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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진보신당에 있으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단연 조승수 후보의 국회의원 당선이었다. 인천에서 울산북구로 선거 지원을 나간 진보신당 당원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뛰었다.  그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울산북구의 웬만한 골목길까지 장악한 2인 1조의 주황색 선거운동원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을 따라다니며 끈질기게 말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좀 더 높은 여론조사 지지도를 끌어내기 위해 밀착형 선거운동이 한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날. 오전까지 울산 북구를 누비던 그 주황색 점퍼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민노당 당원들이 시민들이 없는 공터 한켠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물론 그 순간에 우리는 방송3사 기자들을 불러놓고 만세삼창을 하며 단일화 확정 기자회견을 하였다. 한쪽에서는 슬픔의 눈물을 또 한쪽에서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의문이 들었다. 조승수 후보는 그야말로 민노당 분당을 실질적으로 이끈 선도탈당파이고, 김창현 후보는 종북주의의 대표 인물인데,  헤어진지 1년도 안되어서 다시 같은 테이블에 앉아 꼭 선거연합을 얘기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 그 울산북구의 여론은 한마디로 단일화되기 전에는 표찍어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단일화는 주어진 객관적 조건이었다. 실제로 당시 후보단일화가 되지 않았다면 진보신당의 원내 1석은 불가능하였다. 진보신당은 자력으로 한나라당을 이긴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세력 공동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발 이놈의 "지긋지긋한" 민노당 신경쓰지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진보정치 제대로 할 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나와 민노당과의 인연(정확히 말하면 '악연')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은 2000년 민노당 창당을 기억하지만 실제 1998년에 현 사회당의 전신인 '청년진보당'이란 진보정당이 있었다.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이 중심이 된 이 세력은 주사파의 진보정당 진출이 시작되기 전에 좌파가 먼저 진보정당의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 때문에 서둘러 창당을 했었다. 당시 청년진보당 사람들은 진보정당의 적통은 자신들이며, 민노당은 경쟁을 통해 제압해야 될 세력이라 생각했다. 나는 변형된 주사파 정당에 발을 디딜 마음이 없었고 당연히 청년진보당에 가입원서를 내었다. 정당투표제도가 없던 2000년 총선에 서울 전지역구에 출마를 한 청년진보당의 후보들은 당시 서울지역의 민노당 후보들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하며 선전하였다. 당시 국민들의 눈높이에서는  청년진보당이나 민주노동당이나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등에 업은 민노당은 2002년 지자체 선거에서 성과를 거두고 그 여세로 대선 TV토론의 출마 자격을 얻고 마침내 2004년 총선에서 원내 10석을 얻게 된다. 이로써 민노당은 명실공히 진보정당의 대표주자가 되고, 그에 반비례 하여 사회당은 존재감을 완전히 잃어갔다. 나는 이를 "진보의 쏠림 현상"으로 진단한다.


2008년 민노당의 분당으로 일군의 동지들이 민노당을 뛰쳐나올 때 나는 몹시 흥분하였다. 원래 민중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와 진보정당은 좌파의 오랜 투쟁의 결과물이었으며, 저 악명높은 민주대연합론과 보수야당 추종주의를 선택해온 자주파에게 진보정당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비록  자주파에 의해 민노당이 장악되어 있지만,  종북주의에 대한 비판 여론과 노회찬 심상정 등 스타 정치인의 힘을 빌리면 민노당을 힘으로 제압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이 진보정당의 대표 자리를 꿰찰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어차피 총선이야 창당한지 한달도 안되서 치른 것이고 본 게임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지자체 선거였다. 진보신당이 광역단체장 다수 출마 전략을 택한 것은 정당득표율을 민노당 보다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엠비 태풍이 몰아치면서 반엠비 대열에서 이탈한 진보신당은 실패하였고 민노당은 줄 것과 받을 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지자체 선거에서  약진을 거두었다. 결국 민노당은 2008년 위기를 극복하고 부활하였다. 진보신당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민노당의 지지율을 뛰어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그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유감스럽게도 "진보 쏠림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회당은 실패했고, 진보신당은 여전히 민노당의 그늘에 가려 있을까? 진보성향의 유권자들(민주당이 아닌 진보정당)은 대략 8%에서 10% 정도를 기록하는데, 이들은 같은 진보라도 찍어서 될만한 진보, 즉 "진보의 대표주자"에게 표를 몰아주고 싶어한다. 사표방지심리 같은 진보쏠림현상이 투표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국민은 보수와 진보는 구분할 줄 알아도 진보와 좌파를 구분할 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민노당과 사회당의 정책적 차이 혹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정책적 차이 등은 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같은 진보정당이면 누가 대표주자인가를 보고 찍는다. 


진보의 대표자리를 내준 소수파 진보정당들은 민노당과의 차별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좀 더 급진적인 정책을 취한다. 한 때 사회당은 반자본주의-반조선노동당을 선거 모토로 내세운적이 있다. 그럴수록 관념적 급진성과 진보정당이라는 자기 위상 속에 혼란이 발생하였다. 또한 사회당은 가장 차별받는 자와 연대한다는 취지로 장애인 단체와 적극적인 연대를 해왔는데 그럴수록 정당이 원래 취해야 할 국민을 상대로한 다수파적 정치운동에서 멀어져야 했다. 


시민단체라면 같은 분야의 시민단체가 많을 수록 좋을 것이다. 환경운동 단체가 많으면 많을 수록 환경운동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러나 정당은 다르다. 어떤 진보정당이 잘 되면 비슷한 성격의 다른 진보정당은 추락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선거에서 일정한 국민 지지율을 얻지 못하는 정당에는 국고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등록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정당을 구조조정 시키는 제도가 있다.  결론은 한국에서 복수의 진보정당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진보신당이 능력이 있다면 민노당을 힘으로 제압해 진보정당 대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들과 타협해 단일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의 주변에서 의미없는 존재로 전락하기 위해 진보정당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유감스럽지만 나는 진보신당이 민노당을 제압할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정치구도는 지난 3.27 당대회에서 밝혔듯이 한나라당-민주당-진보정당의 3자 정립 구도다. 녹색사회당이다, 비정규직 중심의 정당이다 이런 노선은 하나의 진보정당 내에서 벌어지는 노선 논쟁이 될 수 있으나, 이를 이유로 진보정당 왼쪽에 별도의 좌파 정당을 만들자는 것으로 가서는 안된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에는 사민당의 왼쪽에 녹색당이나 좌파당 등이 별도로 있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들이며, 우리 나라와 같이 소선거구제에 정당등록취소제도가 있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는 구분할 줄 알아도, 진보와 좌파 사이를 구분할 줄 모른다. 따라서 3자 정립 구도가 아니라 4자 구도 즉, 한나라-민주-진보-좌파 정당 구도로 가자는 주장은 필패의 논리이다새노추를 하자, 녹색사회당을 만들자 등 모두 4자 구도 주장이다.  나는 진보 왼쪽에 따로 정당을 차리자는 주장을 반대한다. 


김은주 부대표 말대로 진보대통합은 "우리에게 강제된 객관적 정세"이다.  노동, 빈민, 농민, 시민단체, 지식인 등 진보정당의 잠재적인 지지자들이 하나같이 진보정당의 대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연석회의 합의문이 우리 입맛에 100%맞을 수는 없지만, 하나의 진보대통합 정당에서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는 진보대통합의 거대한 흐름을 맞서려고 해서는 안된다. 바람에 맞서려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민노당은 만장일치로 합의문을 통과시키고 공을 진보신당에 넘겼다. 그런데 합의문 부결 상황을 떠올려보라. 진보신당은 진보대통합을 결렬시켰다는 독박을 뒤집어써야 하고, 조승수 대표는 사임해야 하며, 대중조직들로 고립될 것이다. 끔찍하다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정리하자. 우리는 3자 정립구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지, 4자 정립구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복수의 진보정당을 용납하지 않는 한국의 현실에서 민노당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타협을 통해 하나의 진보정당을 하는 것이 차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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