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관심 세대’ 오명 벗기려 지방선거에 뛰어든 ‘젊은 피’들
명함을 나누어 주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
개혁을 우리 20대가 밑바닥부터 다지며 시작해야만 합니다." 4월22일, 서울 마포구에서 구의원이 되기 위해 뛰고 있는 이단아 한나라당 예비후보가 당차게 말했다. 홍익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이씨는 올해 26세로 6·2 지방선거 서울시 구의원 후보 중 최연소 출마자이다.
기성세대들은 20대를 정치 무관심 세대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정치 혁명을 꿈꾸는 20대들의 반란이 심상치 않다. 단순히 20대 출마자들이 다수 등장하는 현상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20대 출마자들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72명에 달했고, 그중에서 12명이 당선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때는 대다수 후보자와 당선자가 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당 소속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4월21일 현재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20대 예비후보자는 32명에 이른다. 물론 이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점은 과거 진보 정당 일변도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속한 후보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선거와 관련한 20대 유권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 4월11일 연세대에서 발족식을 하고 활동에 돌입한 대학생유권자연대 '2U'(대학생들의 이유 있는 목소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28쪽 상자 기사 참조). 이보다 앞서 지난 2월에 출범한 한국청년연대는 '88%세대운동본부'를 결성해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20대들의 투표율을 88%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20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 움직임도 활발
20대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20대 출마자들에게 힘을 복돋워준다. 가장 확실한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직접 만난 이단아 후보를 비롯한 20대 출마자들도 확실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이후보는 "어린 나이에 구의원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동안 20대는 정치에 대해 비판만 할 줄 알았지 제대로 참정권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 88만원 세대나 청년 실업과 같은 문제들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직접 나서서 변화를 이끌어보고 싶은 것이 출마 이유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20대 출마자로서의 당찬 패기와 이상과는 달리 그녀가 현실에서 겪는 고충은 상당했다. 당장 부족한 자금력이 문제이다. 사회 경력이 부족하다보니 다른 후보들처럼 후원 단체의 힘을 빌리는 것조차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후보는 "명함, 현수막, 전단지, 촬영, 캐치프레이즈, 홍보, 영상물 관련 업무 모두를 '20대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존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20대 출마자이기에 유리한 면도 있다. 대학원생인 이후보를 돕고 있는 선거운동원들 역시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이다. 매일 밤 10시30분에 하는 기획회의 시간에는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나온다. 서교동과 망원동이 선거구인 이후보는 "직접 발로 뛰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회의에서 이야기한다. 요즘 젊은 서교동과 노후한 망원동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 중인데 이 두 지역을 공연과 연극 등을 위한 문화의 거리로 연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4월2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신림동의 한 고시학원 앞에서 만난 진보신당 예비후보 이기중씨는 붉은색 점퍼를 입고 자신을 열심히 알리는 중이었다. 관악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그가 나눠준 명함을 유심히 읽던 고시 준비생 박 아무개씨(26세)는 "아무래도 젊으니까 진보적일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명함에 '20, 30대를 위한 원룸형 임대 주택' '고시학원 수강료 인상 담합 저지' 등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젊은 층에게 호감가는 공약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기중 후보의 선거 공약 안에는 그가 선거에 출마하게 된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관악구에는 고시촌이 있어서 20~30대 젊은 층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정작 젊은 층이 요구하는 것이 구의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젊은 사람의 목소리를 지역에 반영하기 위해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이후보가 20대 출마자의 장점으로 제일 먼저 꼽은 것은 바로 '희망의 정치'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는 "60대 이상 지역구 의원들이 젊은 사람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20대의 목소리를 직접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와야 20대의 정치 무관심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정당 활동을 시작했고 출마 역시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선거를 준비해왔던 과정 자체가 하나의 사회 경험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강남구의원 민주당 후보로 나선 이관수씨(오른쪽)와 마포구 한나라당 구의원 예비 후보인 이단아씨(왼쪽). ⓒ시사저널 임준선 |
강남구의원에 출마한 민주당 이관수 예비후보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만 27세(83년생)이지만 그는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공천조차 받지 못했지만 이번은 달랐다. 당에 가입한 20대 출마자 대개가 공천권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올해에는 당당히 공천을 받았다. 또, 2년 동안 민주당 강남 갑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선거 준비도 차근차근 해왔다. 그는 "지역 사회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온 의원들과의 공천 싸움에서 20대가 이기기란 힘든 일"이라며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20대 출마자로서 그의 전략은 독특한 면이 있다. 우선 그가 노리는 주요 공략 대상은 20대가 아니다. 청년기금을 만드는 것 이외에 보육 시설 문제나 강남구의 유해 업소 척결 등의 공약을 강조한다. 그는 "20대만이 20대 출마자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50대 이상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을 좋아한다. 기존 정치에서 식상했기 때문에 20대의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원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20대 출마자로서의 장점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고, 그래서 더 열심히 구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라고 답했다. 그가 명함 앞면에 '말하기보다 듣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새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구를 위한 장기적 플랜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민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라며 "(20대 후보이기에) 언제든 적극적으로 들을 자세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세 후보는 이구동성으로 "당선 여부를 떠나 20대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피력했다. 이번 지방선거가 20대 선거 혁명의 시발점이 되기 위해서는 출마자보다 유권자의 참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는 '2010 20대 선거 혁명'이 허무맹랑한 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지난 4월11일 사회동향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라고 응답했다. 선거에 대한 20대의 뜨거운 관심은 과연 이번 지방선거에서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 것인지 주목된다. `
조현주 인턴기자 /