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지방자치마저 군사정권시대로 퇴행하나?
- 소위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어제(12월 8일)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소위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은 이 정권의 퇴행적 사고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동 계획은 자치 시군구를 행정구로 전환하며 기초의회를 폐지하고,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며, 교육감 직선제를 폐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방자치 발전은커녕 아예 풀뿌리를 뽑겠다는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성장과 지속을 위해 지방자치가 담당하는 역할은 분분한 설명을 필요치 않을 정도로 중요하고 명확하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방자치는 중앙정치의 관심이 미치기 어려운 실생활의 현장에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를 통해 심화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국가차원으로 승화되면서 다양하고 깊이 있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지방자치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기능을 부담스러워했던 사람들이 바로 군사정권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했던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어떻게 하든 지방자치를 실시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유신헌법은 부칙 10조에 “이 헌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전두환 정권의 80년 헌법 역시 부칙 10조에 “이 헌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구성하되, 그 구성시기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했다.
두 헌법은 모두 본문에 지방자치를 규정하고 있었다. 정통성 없는 쿠데타정권이 만든 헌법이지만 그 외양만큼은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장식이었다. 본문에 규정된 지방자치를 장식으로 전락시킨 것이 바로 이 부칙 규정들이었다. 유신헌법에서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라는 한시조항을 둔 것은 아예 지방자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보다는 조금 세련된 형태이긴 하나, 80년 헌법은 시기와 기준을 알 수 없는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구성’한다는 부칙을 두었다. 이 역시 풀뿌리 민주주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군사독재정권이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과 가능성이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가 확산되어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질수록 군사독재정권의 안정과 유지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유신을 통해 종신대통령을 꿈꿨던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압살한 장본인이었고,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또한 민주주의의 적이었다. 민주주의를 죽이려 했던 자들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지방자치를 꺼린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이들 군사정권이 해체되면서 비로소 지방자치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동 위원회의 종합계획은 이렇게 굴절된 역사 속에서 겨우 피어나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지방자치를 군사정권시대로 되돌리는 퇴행적 발상이다. 지방자치를 행정작용의 일부 정도로 생각하는 단순하고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노동당은 이번 종합계획이 근본적으로 방향을 잘못잡고 있으며, 독재시대의 수준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결과를 나을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이 정권이 지방자치마저 숨통을 막아버리려고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계획은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과정을 통해 처음부터 다시 기획되어야만 한다. 지방자치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사람들이 밀실에 모여 사회 전체를 군사독재시대로 되돌리려는 듯한 내용을 짜맞춰 들고 나오면서 ‘발전’을 운운하는 건 주권자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2014년 12월 9일
노동당 정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