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마이뉴스]

"'MB'스러운 강남을 바꾸는 것이 대한민국 바꾸는 것"


▲ 7일 저녁 8시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버스정류장 앞에 모인 100여명의 시민들이 강남대로 인도로 행진 중이다.

ⓒ 이경태
"재협상을 실시하라, 어청수를 구속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 훌라훌라~"
7일 저녁 8시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버스정류장 앞 구호가 울려 퍼지고 촛불을 든 100여명의 시민들이 움직이자 순간 바삐 걸음을 옮기던 직장인들도, 화려한 네온사인 안의 옷들을 구경하고 있던 이들도, 두 손을 붙잡고 살갑게 걸어가던 연인들도 잠시 놀란 눈으로 이들을 쳐다봤다.

촛불을 든 이들은 두 명씩 줄지어 번잡한 강남대로 인도를 이리저리 헤치며 걸어 나갔다. 강남역에서부터 교보타워 사거리까지 한 바퀴 빙 돌고 도착하자, 약속한 장소인 P까페 앞에는 100여명의 시민들이 더 와 있었다.

여느 촛불집회와 다르지 않았다. 손수 준비한 손팻말에는 "덥다 MB야 빨리 끝내자", "MB 강남에서도 OUT"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고, 소형 앰프에서는 < 광야에서 > , < 헌법 1조 > 가 흘러나왔다. 200여명의 시민들은 노래에 맞춰 촛불을 좌우로 흔들며 이날의 만남을 즐겼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인터넷 까페 '
아고라 강남직장인' 운영자 이아무개씨는 "처음 강남에서 7명으로 촛불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삿대질도 하고 '이명박 만세'라고 부르며 조롱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이다니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강남대로의 '촛불'이 승리의 첫 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광화문과 너무 다른 강남의 모습, 좌절감 넘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 가슴에 '명박이 퇴장'이라고 적힌 천을 붙인 강남·서초지역 진보신당 관계자들은 7일 촛불집회에서 이를 이용한 간단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 이경태
이날 강남 촛불집회에는 강남·서초지역 진보신당·민주노동당 당원, 강남 학부모 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다함께', 뉴코아 노동조합 등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심은 강남 인근의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직장인들이었다.

지난 1일부터 강남 촛불집회에 참가한 김종수(43)씨는 "시청이나 광화문 촛불집회에 계속 참여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시청이나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촛불 시민이 모인 시청앞 광장과 너무나도 다른 강남의 모습을 보고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좌절감과 패배감을 이기기 위한 '벽깨기'에 직장인들이 도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달 30일 신부님들도 '국민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며 "주말에는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집중촛불집회에 참석하지만, 평일에는 이곳에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촛불을 드는 것이 촛불을 더욱 질기게 이어가고, 또 애초 얻고자 했던 바를 더 빨리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으로 강남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신언직(45·개포동)씨는 "사교육 1번지, 부자가 사는 동네 등 강남은 '이명박'스러운 이미지가 있다"며 "강남을 바꾸면 대한민국이 바뀌지 않겠냐"고 말했다.

신씨는 "사실 우리 동네에서도 물가가 뛰고 경기가 죽어버리니깐 '경제 살리라고 표를 몰아줬는데 경제도 못 살린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며 "내각개편이라도 획기적으로 할 것이라 기대했는데 겨우 세 사람 바꿨다, 부끄러운 일이다"고 덧붙였다.

"분당, 서울역에서도 촛불 들고 있다... 이렇게 질겨지는 것이 무서운 것"
이날 강남에 모인 이들은 밤 10시가 되자, 천천히 각자의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일부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묵묵히 촛불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이아무개(34)씨는 "생활인인 이상 내일도 돈 벌러 직장에 가야 하지 않겠냐"며 "하지만 푹 자고 열심히 일한 다음, 내일도 촛불을 들고 여기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서형민(30)씨는 "지나가다 참석했는데 길게 힘 빼지 않으면서도 이 많은 이들에게 뜻을 알릴 수 있어 좋았다"며 "내일은 다른 직장 동료한테도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줘야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어제도 시청 앞 광장을 원천봉쇄했다고 하던데 시청 앞 광장만이 촛불을 들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오늘 여기 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당이나 서울역에서도 촛불을 들고 있다고 했다. 그 모든 곳을 경찰이 막을 것인가. 무슨 권리로? 촛불이 이렇게 질겨지는 게 더 무서운 것이다.

/오마이뉴스 이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