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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지진은 천재, 서울시 재개발은 인재"

[현장] 왕십리 동절기 철거…70대 노부부·장애인 거리로

지난 9일 '용산 참사' 355일 만에 사망한 철거민 5명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지난해 1월 한겨울에 벌어진 참사를 상징하듯 노제가 열릴 때도 눈발이 흩날렸다. 철거민들에게 겨울은 또 다른 공포다. '용산 참사'의 배경에도 겨울철 무리하게 철거를 감행하는 시공사와 용역 업체에 맞선 철거민들의 저항이 있었다.

용산 철거민 유가족들은 장례를 치렀지만 이를 지켜보는 철거민들의 겨울은 여전히 남아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지난 15일 새벽 서울 성동 왕십리 재개발2구역에서 70대 노부부와 한 장애인이 영하의 추위 속에 거리로 끌려나왔다. 이곳에 남아 철거에 저항하던 상가 세입자 20여 세대 중 두 가구였다.

서울시는 2008년 11월 창의행정추진회의에서 재개발 시 세입자 보호대책의 하나로 '동절기(12월~2월) 원칙적 철거 금지'를 명시한 사업시행 단계별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두달 후 용산 철거민들이 철거에 저항하다 사망했고, 지난해 12월에도 서울 마포 용강동의 한 철거민이 철거 압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세입자 보호를 강화해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을 반복하지만 철거민들이 이를 '립 서비스'로 치부하는 이유다.

"내 나이 일흔둘인데 욕설을 들어야 하나"

▲ 19일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왕십리뉴타운 재개발 지역의 상가 세입자들이 동절기 철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 별관 앞에서 왕십리 뉴타운 영세상공인 철거민대책위원회와 주거권 운동 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이 동절기 철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15일 당시 용역 직원에 의해 끌려나왔던 선영진(72) 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왕십리에서 29년을 살면서 슈퍼와 연탄가게로 생계를 이어온 선 씨 부부는 점포 안 숙소에서 잠을 자다 새벽 5시경 들이닥친 50여 명의 용역 직원들에 의해 거리로 쫓겨났다. 옷도 챙겨입지 못해 내복 바람이었던 선 씨 부부가 "집기를 다 챙겨서 나가라"는 용역 직원에게 항의했지만 "XX놈, 이사 가랄 때 가라니까 왜 안 나가"라는 욕설만 돌아왔다.

▲ 선영진(72) 씨는 지난 15일 새벽 부인과 함께 거리로 쫓겨났다. ⓒ프레시안
선 씨는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보상비로 1400만 원을 받았지만 그 돈으로 부부가 살 수 있을 만한 곳을 구할 리 만무했다. 거리에 나앉은 선 씨의 부인은 딸의 집으로, 선 씨는 이웃 철거민의 거처에 몸을 맡겼다. 그는 "내 나이가 일흔둘인데 욕설까지 들어가며 쫓겨났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기자회견의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동절기 강제철거를 규탄했다. 심호섭 빈민해방철거민연합 의장은 "아이티에서는 한 생명을 살리려고 수십 명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철거민들이 혹한의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판했고, 신동우 용산범대위 빈민대책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은 "사람의 목숨과 인원을 박탈하는 강제철거는 동절기뿐 아니라 원천적으로 중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은 모든 개발이 콘크리트로만 보이고 모든 이들을 자신들이 포장해야 하는 디자인으로만 보지만 사람이라는 소중한 가치는 지켜져야 한다"며 "(용산 참사 이후) 1년 내내 길거리에서 떠들다 장례를 치렀지만 기쁘지도 않고 눈물도 나지 않는 이유는 강제철거로 사람이 쫓겨나는 상황이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주거권운동 네트워크의 이원호 활동가는 "서울시는 용산 참사가 동절기 철거 금지를 어긴 게 아니라고 발뺌하거나 민간 건설사에 원칙을 적용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엄연하게 관리ㆍ감독권을 가지고 있다"며 "도정법 개정으로 관리처분계획서에 철거 예정일을 적시하도록 했지만 동절기에 철거 계획을 잡은 관리처분계획서를 계속 인가하고 있다. 이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발뺌하는 서울시, 방법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

왕십리2구역 대책위와 빈민해방철거민연합은 이날 오후에도 성동구청 앞으로 자리를 옮겨 동계철거 저지 및 왕십리 영세상공인 생존권 쟁취 결의 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원주민 정착률이 10%밖에 되지 않는 재개발 사업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소수의 개발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의 권리를 빼앗는 뉴타운 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대표는 "용산 철거민들이 테러리스트라고 하던 이들은 이번에 쫓겨난 노부부와 장애인에게도 테러리스트라 할 건가"라고 물으며 "이러한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순환식 개발과 세입자들의 이주대책 마련이 우선해야 하지만 관련 법안들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노동장 최창준 성동구위원장 역시 "난민은 아이티에서만 아니라 서울의 재개발 구역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아이티는 지진이라는 천재(天災)지만 서울은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라며 "많은 이들이 왕십리 세입자들을 위해 임대주택이 마련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구에서는 예산 편성도 안 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 19일 서울 성동구청 앞에서 열린 동절기 철거 저지 및 왕십리 지역 영세상공인 생존권 쟁취 결의 대회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뉴타운사업기획과 담당자는 이번 일과 관련해 "서울시에서 강제로 한 게 아니며 법원에서 명도소송 판결이 나면서 행정 대집행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람이 사는 건물은 철거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성동구청 주택과 담당자는 "이번 일은 명도 집행을 하면서 집기를 빼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고 철거는 진행되지 않았다"며 "법원에도 명도소송 판결을 내릴 때 동절기 철거 금지 원칙을 고려해 달라는 내용의 협조 공문을 준비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서울 성동 왕십리 재개발구역을 가보니…

19일 오후 찾은 서울 성동 하왕십리동 재개발2구역은 구석구석 가림막이 둘려 있었다. 지난 15일 노부부가 쫓겨났던 슈퍼와 연탄가게도 가림막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가림막 지지대 위에 올라선 인부들이 철거가 끝난 곳의 지지대를 분리해 인도로 던져 내리고 있었다.

가림막이 둘리지 않은 몇몇 상가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내려진 셔터마다 철거를 반대하는 세입자들의 구호와 그 위에 찬성 문구를 덧칠한 낙서가 어지러이 쓰여 있었다. 영업을 하고 있는 한 금형공장도 현관문을 쇠사슬로 굳게 잠갔다.

근처에 상가 세입자들이 대책위 사무실로 쓰는 식당 역시 닫혀 있긴 마찬가지였다. 이곳 철거민들이 성동구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탓이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사이 용역들이 사무실을 철거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주장하던 집회장의 한 발언자가 떠올랐다.

헐리지 않는 대부분의 주택들은 문과 창문 모두 깨져 있었다. 세입자들이 집을 비우거나 쫓겨나면 용역 직원들은 다시 돌아와 살 수 없도록 창문부터 떼어낸다. 두터운 상가 현관문도 잘게 부수어져 파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 서울 성동 왕십리 재개발2구역 상가건물의 셔터와 벽에 쓰여있는 낙서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철거민의 낙서 일부를 지우고 '개처럼 돈벌어 살고 싶다'로 바꿔놓은 것도 있다. ⓒ프레시안

2002년 이명박 당시 서울 시장이 왕십리 일대를 뉴타운 시범사업지구로 지정한 이후 이곳에는 환호보다 한숨이 늘어났다. 주민의 80%인 세입자들은 새 거처를 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보상비를 손에 쥐었을 뿐이다. 600여 개를 넘어서던 금형 공장 세입자들은 거처뿐 아니라 생계의 터전까지 고민해야한다. 거주권을 얻은 주민들도 막대한 개발비 앞에서 한숨을 쉬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봉규 기자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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