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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은 있나

2009 11/10   위클리경향 849호

ㆍ장애인·저소득층·노숙인 배려 미미… 의료접근권 일반인보다 훨씬 열악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이 사회단체가 마련해 준 점심을 먹고 있다.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저소득층과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호진 기자>
한국 사회 전체가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거점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초·중·고는 하나 둘 전례 없는 휴업에 들어가고 있다. 정부 대책이 현장과 괴리를 빚으면서 시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북새통 속에서 취약계층의 목소리는 묻혀 들어가고 있다.

지난 9월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기획국은 ‘신종플루 대유행 시기 서울시 대책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제안’이라는 이름의 정책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시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받은 자료를 분석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지역 고위험군 환자의 인구 비율은 21~26%로 비슷했지만 유독 강남(74명)·서초(114명)·송파(92명) 3개 구에서 확진 환자 비율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강서구·중랑구·중구는 각기 6명, 8명, 9명이었다. 보고서는 “상위 5개 자치구의 거점병원 총합은 13곳인데 반해 하위 5개 자치구 거점병원 총합은 10곳에 불과했다”면서 이것이 거점병원이나 보건소에 갈 수 있는 ‘여유’의 문제와 연관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검사에 드는 비용을 고려할 때 경제적 여유에 따른 의료시설 접근성의 차이가 반영된 통계라고 본 것이다.

민간의료 기관 접종비 개인이 부담
실제로 9월14일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이 건강보험관리공단의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 신종플루 치료제 처방을 받은 4139명 가운데 70.5%가 소득 상위 50% 해당자들이었다. 

소득 상위 10% 해당자와 하위 10% 해당자의 투약 비율은 3.4배 차이가 났다. 다만 이 통계의 경우 신종플루가 해외 체류 후 귀국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번지던 시기의 수치이기 때문에 소득 수준에 따른 의료 양극화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완화될 전망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10월30일부터 전국 모든 약국에서 항바이러스제 투약이 가능하도록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항바이러스제는 모두 무료이고, 확진검사 없이도 항바이러스제 투약이 가능하므로 검사 비용 때문에 의료시설 이용을 주저할 이유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사각지대는 엄존한다. 10월26일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보건복지가족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완전 무상’으로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질병관리본부는 10월21일 1716만명(전 국민의 약 35%)에 대해 신종플루 예방 백신을 무료로 접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보건소와 학교가 아닌 민간의료 기관을 이용할 경우 접종비 1만5000원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정부가 우선접종 대상자에 대해 무료접종을 공언해 왔던 약속을 뒤집었다면서 “접종비 개인 부담이 ‘의료불평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노당 곽정숙 의원도 10월28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서 “(우선접종대상) 1700만명 가운데 500만명만 병원에서 예방접종을 받아도 그 돈이 750억원이다. 이것을 국민이 부담하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의 모든 약국에서 타미플루 투약이 가능해진 10월30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약국에서 약사가 신종플루 의심환자의 약을 조제하고 있다. <남호진 기자>
장애인과 저소득층에 대한 대책은 미비하거나 아예 없다. 10월28일 ‘민관합동 신종 플루 대책위원회’에서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 아동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예방 접종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시점은 임상실험 결과가 나온 뒤에 결정할 수 있다.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성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지금껏 정부의 신종플루 대책에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민간의료기관에서 예방백신을 접종할 경우 치러야 하는 비용 1만5000원은 저소득층에게는 병원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 성동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진료를 하다 보면 1만5000원만 내면 되는데 병원에 못 오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서 “이 분들에게 왜냐고 물으면 ‘돈이 안 모여서’라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에서는 일부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확진 검사 없이 항바이러스제를 투여받을 수 있다면 문제의 여지는 줄어들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는 정부 대책과 대한의사협회의 이야기가 달라 혼란을 빚고 있다. 의협은 10월2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 감기에 항바이러스제가 남용될 경우 인체에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의사의 중재와 판단에 따라 처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확진 검사 없이 의심증상만 있어도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라는 정부 지침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의협이 반대한다면 일선 병원에서 정부 대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우려가 크다. 우석균 보건복지가족부 정책실장은 이와 관련해 “‘진단 없이 처방 없다’는 의협의 발언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항바이러스제 남용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환자를 독점하려는 이기주의 아니냐는 비판이다.

노숙자, 전염 쉬운 고위험군
노숙인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노숙인들의 영양상태나 건강상태가 최악의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장 위험성이 높은 집단인 데도 그렇다. 주영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대표는 “노숙인들은 일정한 지역에 몰려 있어 전염이 쉬운 환경에 있는 데다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가장 고위험군에 해당한다”면서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노숙인 가운데 확진 환자가 발견됐다는 통계는 나온 적이 없다. 노숙인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광야교회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발견된 케이스가 없다”면서 “그러나 그 분들은 감기에 걸려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는 어떨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인의협은 매주 금요일 오후 노숙인들에 대한 진료 봉사를 하고 있다. 찾아오는 노숙인은 30~40명으로, 노숙인 가운데에는 자기관리를 적극적으로 하는 부류에 속한다. 지원시설에 있지도 않고 최소한의 건강관리조차 하지 않는 이들인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 전문가들은 서울시 노숙인 6000여 명 가운데 약 20%인 600여 명이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주영수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처할 방법을 마련해야 하지만 변변한 조사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은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관심이 미비하다”면서 “저소득층의 의료접근권이 일반 시민에 비해 열악할 것이라는 추정은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약 200만명에 이르는 건보 체납자의 경우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직과 인력을 갖춘 정부 차원의 실태 파악과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이유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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