등산로를 개척하는 기분으로 오르다보니 어느덧 해가 졌습니다. 아직도 갈 길은 한참 남았는데 말이죠. 그리하여 회의 끝에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퇴각하자는 결론이 났습니다. 아쉽지만 산에서는 해가 너무도 빨리 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는 에이스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미 몇몇 등산객들이 송전탑 공사 현장에 깃발을 꽂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도 ‘성동’의 일원이었습니다.

어쨌든 임무를 완수하게 된 것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하고 있는데, 야밤에 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무리들이 보였습니다. 지금 송전탑을 지키는 경찰들과 교대하러 가는 경찰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해가 져서 위험하니 올라가지 마시라고 만류하였지만 민중의 지팡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밀치며 공무를 수행하러 올라가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걱정이 되어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내려가자고 제안하였고, 잠시 실랑이를 하고 사이좋게 내려왔습니다.

5.jpg 6.jpg

저녁에는 전국에서 모인 밀양 지킴이들과 즐거운 문화제를 진행했습니다. 문화제가 끝나고 저희들은 각 마을로 흩어져 주민들과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노동당은 서울, 부산, 경남 당원들이 함께 모여 나라 걱정을 하였습니다. 역시 노동당의 당원들답게 몇몇은 나라 걱정에 밤을 새웠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들처럼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말이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직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제가 술이 덜 깨서일까요?

11월 1일, 정상을 정복하지 못한 어제의 아쉬움이 아침부터 우리를 다시 산으로 이끌었습니다.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등산로 초입부터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왜 막느냐고 물어봤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역시 답이 없었습니다. 정당연설회를 하고자 선관위에 연락을 했지만 공휴일이라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빨간날’ 쉬는 것은 당의 방침이니 선관위를 탓하진 않았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이유도 고지하지 않고 길을 막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전화를 받은 경찰은 그 경찰이 이 경찰이니 출동해봐야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길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산을 타고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위로 올라갔더니 또 다른 경찰들이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위에 얼마나 더 막고 있느냐고. 세 겹 정도가 더 있다고 합니다. 한 칸 올라가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만 좌절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왜 그 길을 걸어갈 수 없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주민들은 수십 년을 자유롭게 왕래하던 길이었을 겁니다. 그런 길을 막고 갈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니 주민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실랑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상경 전 마지막 집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인사를 나눌 때 주민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마움과 억울함과 슬픔과 기쁨 등이 뒤섞인 눈물입니다. 하지만 밀양 지킴이들에게 주민들이 고마울 것도 미안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고맙고, 너무 미안합니다.

7.jpg 8.jpg 9.jpg
25df6ff3ef3572843cf7e18022a4426e.jpg 63eab803369f7d6c2104ee437348eb7e.jpg
10.jpg 11.jpg

너무 고맙습니다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 밀양에서 주민들이 올라와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10월 24일로 기억하는데요, 그 때 한 신부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밀양 주민들과의 연대는 주민들이 불쌍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요지의 얘기였습니다. 오히려 밀양 주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오게 되고,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밀양 주민들의 투쟁 덕분에 한전은 앞으로 어디서든 송전탑을 건설할 때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투쟁 덕분에 보상법이 만들어지고, 그것 때문에라도 누구든지 개발 사업을 할 때에는 민가를 피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게다가 노동당이 힘써 알렸어야 할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문제, 핵발전소 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 환기도 이분들의 투쟁에 전적으로 빚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오히려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밀양에서 너무 먼 서울입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다고 연대하는 마음까지 멀어지면 안 될 일입니다. “함께 살자”는 구호는 이미 식상해 보이지만, 이것만큼 지금의 현실에 맞는 구호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밀양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아야, 우리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노동당 서울시당의 당직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동료시민으로서 밀양 송전탑 건설 싸움에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봅니다.

12.jpg

덧붙여

며칠 전 또 한 분의 밀양 주민이 음독자살을 시도하셨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내가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난다”고 자꾸 말씀하십니다. 저는 어쭙잖지만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니, 꼭 살아서 싸우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하고, 꼭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서비스 선택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1. 목영대, 뉴타운을 뒤집다⑩ 뉴타운, 눈물의 싸움터

    전국을 몰아쳤던 뉴타운 개발의 광풍은 권력자들과 토건족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다. 노동당 당원들은 전국 각처에서 이 터무니없는 사업에 반대하며 서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의정부 뉴타운 반...
    Category컬럼
    Read More
  2. 노동자 중심의 대정부 투쟁

    정권 퇴진 투쟁은 불가피 12월 14일에 열린 노동당 3기 전국위원회 5차 회의에서 ‘대정부 투쟁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의 주된 취지는 국정원 선거 개입 등 대선 부정 시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자행하는 사회공공성 파괴, 노동 탄압, 복...
    Category컬럼
    Read More
  3. 목영대, 뉴타운을 뒤집다➈ 시청을 점령하다

    전국을 몰아쳤던 뉴타운 개발의 광풍은 권력자들과 토건족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다. 노동당 당원들은 전국 각처에서 이 터무니없는 사업에 반대하며 서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의정부 뉴타운 반대투쟁...
    Category컬럼
    Read More
  4. 목영대, 뉴타운을 뒤집다⑧ "가긴 어딜 가? 싸우라며?"

    전국을 몰아쳤던 뉴타운 개발의 광풍은 권력자들과 토건족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다. 노동당 당원들은 전국 각처에서 이 터무니없는 사업에 반대하며 서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의정부 뉴타운 반대투쟁...
    Category컬럼
    Read More
  5. 이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요구하자

    ‘캠핑정치’와 ‘서한정치’의 한계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요즘 보여주는 모습은 현직인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직인 문필가로서의 진면목이다. 김한길 대표가 야당으로서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모습이 계속 ‘서한정치’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년도 채 되...
    Category컬럼
    Read More
  6. 목영대, 뉴타운을 뒤집다⑦ 뉴타운 대신 마을을 만들자

    전국을 몰아쳤던 뉴타운 개발의 광풍은 권력자들과 토건족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다. 노동당 당원들은 전국 각처에서 이 터무니없는 사업에 반대하며 서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의정부 뉴타운 반대투쟁...
    Category컬럼
    Read More
  7. 9월의 마지막 날에 느낀 감동

    9월의 마지막 날에 느낀 감동 - 2013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비정규노동수기공모전 입상작 - 김일웅(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어느덧 달력이 두 장도 남지 않은 요즘, 올 해 들어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9월30일을 선...
    Category컬럼
    Read More
  8. 우리들의 밀양

    우리들의 밀양 황종섭(노동당 서울시당 조직국장) 서울로 옮겨온 밀양 지난 12일 오전 서울시청광장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목숨을 끊으신 유한숙 님을 추모하며, 공사를 멈추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자회견을...
    Category컬럼
    Read More
  9. 목영대, 뉴타운을 뒤집다⑥ "이게 무슨 주민공청회야, 공무원 공청회지!"

    전국을 몰아쳤던 뉴타운 개발의 광풍은 권력자들과 토건족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다. 노동당 당원들은 전국 각처에서 이 터무니없는 사업에 반대하며 서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의정부 뉴타운 반대투...
    Category컬럼
    Read More
  10. 공무원 이전에 국민, 직무 중립성과 '참정권' 구별해야

    *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권리는 늘 위협받아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의 책임을 묻는 야권의 목소리에 2014년 지방선거부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엄정하게 지키도록 하겠다고 화답한 이후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권리는 그야말로 벼...
    Category컬럼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25 Nex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