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가 2년 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책이다. 그런데, 2년 전 양심고백 때보다 더 자세하고 더 생생하게 삼성 이건희-이재용 일가의 범죄 행각을 폭로한 『삼성을 생각한다』의 불똥은 엉뚱하게도 <경향>과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에게로 떨어졌다. 그들이 대광고주인 삼성에 지레 겁먹어 책 광고를 거부하거나 관련 칼럼을 싣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통장 생활, 하지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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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재영 | 이것은 2년 전 김용철 변호사가 던진 폭로와 경고가 우리 사회에 받아 들여지기는 커녕 삼성의 위세가 더욱 드세졌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2년 전, 김 변호사의 용기에 열광했던 ‘개혁언론’들은 오늘 자신들의 ‘밥줄’ 앞에서 김용철 만큼의 용기가 없었다.
용기 있지만, 외로울 것이 뻔한 김용철 변호사의 집은 양평에 있다. 양심고백 당시 숨어 지내던 컨테이너가 “겨울에는 냉방이 너무 잘 되고 여름에는 난방이 너무 잘 되서, 아들놈 적금 통장 깨서 지었다”는 그의 집은 인근의 농가들보다는 깔끔하고 그럴 듯해 보였다.
여덟 마리의 개들과 뜰을 거닐고, 검사 시절 사놓은 오디오 기기에 클래식 음반을 얹는 김용철 변호사의 겉모습은 꽤 여유로운 퇴직자처럼 보였지만, 현실의 그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하는” 보통 사람으로 내려와 있었다. 스스로가 감수하고자 했던 삶이었고, 그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보여준 그의 열정적 모습은, 그리고 쟁쟁한 그의 목소리는 비리를 고발하는 사회운동가나 범인을 추궁하는 현직 검사의 그것 그대로였다. 아래는 2월 26일 오후에 양평의 김용철 변호사 자택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의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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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사무실과 빵집을 열었지만…"
- 2007년 말 양심고백 이후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나?
= 생계대책을 세우고자 서초동, 부천 같은 데 변호사 사무실 냈다가 전혀 유지 안 돼 닫아 버리고, 빵집에서 종업원 비슷하게 1년 이상 일했다. 농사 같은 육체노동도 해보려 했는데, 팔다리를 다쳐 수술 받은 이후에는 어렵더라.
- 변호사 사무실은 왜 영업이 안 된 건가? 혹시 삼성의 방해가 있었나?
= 내가 실무능력이나 영업능력이 부족한 거지. 의뢰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없었고. 재판부와 껄끄러울 것을 나도 알고 의뢰인도 알고. 안 그러면 싸워야 하는 것인데, 그런 경우는 승소가 거의 불가능한 사건들이다. 사법 피해자들, 억울한 사람들과 상담은 많이 해봤다.
- 책 말미에서는 아이들에게 ‘불의’와 ‘정의’를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고, 전화 통화에서는 ‘아이들이 볼까 두려운 책’이라 말씀하셨다. 무슨 뜻인가?
= 책에서 그런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칸트적 세계관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난 이상론자는 아니다. 다만 터무니 없는 걸 참지 않을 뿐이다.
인간 세계에서 지나치게 정의를 강조하다 보면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흐를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더불어 사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이 더 좋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복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생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말 하면 ‘빨갱이’라 하더라. ‘빨갱이’라 그러면 보통 북한을 지칭하던데, 북한이야 제대로 된 사회주의도 아니고 변태적인 사회 아니냐.
삼성 재판을 통해, 인격적으로 덜 성숙된 아이들이 이 사회의 부정과 비리의 핵심을 보게 됐을 때, 세상이 다 그런 거 아니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상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도 안 되겠지만, 이상을 공부하고 애쓰면 그나마 살만한 세상이 되는 거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계속된다면 원시시대와 똑같은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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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재영 | 난 이상론자 아니다
정의(正義)에서 쓰는 바를 정(正)자의 한 일(一)은 성(城)을 말하고, 지(止)는 발 족(足)을 뜻한다. 성, 즉 기존 체제를 정벌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혁명을 말한다.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목숨 거는 것이다.
우리가 성인이니 열사니 칭송하지만 누구든지 생명을 잃을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고, 나 역시 이 책을 써놓고 잠 못 자고 설사하고 그런다. 물론 나야 손해배상, 명예훼손 이런 것으로 기껏해야 징역 5년이다. 죄명이 치사하다. 국가보안법도 아니고.
나로서는 내가 보고 겪은 것을 쓴 것인데, 개인이 하기에는 미련한 짓이다.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이 자신에게 올 수 있는 손해를 감수하고 행동을 하는 데는 뭔가 기대하는 게 있어서일 텐데, 나로서는 왜 이 책을 썼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양심고백 당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음에도 백서 하나 안 나왔다. 잊어버리기 전에, 기억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정리해놓자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 책의 집필, 제작, 판매 과정에서 삼성이나 정치권력의 감시나 압력이 있었나?
= 그런 것을 직접 느끼지는 못했다. 조심하느라, 안 쓴다고 소문을 냈다. 인쇄 마칠 때까지도 ‘포기했다’고 소문을 냈다. 몇몇 출판사에서 계약을 거부해 떠돌기도 했고, 출판 일자도 일부러 금요일로 해서 삼성 측에서 대처하기 어렵게 했다.
- 재밌는 게 이 책에 대해 삼성 측에서 판매금지가처분신청 같은 걸 안 한다는 사실인데, 그렇다면 이 책이 팩트라는 것이고, 만약 팩트가 아님에도 소송을 안 한다면 그쪽 변호사나 홍보 담당자는 직무 유기 아니냐?
= 소설 같은 책이라 대응하지 않는다고 그랬다고 하대. 이 책에 나온 내용 중에 이건희가 마약중독이 아니라는 거, 엘리베이트 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거, 같은 걸 좋아하는 거 아닐까. 그럼, 그런 내용이 맞으면 이 책의 나머지도 맞는 건가.
- 엉터리로 재밌게 해석해 보자면, 삼성이 나쁜 짓 한다고 사람들이 다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그 구체적인 얘기를 해봤자 별 손해가 아니고, 오히려 이건희가 마약중독이 아니라는 것 같은 게 득이 될 거라는 계산이 아닐까?
= 이건희가 아픈 건 ‘VIP 신드롬’ 때문이다. 주치의들이 과잉 충성하느라 워낙 강한 약들을 쓰고 그래서 그런 것이다.
"오마이뉴스 해명, 얼마나 우습겠나"
- <경향>과 <한겨레>가 책 광고를 거부하고, 김상봉 교수의 관련 칼럼을 <오마이뉴스>와 <경향>이 거부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거액 광고주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아닐까? 일개 기업이 언론에 압력을 가하고 그런 일은 절대 없었을 테고.
그런데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경향>, <한겨레>가 생계가 어려우니까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밥 먹기 어렵다고 몸 파는 것과 똑같다. 피치 못할 것 같더라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법조나 언론, 성직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 언론도 권력이다. 그 권력이 사회적 대우만 향유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익만 향유하는 것은 장사치지 언론이 아니다.
<오마이뉴스>도 해명하고 그러던데, 저쪽(삼성-편집자)에서는 얼마나 우습겠나. 푼돈 던져주니까 기 못쓰는 게 얼마나 우습겠나.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건네준 뇌물 수수자 명단 50여 명 중 아직 공개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중 근래에 요직에 오르거나 오를 예정인 인물도 있을 텐데?
= 대부분 요직에 있다. 다 영전하고 그랬다.
- 김 변호사께서 만드신 명단을 정권이 요긴하게 쓰는 것 같다. 그거 보고, 거기 나오는 사람만 출세시키는 것 같다.
= 애초 삼성에서 그렇게 출세할 사람들을 관리한다. 학교에서 수석하고, 이 사회 메인스트림에서 살아남을 만한 사람들만 추려낸다. 그리고 퇴직자 관리하는 것도 공직 재기용이 기준이다. 다시 정권에 돌아가 힘쓸 사람을 가려낸다.
- 그 명단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누굴까?
= 이제 더 이상 개인을 거론하고 싶지 않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다 밝히고 했는데, 그런 개인을 뜯어대고 흠집 낸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자연인의 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장관 하나 바꿔봤자, 똑같은 다른 놈이 그 자리 차지하는데. 근본적인 구조 개혁,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이학수는 팽당한 게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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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재영 | - 일상적 실무총괄을 다 하던 이학수가 현직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있다. 이학수는 팽당한 것인가?
= 아니다. 소소한 걸 다 챙기고 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경영 의사를 장악하고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죄 뒤집어 쓰는 ‘마름’ 같은 건 아닌 거고, 왕하고 영의정 관계 정도인 거냐?
= 이건희가 결재 서류에 사인하는 법이 없다. 이건희가 회장이든 명예회장이든 상관 없는 것처럼, 이학수 팽이란 있을 수 없다. 이건희가 자기 인감을 이학수, 김인주한테 맡겨 놓는다. 이건희와 이학수는 한 몸이다.
- 회사 전체로 보면 이건희, 이학수가 주주권 행사 이외의 경영 개입을 한다면 회사법 위반 아니냐?
= 저 사람들이 하는 것 중에 숨 쉬는 것 빼놓고 합법이 있나? 비서실의 존재 자체, 그룹에서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언론이 그런 걸 받아쓰는 것도 웃기는 거고.
- 사면된 이건희가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질적 도움이 될까?
= 체육대회 유치하라고 국무회의 열어 사면하는 게 국가냐? 그 양반(이명박 대통령-편집자)이 좋아하는 ‘국격’이 있는 거냐? 로비하라고 풀어주니까, IOC에서 자격정지 먹는 거 아니냐. 얼마나 코미디냐. 결국 주범은 사면되고, 종범은 사면 안 된 꼴이다.
- 총수 일가 중심, 관리형 경영, 뇌물, 무노조 등 삼성의 독특한 문화가 ‘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경쟁력을 강화시킨 측면도 있다. 그런 구조 덕분에 강력하고 무모한 투자 결정 같은 게 가능하지. 다만 그로 인한 피해를 본인이 아니라 국가가 지는 거다.
"이건희-이재용 결정 잘 된 게 없다"
- 경험적으로 보자면, 삼성자동차라거나 e삼성이라거나 아버지와 아들이 결정한 게 잘 되지 않았다.
= 잘 된 게 없다. 10년 간 사업에서 성공한 게 없다. 그런데 왜 사업이 잘 되느냐? 삼성전자라든지 몇몇 집중 투자 부분에서 돈을 다 버는 거다. 문제는 그렇게 집중 투자할만한 데를 발굴하기 위해 사업 다변화 같은 걸 계속 하는 것이다.
-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외국인 지배율이 60%를 넘는데, 그런 경영 행태에 대한 외국 주주의 견제 같은 게 있을 거 같은데?
= 그렇지 않다. 삼성 쪽에서는 ‘경영권 보호’를 계속 외치던데, 외국 투자자들 경우 포트폴리오에 따라 투자한 것이고, 이익 배당이 일차적 목표인 데다가 한국의 독특한 언어나 문화 때문에 경영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냈던 이계안 전 의원이 최근 낸 책 『진보를 꿈꾸는 CEO』에서 현대와 삼성의 기업 문화를 비교하면서, 삼성은 1등 데려다가 안전한 일만 시킨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 글쎄, 삼성 임원 중에 명문고, 명문대 출신이 별로 없다. 기술자들은 세계적인 기술자들이 많지만, 관리자들 중에는 다른 기업보다 더 적다. 안전 지향이라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무모한 짓도 잘 하지 않느냐.
- 정치적으로야 무모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모하지 않은 것 같다.
= 삼성자동차 같은 게 얼마나 무모하냐. 50년 한 현대자동차를 몇 년 만에 따라잡겠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냐. 만용이다.
- 노무현 정권 당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경유착이 심했고, 삼성으로의 정치적 경제적 집중이 심화되었었다. 노무현 정부와 비교할 때 이명박 정부의 삼성 관계는 어떻게 보는가?
= 삼성과의 유착은 DJ 때부터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학수를, 존경하는 부산상고 선배라 말하고, 안희정 통해 왔다 갔다 하고, 아이디어와 정책, 인력 모든 걸 다 삼성에 의존하다시피 했다. 조중동, 검찰, 국정원 하고는 싸웠으면서 정작 기업하고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IMF 때 여러 기업이 망하고 재벌그룹이 분리 됐지만, 삼성은 우연히도 그렇게 되지 않으면서 독주하게 된, 우연스런 측면도 있다.
옛날에는 삼성이 자산 서열 2위, 3위였는데, 이제 독주하게 되면서 방자해져 버렸다. 국가와 사회의 모든 기능을 능멸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해독을 끼치고 있다.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국정을 논하고 군림하려 한다. 위임된 권력도 아니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노무현은 이해 못하겠고, 이명박은 평가할 가치 없다
-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맨’이니까, 삼성하고 좀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분석도 있었는데?
=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747’ 같은 건 무조건 사기다. 우리 나라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 같은 건 절대 없다. 지금까지 성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족하다.
우리 나라가 진짜 걱정해야 하는 문제는 대졸 실업자라든지 공동체의 붕괴다. 청와대 민정실에서 아줌마들하고 떡볶이 사먹는 거 같은 거 말고, 청년실업 같은 데 신경 써야 하는 거다. 각 분야에서 점점 어려워지고 실업자가 나오고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당장 19세기식 혁명 같은 게 오지는 않겠지만, 이 공동체가 평화롭게 유지될 수는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 이건희 이재용 일가 없이도 삼성이 잘 경영될 수 있을까? 재벌 집단으로서의 삼성 그룹 없이도 한국 경제가 잘 돌아갈까?
= 럭키가 치약을 만들어서 품질 좋은 치약을 싸게 사용하게 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중화학공업이나 반도체처럼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없이는 어려운 사업도 있다.
하지만 삼성에서 교복도 만들고 그러는 건 옳지 않다. 기업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다 하려 하다니, 말이 되느냐. 내가 쓰는 내비게이션이 우리 나라 중소기업 제품인데, 굉장히 좋다. 그런데 대기업이 내비게이션 시장에 뛰어들면서 만든 제품은 품질이 그에 훨씬 못 미치는데, 결국 돈으로 중소기업을 망하게 할까 두렵다.
외국에도 재벌 비슷한 게 있다고는 하던데, 우리 나라처럼 터무니 없는 재벌체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우중이 회사 경영을 엉망으로 했다.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김우중은 망했는데, 대우건설과 힐튼호텔은 망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나라가 망하느냐? 삼성 그룹은 이씨 일가가 아니다. 삼성 매출이 200조가 넘는데, 저 사람들이 끌고 갈 수 있는 회사가 아니다. 단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만 하고 있을 뿐이다.
노회찬-심상정 지지한다
- 양심고백 당시 노회찬 의원도 삼성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었다. 노 전 의원이 금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는데, 만약 도움을 요청한다면 간접적으로라도 돕겠는가?
= 지난 국회에 국회의원다운 국회의원이 두 명 있었다. 노회찬, 심상정이다. 그런데 집값 올려준다니까, 우리 국민들이 이 두 사람을 떨어뜨렸다. 나는 노회찬, 심상정을 심정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한다. 현실 정치에서 직접 행동하지는 못하지만, 이 두 사람이 보기 드물게 주권을 맡겨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주변에 말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
- 삼성을 견제하거나 정화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좋은 정치 만큼 힘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정치에 낮은 수준으로라도 간여할 생각이 있는가? 그런 제안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 그런 제안은 받은 적 없다. 여의도 국회는 교도소 비슷하다. 그런 데 내 몸을 담그기 싫다. 내 역량과 성향이 그런 데 너무 안 맞는다.
정치는 싫고, 내 꿈은 남북통일 되면 평양 검사장 같은 거 하고 싶다. 벼슬 욕심 같은 건 없지만,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 혼란기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새 질서에 적응시키고, 법을 집행하고 하는 일을 하고 싶다.
- 새롭게 시작하는 한 사회에서 규율이나 도덕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 같다. 교사 역할과 비슷한 거.
= 소박한 꿈이지만, 나는 다시 태어나도 검사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검사는 직업이 아니다, 취미생활이다. 좋아야 하는 거니까. 물론 검사 생활을 하면서 객관적으로 하려고 했지만,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객관적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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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재영 | - 오늘 얘기하는 걸 들으니, 계속 복지를 강조한다. 혹시 유럽의 사민주의 사회를 좋아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 북유럽 사회가, 현재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다. 난 이데올로기 잘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나마 사람 같은 세상 만든 게 북구 쪽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박사까지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거,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거, 직장에서 쫓겨나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거.
스웨덴에서는 세율이 70%까지 간 적이 있다. 정직하게 소득에 따른 세금을 내는 건 기본이다. 보수의 기본은 세금 내고 군대 가는 것이다. 그런데 세금 제대로 내고, 군대 갔다온 사람이 드물면 그건 보수세력이 아니라 부패세력이다.
사람다운 북유럽 사회가 좋다
- 스스로 ‘사민주의자’라고까지는 못하더라도 사민주의 사회가 가장 좋다, 라는 생각 정도는 갖고 있는 거냐?
= 유럽의 여러 사회모델 중 어느 것이 한국에 가장 적합한지는 세율이나 재정 등 여러 가지를 살펴야 하고, 특히 우리 나라에는 그 나라들의 법의식이나 문화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우리 나라가 미국화 돼있고,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지도층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미국식이 좋은 것인 양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에 가보니 심하게 말하면 지옥하고 비슷하더라. 세계 최강대국이라 하지만 마약에, 홈리스에, 무질서에, 하층 노동을 전부 유색인종이 전담하고 백인들은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는 현대판 노예제도 사회다. 일본도, 영국도 합리적이지는 않더라.
유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환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의료보험 같은 것이 바람직한 제도라 생각한다. 물론 제도상의 허점이 많아서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많지만, 좋은 제도임은 분명하다. 스웨덴에서는 보수정권 때도 노사정 협의와 복지를 유지했는데, 진짜 보수란 이처럼 국민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 뭐 하면 좋을지 좀 가르쳐 달라. 불행한 일이지만 한국에서 50대란 퇴임 후를 준비해야 하는 때이다. 법조인으로서 실질적으로 일하기도 어렵고, 육체노동을 할 수 있는 육체조건도 아니다. 농사도 좀 지어 보려 했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삽질도 제대로 못하겠더라.
재수도 안했고, 사법연수원 졸업한 다음날 군대 가고, 군대 제대한 다음날 검사 임용되고, 검사 마친 다음날 삼성 임원 됐다. 그러다가 요즘 강제 휴가 중이다. 개인에게는 행복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에 최고 행복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저쪽에서 어떤 조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기다리는 것이다. 계획은 계속 고민 중이다.
-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달라.
= 호치민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좋아한 게 아니라, 베트남 인민에게 보탬이 되리라 생각해서 그것을 선택했다고 했고, 그것을 위해 개인의 영달을 희생하며 헌신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이나 미국에 보이는 관대함이 놀랍다.
우리가 지금의 경제적 측면으로는 베트남이나 동남아 나라들에 앞선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그러할까. 촛불 시위 같은 걸 보면, 우리는 어떤 계기가 마련되거나 지도자가 잘 이끌고 신명만 나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나라다. 정치적 지도자, 정신적 지도자가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문화적으로나 뭐나 후진국이 돼버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