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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 9일, 임흥순 작가의 <위로공단>은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56회 시상식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이었다. 

 이에 <미래에서 온 편지>(2014년 2월호) 글을 R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예술은, 삶은, 그리고 정치는 과정과 믿음입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높이 솟아오른 빌딩들 덕분인지 오히려 황량해 보이는 도시의 겨울을 가로질러 DMC첨단산업센터로 들어섰다. 따뜻한 제주도에서 올라와 추위에 서툰 귤들이 테이블 사이에 마주 앉은 남자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임흥순 작가는 사무실에서 촬영 막바지에 다다른 <위로공단>을 다듬어가고 있었다. 2010년에 금촌예술공장에 입주했을 때부터 기획해온 <위로공단>은 구로공단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에게 시선을 맞춘 다큐멘터리이다. 공간과 여성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두었다가 점차 현재의 여성노동문제로까지 이어졌고, 노동을 둘러싼 인식과 감정 혹은 공포를 담아내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2014년에 영화제를 통하여 선보일 예정이다.  


크기변환_16 임흥순 2 새로운 작품 위로공단을 준비하고 있다.JPG

임흥순 새로운 작품 위로공단을 준비하고 있다



회화를 전공한 임흥순 작가는 장르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 활동을 펼쳐왔다.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삶을 기록하며 민중 혹은 대중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삼았다. <매기의 추억>(2006)과 <월남에서 온 편지>(2009) 그리고 <행복으로의 초대>(2009) 등의 개인전을 가졌고, 그중 <비는 마음_제주 4․3과 숭시>(2011)는 다큐멘터리 <비념>(2013)을 잉태했다. 


주민 속으로 들어가는 프로젝트 활동 또한 꾸준히 이어왔다. 성남의 공간과 역사를 탐구한 ‘성남 프로젝트’(1998~1999)를 비롯하여 ‘믹스라이스’(2002~2005)와 ‘보통미술잇다’(2007~2010) 등에선 공동체 문화예술활동을 시도했다. 특히 금천예술공장 2기 작가로 입주하여 ‘○○수다스러운’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금천구 주부들의 모임인 ‘금천미세스’의 산파 역할을 했고, 그 결과로 평범한 기혼여성들을 예술 활동의 주체로 이끌어냈다. 이처럼 임흥순 작가는 역사와 개인, 사회와 계층, 도시와 공간, 그리고 여성에 시선을 두면서 좀처럼 볕을 쐬지 못했던 그늘 아래를 들춰보고 있다. 



가난한 답십리 아이, 세상의 그늘을 보다


1969년에 서울 답십리에서 가난한 노동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임흥순 작가는 ‘세상의 주변부 감수성’을 지니고 성장했다. 당시에 답십리는 달동네에 가까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아파트라고 해봐야 4층짜리가 전부였고, 도로보다는 개천과 밭이 많았으며, 아이들은 반딧불을 볼 수 있는 산과 들에서 놀면서 하루를 보냈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가족의 거처는 점점 높은 곳으로, 그리고 점점 좁은 곳으로 옮겨졌다. 오랜 주민들이 하나둘 다른 동네로 떠나갔지만, 떠날 데가 없는 가족은 다시 아래, 즉 지하로 이사했다. 서울의 가난한 생활이란 차츰 높이 오르다가 어느 순간에 처음보다 훨씬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서예와 미술에 재능이 있는 자신을 발견했으나, 미술은 예나지금이나 돈이 많이 드는 진로였고, 가정형편 때문에 과외 같은 것을 받아볼 기회는 좀처럼 얻을 수 없었다. 아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도 허다한 환경이었다. 


“한번은 반에서 싸움 잘하는 아이가 여자아이한테 돌을 던지는 모습을 봤어요. 제가 대들었죠. 물론 두들겨 맞았죠. 그런데 제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어요. 제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그 녀석 얼굴에 떨어지니까 질렸는지 그만두더군요.”


성격은 내성적이었지만 임흥순 어린이의 마음속에는 불의를 참을 수 없는 ‘악다구니’ 같은 것이 자라고 있었다. 가족과 답십리를 통하여 계급과 공간을 바라보게 된 그가 사회 시스템의 불평등 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경로였다. 임흥순 작가가 임대아파트라는 공간에 관심을 두게 된 과정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9년에서 2010년까지 ‘보통미술잇다’의 이름으로 등촌주공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한 <만나요, 우리 프로젝트>는 이 시선의 걸음으로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가난과 함께 나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난이 고립되어 있지요.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데도 가난이 가려지는 공간을 임대아파트가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의 공동체성에 대한 작업을 해보았는데, 사실 회의적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자신보다 더욱 어려운 사람들을 꺼려요.” 



실패의 역사가 낳은 길, 평범한 이들의 예술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부탁으로 학원을 저렴하게 다니면서, 그리고 어떤 학교에 낙방한 끝에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술고등학교 교육비는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는 돈을 빌려서라도 아들을 도우려했으나 아버지는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술학도가 되고 싶은 꿈을 품었지만 이번에는 대학교 진학이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해병대에 지원했는데 그마저도 떨어졌다. 청년 임흥순은 그렇게 ‘실패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병역을 마치고 26세에 들어간 대학교의 생활 역시 여의치 않았다. 밤 8시부터 자정까지 김치를 배달하고, 주말에는 TV경마장에서 일했다. 때론 자장면을 배달했다. 회화 작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얻기 힘든 생활이었다. 30대에는 이태원에서 ‘실수를 하면서’ 놀았다. 임흥순 작가는 그때의 ‘실수에 대한 미안함’도 자신의 작품 활동에 녹아있는 것처럼 생각된다고 말한다. 속죄의 마음이랄까. 


이러한 과정에서 임흥순 작가의 두 가지 방식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 들여다보기’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준 만들기’이다. 


첫 작업은 가족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아마 대학원을 졸업한 해에 연 첫 개인전 <답십리 우성연립 지하101호>(2001)가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곡절과 직결된 도시인 성남에 대한 공동 작업을 시작했고, ‘성남프로젝트’와 ‘성남공공미술프로젝트’(2006) 그리고 ‘성남도큐먼트’(2007)로 계속되었다. 그렇게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았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며 우리의 ‘아버지들’을 기록한 <월남에서 온 편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렇게 개인사에서 사회와 역사로 이야기를 확장해나갔다.


한편, 실패의 역사를 적어온 임흥순 작가는 더 이상 심사와 시험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미술을 전공했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생각해본 결과는 주민(사람)과 함께 하는 작업이었으며, ‘커뮤니티 아트’로 발길을 움직였다.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에서 과정과 관계로서의 예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부분들을 찾고 싶었습니다. 눈에 당장 보이는 효과보다는 과정과 지향이 중요합니다. 이것의 나의 직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민중도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장점과 재능이 있는데도 발견할 기회를 얻을 수 없지요. 재능은 꼭 기술만이 아닙니다. 감수성과 감정도 재능이고, 마음과 놀기도 재능이죠. 일상 자체가 큰 감동이지 않습니까!”



민중과 여성의 시선을 따라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한 임흥순 작가는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주부들을 대상으로 미술워크숍을 진행한다. 주부들이 자기표현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금천구에 사는 기혼여성이라는 뜻의 ‘금천미세스’가 탄생했다. 이 워크숍에 참가한 19명 중 9명이 스스로 단편영화와 예술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예술가 그룹이 되어 2012년에 금천예술공장에 작가그룹으로 당당히 입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근래 임흥순 작가의 활동에서 두드러지는 관계가 여성이다. ‘금천미세스’뿐만 아니라 <비념>도 여성이 계기이자 주인공이다. 물론 이전부터 주변의 여성들, 그러니까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지켜보니 결혼한 여성들의 삶은 참 힘들지요. 하지만 그들은 지혜롭습니다. 제도권에 있는 남성에 비하여 여성의 생각이나 화법에는 현명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선지 임흥순 작가의 작품들은 선동하거나 과격하지 않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후에 흔적들을 찾아 전시한 <행복으로의 초대>는 흩어져 있던 이미지들과 재개발, 그리고 군부대의 이미지들을 말없이 모아냈다. 제주 4․3항쟁을 다룬 <비념>조차 관조하고 경청하는 분위기를 품었다. 미술을 전공한 작가의 미학적 기법과 함께 여성의 화법을 방식으로 끌어안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안으로 삭이는 여성들의 화법은 남녀 구분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상황과 어렵게 말하는 방법을 닮았습니다. 여성만이 아니라 우리 민중의 현실과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지점들을 어떻게 보여주고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물론 나를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내가 소중하기에 남도 소중하지요. 그렇게 각자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내가 소중하니 당신도 소중합니다


임흥순 작가는 <월남에서 온 편지>를 위하여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을 인터뷰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전쟁 때 다리를 잃은 분을 인터뷰하는데 꿈 이야기를 하더군요. 잃어버린 다리가 온전히 있는 꿈이었답니다. 잠에서 깨고 나니 고통스러웠대요. 그런데 저도 꿈을 꾸었습니다. 제 다리가 없어진 꿈이었죠. 깨고 나니 제 다리가 온전히 있는데, 그때의 심정을 뭐라 표현해야할지….” 


임흥순 작가는 또 다른 나이자 아버지인 대상에게 감정이입하고 있었다. 실은 그의 무의식 속에는 자신과 동일시하는 인물들이 있다. 제주 4․3항쟁 당시에 젊은 나이로 무장대 2대 총사령관이었다가 죽음을 맞은 이덕구(1920~1949)와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으로 85크레인에 올라가 12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끝에 목숨을 끊은 김주익(1963~2003)이 그들이다. “그들이 곧 나”였다. 그리고 이덕구는 <비념>, 김주익은 <위로공단>과 무관하지 않다.


오랜 준비 끝에 2013년에 개봉하여 호평을 받은 <비념> 역시 ‘아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또한 여성들, 그러니까 <비념>의 공동기획자이자 프로듀서인 김민경 씨와 그녀의 외할머니 강상희 씨의 도움이 컸다. 김민경 프로듀서의 외할아버지이자 강상희 할머니의 남편인 김봉수 씨는 노형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4․3의 회오리 속에서 경찰에게 총살당했다. 이들의 이야기가 전시회 <비는 마음_제주 4․3과 숭시>를 낳았고, 첫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인 <비념>으로 다리를 뻗어갔다. 

 

보는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정작 자신은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다는 <비념>은 제주도의 풍광 속으로 들어서며 각자가 조금씩 말을 걸도록 하는 작품이었다. 임흥순 작가 개인에게도 전환점이었다. 그전까지는 자신을 위해서이자 예술의 의무와 목적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면, <비념> 이후는 타인을 위한 작업으로 가게 된 것이다. <위로공단>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16 다큐멘터리 비념.JPG

다큐멘터리 비념



과정과 믿음을 말하는 당원 임흥순


2012년 4․11총선을 앞두고 문화예술위원회가 주도한 ‘문화예술인 269인 진보신당 지지선언’에 동참한 임흥순 당원은 대화 중간 중간에 노동당에 대한 생각을 물을 때마다 예술에 대한 자신의 지론과 일관성 있는 답을 돌려주었다. 


“<비념>을 본 관객의 수는 적었고, 제 입장에서 실망도 했지만, 관객 2,300명이 23,000명의 역할을, 아니 230,000명의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무엇’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도 중요하지요. ‘빨리’보다는 ‘어떤 과정’을 밟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노동당의 녹록치 않은 현실과 일부 당원들의 안타까움을 전했을 때에도 자신이 삶과 다르지 않은 답이 돌아왔다.


“재능은 기술만이 아닙니다. 기술이 있어도 신뢰가 없는 기술은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을 갖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제 역할이었죠. 지금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힘들겠지만, 이런 과정이 켜켜이 쌓여갈 것입니다. 대중을 따르자고 합니다만 대중은 시시각각 변해요. 길게 보고 휘둘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굳건하게 갔으면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승리의 길 아닐까요.”


그는 마흔 전까진 채우려고 했다면 이제 하나씩 놓아가는 단계에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다시 처음, 그러니까 태어났을 때로 돌아가는 중일지 모른다면서. 임흥순 작가는 사회적으로 연약한 사람들,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언어화할 수 없지만 가치 있는 부분들, 그것들을 매개하고 중계하는 역할을 꿈꾸고 있다. 


“이것이 예술이죠. 이것이 나를 찾아가는 길이고요.”


크기변환_16 임흥순 작가의 작업 기록물들.JPG

임흥순 작가의 작업 기록물들



*한겨레 기사 읽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90473.html



[글 사진: 나도원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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