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광장 둘째 날 후기] Anarchy in the Seoul!
"Don't know what I want, but I know how to get it."
sex pistols - Anarchy in the U.K 中
그 전날 희망콘서트에서 너무 과격하게 놀았는지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집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이다. 얼른 챙겨 입고 거리로 나왔더니 골목길에서부터 찬바람이 쌩쌩 분다. 느낌이 영 좋지 않다.
광장에 도착하니 처참한 광경이 펼쳐진다. 바람이 세게 몰아쳐서 텐트들이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특히 깃발도 세개씩 꽂아놓고 위용을 자랑하던 진보신당 천막은 아주 박살이 났다. 경찰한테 당한 것도 아니고 바람에게 당했으니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 진보신당은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만드는 정당이니까...
대충 텐트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광장 한켠에서 아는 얼굴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희망광장보다 열흘 이른, 3월 1일부터 서울광장을 점령하고 텐트촌을 펼친 '서울 점령자들'이다. '서울 점령자들'은 이미 지난 겨울부터 여의도 Occupy를 진행하던 대학생사람연대와, 기본소득 운동을 펼쳐나가려는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가 합세하여 시작한 프로젝트다. 매주 공연이나 영화제를 열겠다고 하는데, 오늘이 바로 첫 영화제라고 한다.
무슨 영화를 트냐고 물었더니, 장발의 뮤지션 '단편선'이 <쥬빌리jubilee>라는 섹스 영화를 틀거라며 히히 웃는다. 무슨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같이 보기로 했다. 천막도 날아가는 칼바람 속에서,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설치했다. 스크린이 계속 바람에 넘어져서, 의자에 책장에 전단지 박스까지 다양한 물건으로 스크린을 고정시켰다.
무식한 나나 단편선은 <쥬빌리>가 섹스 영화라는 소문을 듣고 키득거리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막상 틀고 보니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였다. 1970년대 영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펑크 무비인데,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잠깐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1970년대 후반의 영국은 '대영제국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폐 가치 하락과 만성 인플레이션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였으며, 실업률은 20%에 달했다. 특히 청년의 대부분이 실업 상태였을 정도로 청년 세대의 사정은 열악해졌다. 이러한 사회에 대한 분노 속에 등장한 문화적 조류가 바로 반항의 상징, '펑크'였다. 그 당시 대표적인 펑크 밴드인 섹스 피스톨스의 데뷔 싱글 이름은 'Anarchy in the UK'였다. 청년들의 절망과 분노 속에 '펑크' 문화는 빠르게 퍼져갔다.
영화 <쥬빌리>가 만들어진 1977년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25주년이 되는 해였다. 영화 제목인 jubilee(희년)는 바로 이 25주년 기념일을 뜻한다. 섹스피스톨스의 'God Save The Queen' 역시 여왕 즉위 25주년을 겨냥해 발표된 것이다. 16세기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살인과 방화로 무참히 파괴된 현대 런던의 뒷골목을 관찰한다는 설정의 <쥬빌리>는 청년들의 표적을 잃은 분노와 그러한 분노 마저도 시장에 편입시키는 자본주의, 무너진 제국의 신화 등을 어지럽게 뒤섞어 놓은 영화였다. 도박판을 연상시키는 투기자본주의, 대놓고 기업화 되는 대학, 풀릴 길 없는 청년 실업 등에 분노하여 시청을 점령한 '서울 점령자들'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한 영화였다. 슬프게도 거센 바람이 계속 스크린을 넘어뜨렸고, 객석이었던 텐트까지 날려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영화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상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우리는 분노의 춤을 추었다.
'서울 점령자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희망광장 동지들은 광장 무대에 올라가 몸짓을 배우고 있었다. 날씨는 추운데, 사람은 적어서 좀 쓸쓸해 보였다. 광장을 주시하고 있는 경찰들 때문에 텐트를 추가 반입하지 못했고, 많은 동지들은 여전히 비닐만 덮고 잠을 청했다. 대책 없는 꽃샘 추위 속에, 희망광장 둘째 날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