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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서 연재 중인 찐기춘의 당협위원장 라이프를 미디어스와 협의 하에 동시게재합니다 <편집자>


[지역에서 진보? 지역에서 정치!]30세 위원장이 간다 1편


나는 올해로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연초에 실시된 당직선거에 출마해서 지역 당원협의회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20대를 보내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내가 서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당협 위원장이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서른이 되면서 삶의 어떤 기점을 지나는 것처럼 당 활동에서도 중요한 기점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함께 당선된 부위원장 김예찬과 선거 전부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대학생 시절에 철거투쟁현장에서 만나 친구가 되어 밴드를 결성해 공연도 하고, 같은 시기에 각자 중앙당과 서울시당의 대외협력부장이 되어 활동한 사이였다. 둘 다 강남에 살고 있어 하루 일과를 마치면 함께 차를 마시고 술을 먹는 동네친구이기도 했다.


입당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들은 말은 ‘지역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진성당원제로 운영되는 진보정당에서는 대중을 만나고 당원을 조직하는 기반으로서 골간조직인 지역 당협이 튼튼하게 뿌리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 공감하고 동의하면서도 정작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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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기 연주를 하고 있는 노동당 진기훈 강남서초당협위원장(좌측)과 김예찬 부위원장. (사진=진기훈)


당직선거에 출마하면서 우리는 ‘당협 활성화’를 우선 목표로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개별적인 연락과 당원 모임을 통해 계속해서 당원들을 만나고, 지역 의제에 대응해서 사업을 기획하는 것으로 당협을 내외양면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당선이 되었고 임기가 시작되었다. 지지하고 뽑아준 당원들에게 활동으로 보답하는 일만 남았다.


당선 후 첫 운영위원회를 열고 집행부를 구성하기도 전인 지난 5일,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구룡마을이 철거를 당하게 됐다는 연락이 왔다. 주민회관이 철거 위기라 오늘내일 하는데 함께 지키러 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밤 늦게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주민 1백여 명과 연대하러 온 학생들이 열 명 남짓 회관에 모여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인데도 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잠들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강남구청의 논리는 회관 건물이 존치기한이 만료되었고, 당초 신고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소방시설 미비로 안전하지 않으므로 ‘방치했을 시 공익을 심히 해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건물에 문제가 있다면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지시하거나 재차 사용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구청의 소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회관은 작년 11월 구룡마을에 화재가 난 이후부터 이재민 수 가구를 수용하고 있었다. 당장 여기서 생활을 꾸려가는 가족들이 있는데 철거를 단행하는 것은 얼마나 공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의문도 생겼다.


새벽 다섯 시가 지나자 경찰이 도착했다. 버스 열두 대가 줄을 이었다. 개포중학교에는 철거용역을 태운 승합차들이 도착했다. 구청직원들도 속속 도착했다. 주민들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회관 현관부터 연좌하면서 집행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렸다. 열 명뿐인 우리 연대 대오는 가장 앞줄 회관 입구에 스크럼을 짜고 섰다. 계속 모여드는 용역과 직원과 경찰을 보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압도적인 규모였다. 철거인력은 주민의 두 배쯤으로 많고, 혹시 모를 저항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는 경찰 기동대가 네 개 중대였다. 소방차가 두 대에 구급차도 한 대. 굴삭기 세 대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배치가 끝나자 강남구청 주택과 직원이 앞으로 나와서 행정대집행 영장을 낭독했다. 한 주민이 “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두 시간도 못 기다려줍니까” 하고 소리쳤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주민이 언급한 판결이라는 건 주민 측에서 건 대집행 취소 소송에 대한 얘기였다.


집행이 시작되고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용역들이 주민들을 끌어내고 구청직원들은 가재도구와 집기를 들어내 옮겼다. 압도적인 인력차이에 주민들은 변변한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끌려나왔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나오고 소리를 치는 속에서, 제일 먼저 끌려나온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굴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물음에는 “법대로 할 뿐”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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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삭기를 동원해 마을회관 벽을 부순 상황. (사진=진기훈)


주민들이 모두 끌려나오고 용역들이 빠지자, 굴삭기가 진입했다. 커다란 팔로 긁어내자 벽이 종이처럼 찢겨져 나갔다. 외벽이 모두 철거되고 이제 도무지 막을 방도가 보이지 않는 그때, 누군가 판결문을 들고 뛰어왔다. 법원이 추가 심문을 위해 13일까지 집행을 정지하라는 명령을 낸 것이다. 철거는 중단되고 굴삭기가 떠났지만 건물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13일의 판결은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는 것으로 났다. 이미 반파되어 기능을 상실했으므로 계고 처분을 취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구청은 이 점을 노리고 서둘러 철거를 단행했을 것이다. 소송의 절차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행사한 구청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결국 주민회관 철거는 16일이 되어 마저 집행되었다. 이 날은 강남 시내 한복판에서도 철거시도가 있었다. 작년부터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라떼킹 강남역점이었다. 어서 모여달라는 긴급한 전화를 받고 뛰어갔을 때의 상황은 엉망진창이었다. 용역 40명과 경찰 1백명이 함께 길을 막고 있는 와중에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들어 옮기고 있었다.


라떼킹은 가게 앞 공간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건물주가 이 컨테이너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그 판결이 나오는 것이 25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판결이 나기도 전인데 건물주가 독단으로 크레인을 불러 훔쳐가려 하고 경찰이 이걸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대낮의 절도극에 경찰은 왜 들어와 사람을 끌어내고 있는 건가. 소속을 물어도 대답이 없고 채증용 카메라만 들이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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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인으로 철거되는 라떼킹 전면에 세워졌던 컨테이너. (사진=진기훈)


다음날 도둑맞은 컨테이너를 강서구까지 가서 찾아왔는데 이걸 가게 앞에 내려놓으려니 또 용역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훼방을 놓았다. 결국 크레인 차량에 컨테이너가 실려 있는 채로 용역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연휴 내내 이어지고 있다. 을미년 새해다. 약속 한 듯이 연휴 전에 철거를 감행한 사람들은 어떤 명절을 보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괴롭힘 당하지 않고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정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협 위원장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고 배워보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올 한 해 잘 부탁드립니다.



진기훈 / 노동당 강남서초당협 위원장

일명 '찐기춘'. 2011년 명동 마리 등 철거투쟁을 시작으로 진보정당 운동에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됐다. 통합진보당 창당으로 당시 진보신당이 둘로 쪼개지자 중앙당에서 상근을 했다. 2012년 총선 때는 진보신당 팟캐스트 '찐기춘의 개그펀치'라는 코너에 출연해 집회에서 부적절한 개그를 했다가 폭행당한 사연 등을 소개하며 남다른 감각을 과시했다. 이후 진보정당에 재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당협위원장으로 진보정당운동 일선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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