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의 대체재, 행정기관의 정원." (심재옥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위원)
"로마가 썩어간 원형경기장 공간." (박주민 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창의력도 시대정신도 빈약한 구시대적 조경공간." (염형철 서울환경연합 운영위원장)"
31일 개장 한 달을 맞은 광화문광장에 대한 진보정당 및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평가는 싸늘했다.
이날 오후 3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광화문광장 개장 한 달, 과연 공공의 공간인가? 서울시 사유지인가?' 토론회에서는 광화문광장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대안이 쏟아졌다.
이 자리에서는 "모든 광장에 적용되는 통합조례를 추진하자", "광화문광장에 집중된 힘을 전국으로 확산시키자"는 등의 주장이 있었다. 심재옥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위원(전 서울시의원)은 상징적인 광화문광장 폐쇄 운동도 제안하기도 했다.
우익인사 조갑제마저 실망시킨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서울시가 조례를 통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광화문광장 조례는 1조부터 광장의 목적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으로 제한하고 있다. 서울시장은 이에 부합하지 않은 행사를 불허할 수 있고, 조례 8조에 따라 '국가 또는 서울시가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나 '시민의 안전 확보 및 질서유지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허가를 변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시장이 자의적 해석에 따라 집회와 시위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개장 직후인 지난 3일 광장에서 열린 첫 기자회견에 참석한 활동가 10여 명은 "광화문광장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라"고 주장하다가 연행됐다.
게다가 조례 6조2항은 국가·지방자치단체의 행사, 문화행사 등을 우선 허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행사는 조례 10조 4항에 의해 사용료도 면제받는다. 광화문광장은 내년 6월까지 예약이 차 있는데, 올 연말까지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일자는 26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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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4당은 지난 3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 표현의 자유를!'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화 시위가 금지된 광장은 닫힌 공간'이라고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 조례안 폐지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규정한 경찰이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참석자들을 강제연행하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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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은 물리적 조건부터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대규모 분수와 화단이 집회나 시위는 물론 시민들의 자율적 문화활동과 보행마저 방해하기 때문이다. 임동근 공간연구집단 연구원은 "플라워카페트는 경찰 몇 중대와 맞먹는 시위 방지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우익인사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도 광화문광장을 실패작으로 비판했다. 그는 28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좁은 공간에서 분수를 구경하고 억지로 만든 것 같은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다? 생각 없이 서성이는 것 말고는 몰려다니면서 할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의 대안은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와는 정반대다. 이승만·박정희 동상이나 6.25 참전 전사 소년병 2400여 명의 추모비를 세워 역사성이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광화문광장은 친환경 측면에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염형철 서울환경연합 운영위원장은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30여 개 분수를 하루 13시간 운영하고 260개 화분에 주2회 조경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열·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는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광장 85% 이상이 콘크리트로 포장돼 자연 순환기능이 최악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환경을 강조하는 정부나 서울시의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후보 시절 환경운동 경력을 강조하면서 녹색 넥타이를 매고 선거를 뛰었다.
시민단체들은 비판하고 시민들은 환영하고... 왜?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에도 광화문광장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호응은 높은 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30일 현재 218만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하루 평균 7만2000여 명의 서울시민이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화단에서 꽃구경을 했다.
서울광장 조례개정 운동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 다소 줄어든 상태. 6개월 동안 8만여 명이 서명해야 조례개정을 청구할 수 있지만, 서명운동을 시작한지 약 두 달이 된 지난 25일 현재 참여자는 아직 2만3000여 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임동근 연구원은 "전문가 집단으로 갈수록 광화문광장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시민들에게는 '없는 것보다는 나은' 사업일 뿐"이라면서 "광장 정치가 중요하다는 사람들은 게토화된 세상"이라고 현실을 표현했다. 공간 역시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 전개된다는 것이다.
임 연구원은 "그렇다고 우리가 광장을 가질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면서 "끊임없이 싸우고 변화시키다보면 광장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장을 다른 대도시로 번지게 하고 서울시 안에서도 작은 동사무소 앞을 광장으로 바꾸는 등 운동의 공간을 유연하게 바꾸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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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찾은 어린이들이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히며 물놀이를 하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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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돈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의정지원부장은 제도적 변화를 강조했다. 현재 진행 중인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과 광화문광장을 하나로 묶어서 대응하자는 것이다.
홍 부장은 "각각의 광장과 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별도의 조례로 통제되고 있다, 서울광장 조례 개정이 성공해도 다시 광화문광장 조례개정 운동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하면서 "통합조례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재옥 정책위원은 "상징적으로 광장을 부정하는 운동이라도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광장무용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에게 광화문광장은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로 운영할 자격조차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와는 대화도 조정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시민사회의 비판을 의식해 오는 9월부터 광장운영시민위원회를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시민위원회는 광화문광장·서울광장·청계광장 등 세 곳의 운영방향과 기준을 결정하는데 총 15인 위원 중 9명은 공무원·시의원, 6인은 시민·전문가·시민단체로 구성된다. 홍기돈 부장은 "위원 15명에 대한 임명·위촉 권한을 서울시장이 가지고 있어 사실상 서울시 입장에서 운영될 입장이 크다"고 지적했다.
심재옥 정책위원 역시 '위원 총사퇴'로 끝난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를 예로 들면서 "고작해야 들러리에 불과하고 광화문광장조례의 독소조항을 무마할 알리바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