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계, 두 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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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들에게는 숫자와 공식이 세상을 설명하는 아름다운 어떤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숫자의 무정함은 가끔 우리 말문을 막을 때가 있다. 지난주에 국제노동기구(ILO)와 빈곤 퇴치를 위한 국제 조직인 옥스팜(Oxfam)이 발표한 보고서에 나온 숫자들이 그러하다. 경제 전망은 좋지 않고, 이에 따라 실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하지만 전 세계 1퍼센트가 소유한 부가 나머지 인구의 절반이 가진 부보다 더 크다는 현실은 그 거리만큼이나 끔찍하다.
ILO는 매년 「세계 고용과 사회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내는데, ‘2016년의 추세’가 1월 19일에 발표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 전망이 계속해 좋지 않은 가운데, 작년 말 전 세계 실업자는 1억 9천 7백 1십만 명이다. 이는 1년 사이에 백만 명이 늘어난 것이며, 경제 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2,700만 명이 더 많은 것이다. 문제는 전망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올해에만 230만 명의 실업자가 늘어날 것이고, 2017년에는 추가로 110만 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실업의 정도뿐만 아니라 고용의 질도 좋지 못하다. 취약한 일자리에 있는 사람은 현재 15억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체 고용의 46퍼센트가 넘는 숫자이다. 남아시아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 이 숫자는 70퍼센트까지 올라간다. 또한 남녀 차이도 크다. 일부 지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취약한 일자리에 있는 경우가 25-35퍼센트 정도 높다.
ILO 보고서가 나오기 하루 전날 나온 옥스팜의 보고서인 「1퍼센트를 위한 경제」는 ILO 보고서에 드러난 음울한 전망의 정반대편을 보여준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62명이 소유한 부가 가난한 36억 명이 가진 것보다 더 많다. 2010년에 388명이었던 것에 비해 1/5로 줄어든 것이다. 지난 5년 사이에 62명이 가진 부가 44퍼센트나 늘었기 때문이다. 이는 5,000억 달러가 넘는 액수이다. 반면 같은 기간에 36억 명이 가진 것은 41퍼센트나 줄었다.
옥스팜은 이런 극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우선적인 조치로 ‘조세 피난처’ 시대의 종식을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7조 6천억 달러에 달하는 개인의 부가 역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 부에서 나오는 소득에 제대로 세금을 부과할 경우 각국 정부는 매년 1,900억 달러의 세입을 더 올릴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빈곤을 퇴치하고 극심한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국 정부는 최저 임금을 생활임금에 근접시켜야 하며, 남녀 사이의 임금 격차도 줄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이는 극심한 불평등의 상황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 불평등과 자산 불평등 모두 심각한 상황이며, 이로부터 발생한 가계 부채 역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지 오래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정부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경제 위기’라는 말로 바꾸어 결국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는 해법을 제출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모습이다. 하지만 위기의 시대에는 더 넓은 시야와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다. 이미 IMF 같은 기관에서도 폐기한 공급 주도 경제학 혹은 ‘낙수 효과 이론’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적인 원칙과 그에 따른 경제학이 필요한 시대이다.
극단적인 부의 양극화로 인해 우리에게 세계는 두 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의 세계’는 하나이며, 그 세계는 정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는 세계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말을 쓸 이유가 없다. 경제 위기와 저성장, 극심한 불평등, 생태 위기 시대에 보편적 인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체제를 새로 디자인하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당은 조세 개혁을 주춧돌로 하고,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기본소득 등을 기둥으로 하는 새로운 집을 설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설계도가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는 다양하고 거대한 흐름의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