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과감한 복지 확대와 연동된 총조세 부담률 목표 걸어야
- ‘부자 증세’ 논란 속에 증세 정치 제대로 하려면
복지 확대를 내걸었으면서도 선거 공약에서는 증세 문제를 최대한 피해 가고 싶었던 문재인 정부의 의도와 달리 최근에 증세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과거의 낙수효과가 폐기되고 소득 주도 성장론이 새로운 국정 운영 기조로 등장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다. 정부 여당이 증세 정치의 시동을 제대로 걸기를 바란다면 우리 사회가 한 해에 생산한 부가가치의 총액(GDP)에 대비해 사회복지 지출을 어느 수준으로 높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총조세 부담률을 어느 수준으로 가져가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합당하다. 중산층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을 증세의 우호세력으로 돌려 기득권의 강고한 ‘세금 폭탄론’을 깨는 설득력 있는 논리는 ‘과감한 복지 확대와 이를 위한 과감한 증세’일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의 세제 개혁안이 언론에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증세 논의는 현행 소득세율은 그대로 둔 채 최고세율 40%가 적용되는 과표 구간을 기존 5억 원 초과에서 3억 원 초과 5억 원 이하로 낮추겠다는 것, 상속·증여세는 자신 신고 시 내야 할 세금의 7% 감면을 3%로 낮추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로는 소득 주도 성장은커녕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기조의 연장일 뿐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인 증세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증세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논의가 조금 진척됐다. 과세표준 5억 원 초과 소득에 대한 현행 소득세 최고세율 40%를 42%로 인상, 과세표준 2천억 원 초과 구간 신설과 이에 대한 현행 법인세율 22%를 25%로 인상, 금융상품 거래로 인한 자본소득 세율 인상 등이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한 발 더 나간 증세 방안은 당연하고 환영할 일이지만 국정 운영 기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수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2013년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8.8%지만, 우리나라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3.7%에 불과하다. OECD 국가들 수준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소득 3억 원 초과 구간에 대한 최고세율을 50%까지 끌어올리는 과감한 증세가 필요하다. 법인세 역시 2천억 원 초과 과표 구간이 아니라 1천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여기에 최고세율을 30%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
소득세 인상에 대해 ‘표적 과세’니 ‘세금 폭탄’이니 하는 주장은 많이 벌수록 누진적으로 많은 세금을 내는 세금의 본질을 외면하는 선동에 불과하다. 고소득일수록 한계소비성향이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가 누진적으로 걷어 재정 정책을 펴는 것이 경제에도 유리하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소득 불평등과 이로 인한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초래된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의 고용과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은 경제학의 관점에서든 실물 경제의 통계에 의한 것이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법인세를 인상하는 것이 이익 대부분을 사내에 유보하는 재벌 기업들로 하여금 고용과 투자를 늘리도록 유인하는 효과적인 정책이다.
자본이득세에 대한 세율 인상 논의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지만 과연 한국의 비정상적인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바로잡을 수준이 될지는 회의적이다. 우리나라는 비상장 주식의 양도소득에 대해 전면 과세하는 반면 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다. 2017년부터 상장 주식 양도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범위를 넓히긴 했지만, 상장 주식의 양도 차익에 대해 전면 과세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해괴한 정책이다. 차제에 전면적이고 누진적인 과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밖에도 상속·증여소득, 임대소득, 금융소득 등 소위 불로소득에 대한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한 분리과세나 비대하게 발달한 비과세 감면제도가 전면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조세 제도의 핵심적인 문제는 결국 어느 수위의 복지를 하기 위해 부담률을 얼마로 끌어올리며, 그 주요 부담 계층을 누구로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OECD 국가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사회복지 지출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총조세 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이를 위해 재벌 대기업, 고소득, 불로소득에 대해 중과세한다는 원칙은 대다수 국민에게 설득력을 가진다. 이런 논리와 계획이 섰을 때만 모처럼 시동이 걸린 증세 정치가 ‘복지를 위한 증세 동맹’을 형성해 성공할 수 있다.
2017. 7. 25
노동당 정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