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터전 잃고, 생명 잃고 용강동엔 ‘철거 한파’ | ||||
2009 12/22 위클리경향 855호 | ||||
ㆍ서울 마포구 용강 시범아파트 10여 가구 불안한 나날… 서울시와 보상 법정 공방
이씨는 서울시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에 세입자로 거주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8년 4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용강 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수변공원을 조성하는 도시계획시설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보상을 두고 세입자와 서울시는 갈등을 빚었다. 세입자들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공토법)’에 따라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등 모두를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에 서울시는 자체 규정인 ‘서울특별시 철거민 등에 대한 국민주택 특별공급규칙(철거민 특별공급규칙)’을 내세워 주거이전비만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행정소송으로 이어져 12월 17일 최종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판결이 나지 않은 시점에서 서울시가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공언한 겨울철 철거를 시행한 점이다. 이로 인해 세입자와 서울시 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이 과정에서 이씨의 남편인 김영모씨(가명·66)가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겨울 ‘철거준비 작업’ 부작용 속출 유족과 세입자들은 무리한 겨울철 철거가 김씨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주장한다. 세입자에 따르면 지난 11월 26일 갑자기 철거가 시작됐다. 7개 동의 아파트에 15가구(세입자 13가구)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이사를 나간 빈집을 중심으로 바닥을 뜯거나 각종 배관을 회수하는 등 작업이 이뤄졌다. 내부시설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유리를 깨는 소음 등이 발생했다. 남은 세입자들은 건물을 울리는 소음으로 인해 공포와 불안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1살과 3살 아이를 키우는 김숙영씨(가명)는 “공사 소음에 아이가 경기를 일으킨 적도 있다”면서 울먹였다. 세입자들은 이런 불편에 대해 수차례 철거 업체와 마포구청에 항의했다. 김영모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족과 주민들에 따르면 김씨는 12월 2일 오전 옆집에서 철거 작업 중인 업체 직원들에게 항의했다. 그 와중에 승강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씨는 “유서나 목격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싸웠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면서도 “오후에 남편이 전화해서 직원들과 ‘한바탕’했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주민 최숙희씨(가명·58)도 “김씨가 직원과 다퉜다고 말했다”면서 “평소엔 점잖은 사람이었는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랬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그날 밤 김씨는 아내와 집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먼저 들어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겨울철 철거와 업체 직원과의 다툼으로 김씨가 자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비판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마포구청과 철거 업체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철거를 담당한 용역업체 서희원 과장은 “철거 업체 직원과 멱살잡이를 했다는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 과장에 따르면 그동안 주민과의 다툼은 물론 언성을 높인 경우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서 과장은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용역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포구청 용강 시범아파트 정비팀 강동룡 주임은 “철거가 아니라 철거를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라며 철거 시행 자체를 부정했다. 마포구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김씨가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주장했다. 즉 철거를 담당한 이들의 주장은 겨울철 철거를 시행하지도 않았으며, 김씨의 자살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저소득층 이사 엄두도 못내 “거긴 왜 가. 다 부수고 아무것도 없어. 폐허야 폐허.” 공공근로를 하고 있는 한 노인에게 길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의 말대로 용강 아파트는 흉물스런 모습이다. 유리창들은 깨져 있었고, 아파트 사이사이에는 철거작업에서 나온 쓰레기가 가득했다. 서울시는 8일 해명자료를 통해 “현재 세입자 등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철거 행위는 일절 시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본 용강 아파트의 모습은 서울시의 주장과 거리가 멀었다. 서울시는 이주가 완료된 4개 동에 가림막을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림막이 설치된 8동과 9동에는 각각 1가구, 2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가림막으로 가려진 건물에는 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았다. 건물 내부는 상당 부분 철거 작업이 이뤄진 상태였다. 한 건물은 수도관이 터져 복도에 물이 흥건했다. 10여 가구가 살고 있어 철거 작업을 일절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건물도 곳곳에 유리창이 깨져 있는 등 철거 작업이 진행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빈집 벽과 바닥에는 공구로 두드린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가 흩어져 있었으며, 버려진 살림살이가 누군가에 의해 훼손돼 나뒹굴고 있었다. 빈집의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아서 바람에 덜컹거렸다. 깨진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온 건물을 휘감았다. 남은 10여 가구의 세입자들은 폐허와 같은 건물에서 추위와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다. “정말 나가고 싶은데 형편이 안 되는걸 어떡해요. … 돌아가신 분의 심정을 알 것 같아요.” 세입자 심효숙씨(가명·50)는 한숨을 내쉬었다. 형편이 어려워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 주거비를 모두 받지 못하면 이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세입자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세입자들은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공토법에 의해 주거이전비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40가구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7월 주거이전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다. 그러나 서울시는 주거이전비를 지급하는 대신 제공한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취소했다. 자체 규칙인 철거민 특별공급규칙에 의거한 것이다. 이에 세입자들은 ‘아파트 입주권 취소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 와중에 서울시는 11월 26일부터 철거를 시작했다. 세입자들은 갈 곳 없는 이들을 궁지로 몰아세우는 보복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의 변호를 맡은 권정순 변호사는 “법정을 통한 보상·이전 문제 해결이 우선인데 무엇 때문에 서둘러 겨울철 철거를 시행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포구청 용강 시범아파트 정비팀 황경원 주임은 “적법한 절차에 의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마포구청의 한 관계자는 “사업이 오래 지연돼 빨리 처리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며 성급하게 철거를 시행한 점을 일부 시인했다. 그는 “올해 배정된 철거 예산과 동시에 사업을 시작한 옥인동에 비해 철거가 뒤처진 점 때문에 압박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주택공급과 담당자는 “해명자료 이외엔 언급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글·사진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
2009.12.17 14:36
터전 잃고, 생명 잃고 용강동엔 ‘철거 한파’[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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