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쥐락펴락 허가제 된 집시법 | |
촛불·용산참사 집회땐 어김없이 ‘금지통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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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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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최근 ‘촛불 1년’ 기념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이에 항의하는 인권단체들의 기자회견까지 불법 집회로 몰아 강제해산한 가운데, 경찰에게 집회의 ‘생사 여탈권’을 부여한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등은 ‘용산 참사’ 이후 토요일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용산구 한강로2가 참사 현장에서 추모 집회를 열겠다는 집회 신고서를 내왔다고 7일 밝혔다. 하지만 신고서를 접수한 경찰도 매주 “폭력 시위로 번질 우려가 커 금지한다”는 똑같은 내용의 회신을 보내고 있다. 김상렬 진보신당 서울시당 대외협력국장은 “우리가 얼마나 집회·시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제약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말했다. 이처럼 경찰이 ‘용산 참사’나 ‘촛불 1년’ 같은 사회 현안에 대한 집회를 금지하는 근거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위협을 끼치는 집회와 시위는 금지할 수 있다”는 집시법 5조다. 정정훈 변호사(법무법인 공감)는 “현행 집시법에는 경찰이 특정 집회가 공공의 질서에 위협을 끼치는지 아닌지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며 “경찰이 원치 않는 집회는 이 땅에서 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현행 집시법은 무엇이 ‘집회’인지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아, 경찰이 집회라고 판단하면 ‘기자회견’도 집회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조항이 애초부터 정권을 비판하는 집회를 가로막는 ‘전가의 보도’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청의 ‘집회 금지통고’ 통계를 보면, 2002년 금지통고된 집회는 35건, 2004년엔 단 3건뿐이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 등이 일어난 2006년엔 134건이나 됐다. 경찰이 이 조항을 자주 적용해 집회를 금지하자, 시민단체들은 몇 해 전부터 집회를 문화제나 종교행사로 진행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 지난해 5~6월 촛불집회의 공식 명칭은 ‘촛불 문화제’였고, 용산 참사 현장에서는 3월부터 문정현 신부가 미사 형식을 빌어 추모제를 하고 있다. 이런 탓에 2007년과 2008년엔 금지된 집회 수가 각각 86건, 31건으로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적 현상도 빚어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김희수 변호사는 “집회가 명목상으로는 신고제지만, 운영 행태를 놓고 보면 사실상 허가제이던 시절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을 반영하듯 18대 국회가 들어선 뒤 여야를 막론하고 13개의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10개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촛불 압살’ 법안이고, 3개가 천정배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쪽 법안이다. 천 의원실의 오정훈 비서관은 “야당 개정안대로 경찰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집회 신고를 받기만 해도 지금 같은 경찰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김민경 기자 charism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